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는 시대의 거울이다.
언젠가 안민수 선생님으로부터 밥 호프의 이야기들 들은 적 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그가 미국의 수많은 대통령들과 골프 파트너로, 담소를 나누는 친구로 살아온 것.
많은 이들의 맘 속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러면서 광대가, 희극인이 만인의 존경과 찬사를 받는 사회, 정치 풍토에 대해 말씀하셨다. 처음엔 단순히 정치 풍자에 있어 레토릭 기술 혹은 정치비판이 용인되는 사회분위기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강의를 하던 중, 왕의 남자를 대상으로 광대의 역할과 권력자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예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것을 맘에 품고 있다가 오늘에야 이렇게 밥 호프에 대해 정리해 본다.
밥 호프는 미국의 전설적 코미디언이다. 그에게는 늘 촌철살인의 웃음으로 ‘세기의 광대’, ‘웃음의 제왕’ 등의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그의 100회 생일을 맞을 때에는 미국의 35개 주가 그날을 ‘밥 호프의 날’로 선포하고, 할리우드 스타들의 거리 위원회가 `한 세기를 산 시민(Citizen of the Century)"이라는 헌정 행사를 열었으며, 그가 타계한 해에는 버뱅크 공항이 밥 호프공항으로 개명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희극인이다.
그는 영국태생으로 미국이주민이다. 10세 때 찰리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서 우승을 차지하며 배우로서 자질을 보이며 성장하게 된다. 보드빌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브로드웨이에서 ‘뉴욕의 보도’(1927)에 출현하게 되고, 1933년이 되어서야 <로베르타>라는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알려진다.
이후 라디오 방송과 TV프로그램에 출연하다가 1938년 `1938년의 대방송(The Big Broadcast of 1938)"을 시작으로 그의 생전에 75편의 영화에 출연한다.(이 중 50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도 한다)
또한 그는 60여 년간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에서부터 빌 클린턴(42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귀빈으로 골프 파트너로 친구가 되어왔으며, 미 의회가 수여하는 민간인 최고훈장 골드메달,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으로부터 명예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훈장과 공헌상, 특별상들이 있는데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의 업적이다. 그런데 그의 뒷 이야기들을 살펴보다 보니 그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그의 또 다른 삶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우선 그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100세로 생을 마감하던 2003년 당시, 94세 아내 돌로렌스와 70년째 해로하면서 자신의 생을 보내왔고, 슬하의 자녀 3남 1녀 모두 입양하여 훌륭하게 키워낸 인물이다. 또한 그는 자선 사업에도 앞장섰는데 평소 구두쇠로 통하던 그가 재산의 상당 부분을 ‘호프하우스’라는 고아원에 기부했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한국, 베트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군이 참전 혹은 주둔하던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위문공연을 펼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1990년 87세의 고령으로 걸프전 위문공연을 그 순간까지 말이다. 이 외에도 공군참전용사 미망인을 위한 시설건립 등 다양한 기증을 통해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정치적 불의에도 맞서 옳은 말을 하기도 한다.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상적 이슈가 바로 매카시즘이다. 미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자신의 정치적 잇권을 위해 근거 없는 공산주의자 색출운동을 펼쳤고, 그로 인해 미국사회는 반공산주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아니 더 심하게 말하면 혐오 수준이었고, 이때의 마녀사냥 식 색출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54년, 매카시 주장이 거짓이라는 에드워드 머로 기자의 주장으로 청문회가 개회되는데, 이때 밥 호프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공산주의자 200만 명의 명단을 공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매카시 의원이 모스크바 시내 전화번호부를 막 손에 넣은 모양이다."라 비꽜는데 그 말은 현재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처럼 인간적이고 때론 헌신적이며, 불의에 맞설 용기가 있는 광대.
그가 사랑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시대 광대를 본다.
정치인은 광대처럼 보이려 애쓰고 광대는 정치인처럼 보이려 한다.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코미디언 중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한 분이 있었고, 정치인은 대중과 소통한다는 이유로 광대처럼 춤추거나 어설픈 레토릭으로 정치를 희화화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광대가 자기만의 방식을 통해 정치 풍자를 하면 그것이 옳던 그르든 간에 웃음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을 비난하고 처벌하는데 앞장섰던 정치인들도 있었다.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때로는 SNS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시대를 바라보며 광대 본연의 위치와 그 위상을 생각해 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는 광대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두드러지게 그 역할과 지위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나는 ‘리어왕’을 추천하고 싶다.
광대 : 당신과 당신 따님은 참 이상한 족속들입니다.
딸들은 내가 참 말한다고 매질을 하죠,
당신은 또 거짓말한다고 매질한다죠.
