한가한 일요일이다. 할머니댁에 놀러갔다. 작은 거실에 햇살이 가득 들어찼다. ‘아이고~ 좋구나~’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는데 (방심한 틈을 타) 예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월급은 얼마냐, 저금은 얼마나 하냐, 남자친구 성씨는 뭐냐, 결혼하잔 얘기는 안 하냐”
지난번에도 물어보셨는데 또 그러신다. 난 할머니의 천연한 얼굴을 바라본다. '아이고,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궁금한 걸' 하면서 조금은 뻔뻔한 얼굴을 꾸미고 계신다. 이쪽도 각오한 일이니 난처함은 없다. 헤헤 거리며 적당히 둘러대거나, 힘주어 비밀이라 말한다. 재차 추궁을 하시지만, 대놓고 물어보심은 대놓고 대답을 거절해도 괜찮을 거란 여지를 준다. 그런 줄다리기를 하며 서로를 보고 웃는다. 한 세대를 건너뛰면 그런 쿨함이 있다. (매일 아옹다옹하는 엄마랑은 확실히 다르다)
“미림이(나의 여동생)는 뭐든지 말해주던데”
그렇게 떠보는 할머니의 얼굴엔 귀여운 호기심이 가득가득 피어 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안 넘어가요. 할머니)
오후가 되자 근처에 사는 고모가 건너 오셨다. 밥을 먹고 맥주를 나눠 마시고 거실에 둘러 앉아 TV를 봤다. 고모가 기지개를 켜더니 스트레칭을 했다. 뒤로 가서 뭉친 어깻죽지를 주물러 드리다, 학원에서 배운 몇 가지 요가동작을 가르쳐 드렸다. 따라하던 고모는 “우와, 우와!” 감탄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할머니는 옆에서 (조용히) 동작을 따라하고 계셨다. 엎드려 손을 쭉 뻗는 동작이었는데, 팔과 다리를 천장 높이 들고 계셔서 이내 가르쳐드리기를 포기했다. “이렇게 하는 거냐?” 물으시면 적당히 바로잡아 드릴 뿐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우리가 그만둔 후에도 계속 동작을 이어가셨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작은 소리로 숫자까지 세면서.
난 그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무심함이랄까, 무언가에 몰두한 할머니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게 할머니는 부산스럽고 억척스러운 분으로 기억된다. 늘 주변을 챙기느라 바빴고, 시름 같은 숨소리를 내셨다.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의 기상천외한 코골이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끙끙 앓는 것 같기도 하고, 버럭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호강시켜드려야지. 호강시켜드려야지’ 다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서른이 되도록 해드릴 수 있는 건 재래시장서 사온 막통닭과 무떡뿐이다. 이럴 땐 정말 한숨이 나온다.
할머니는 몇 해 전 시골생활을 청산하고 도시로 넘어 오셨다. 손의 굳은살도 사라지고, 무좀도 사라지고, 체념으로 짓눌린 얼굴도 사라지셨다. 요즘 할머니를 보면 가벼워지셨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조용히 내리는 눈가루 같다. 손녀의 사생활을 묻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과, 예순 가까운 아들을 걱정하는 중얼거림, 주름 가득한 손과 꽃무늬 파자마도 너무너무 가볍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가벼워지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둘러싼 소담한 공백, 그 투명한 고요를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요가하는 할머니의 카운트 소리. 한가로운 일요일이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