게다가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고 해서
매질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바보광대는 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아저씨처럼 되는 것도 싫어.
아저씨는 지혜의 껍질을 양쪽 끝에서
벗겨버린 탓에 가운데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요.
보시라니깐요,
저기 껍데기 하나가 오고 있잖아요.
리어왕에서 광대는 리어에게 진실을 고하던 유일한 존재였다. 그는 리어가 과신으로 판단이 흐려질 때에도 그리고 진짜 미쳐갈 때도 그의 곁에 남아 촌철살인의 농담으로 현실의 잣대를 제시하곤 했다. 그는 결코 비굴하지도 타협하지도 않고 인간으로서 깨달음과 통찰을 어렵지 않게 그러면서도 저급하지 않은 웃음으로 세상의 모습을 왕에게 보여주었던 자다. 왜 이리 그가 당당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알겠지만 인류사에 있어 광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광대는 궁중에서 왕과 함께 생활을 해왔는데 보통 왜소증 장애가 있거나 바보를 광대로 두곤 했다.
이들은 왕에게 미칠 사악한 기운의 액막이용으로 혹은 그들의 익살이 궁정에 즐거움을 준다는 이유로 왕과 함께 해왔다.
인류사에서 광대의 목숨이 소모적으로 비루하게 사용된 것은 로마제국시대겠다.
역설적이지만 제일 평화로운 시기에 제일 불안한 삶을 살았던 광대들.
제국시대 로마는 팍스로마나를 주창하며 빵과 서커스라는 우민화 정책으로 시민의 정치참여를 막았다.
그 과정에서 동원된 것이 바로 광대들인데 그들의 삶은 천민보다 더 잔인했다. 그들은 지금의 선술집 같은 곳에서 광대놀음을 하다 관중의 야유가 터져 나오면 그 자리에서 거세나 죽임을 당했으며 각종 기예나 볼거리 위주의 공연을 강요받기도 했다.
중세기에 접어들면서 광대는 유랑광대와 궁정광대로 나뉘게 된다.
유랑광대는 왜소증, 불구, 뚱보, 말라깽이 등 외형적으로 일반인과 구별되는 사람들이 곡예를 펼치며 광대놀음을 하던 반면, 귀족이나 왕가의 광대들은 의외로 머리 좋은 광대들이 맡았다.
그들은 광대를 전업으로 하지 않고 평소에는 영주 밑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연회가 열리면 참석해서 광대놀음을 펼치는 것이다.
벌이가 좋은 광대는 땅을 모아 지주로 은퇴하는 광대도 있었다 한다.
왕가나 귀족의 연회만 전문적으로 불리는 유명한 광대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그들의 삶도 극한의 삶으로 뒤바뀐다.
전쟁에 참가하는 영주를 시중 하거나 병사들의 위문공연하기도 했다.
심지어 적군의 사자나 개전 직전에 적 진영 앞에서 도발하는 임무를 받기도 한다.
상상에 맡기겠다.
그들의 목숨이 온전했을까.
그래도 르네상스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미치광이, 광대, 바보는 때때로 진실을 말하고 지혜와 영감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보통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들의 말은 헛소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한 유희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어느 때는 그들을 통해 기득권을 풍자하기도 했는데 왕이나 귀족은 체면 때문에 그것들을 인내와 아량으로 덮어두곤 했다. 아니 풀어이야기하면 그런 것들을 관용으로 웃어넘겼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광인을 보는 시각의 변화로 광인은 치료의 대상 즉 환자로 정상이 될 때까지 치료를 받는 비정상의 열등인간으로 격리되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비교적 자세히 나왔는데, 그에 따르면 근대로의 전환기에서 이성에 대한 확신은 정신병자와 비정상인들을 격리시키며 광기를 억압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구분 짓고 그들과 격리시켜 왔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광대가 왜 비루한 대우를 받아왔는지 그리고 왜 당당할 수밖에 없는지 에둘러 살펴봤다.
비루한 삶과 운명, 그리고 죽음을 순응할 수밖에 없던 계급 간의 처지 등 광대는 우리 삶 변방에 위치하며 살아왔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필연적으로 죽임을 당한다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한 광대는 그렇기 때문에 당당하게 풍자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시대 광대는 정치를, 그리고 정치인은 광대놀음을 하고 있다. 심지어 광대의 풍자에
정치인이 잔인한 복수를 펼치기도 한다.
광대는 시대의 거울이다.
만인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거울이다. 광대의 이야기를 겸허히 청취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는 권력자, 정치인이 필요하다.
2018.09.06. 두서없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