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나온 채플린의 광대
Irwin Corey

풍자가 사라진 한국 사회를 보며

by 최성진

풍자가 사라진 한국 사회를 보며 이 시대 희극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난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나는 유일하게 주말 저녁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데 할애할 정도로 웃음을 신봉한다. 내게 웃음은 지친 삶에 대한 위로다.

그때마다 브띠 부르주아(소지식인)인 나는 사회의 부조리와 잔학상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피하려는 꼼수로 그들의 골계에 맞춰 바보처럼 웃을 뿐이다.

예전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풍자가 있었다. 아니 최근에도 종편의 몇몇 프로그램에서 풍자가 존재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그런 풍자조차도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스 신화에, 머리칼이 뱀인 메두사는 직접 보면 돌이 돼 버리기 때문에 청동 방패를 거울삼아 목을 베었다는 페르세우스 이야기가 있다. 사회는 비천하고 잔학하다. 그런 사회를 있는 그대로 폭로하면 그것은 르포르타주와 다를 바 없다. 아마 우리는 경악과 전율로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처럼 경직될 것이다.

맞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청동방패가 필요하고 풍자라는 여과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시대, 코미디언들은 정치세태 풍자를 두려워한다.

그냥 타임킬링용 저급한 웃음들이 판을 친다. 정치보복 혹은 지지자들의 반발 때문일까?

아니면 현대인들이 풍자를 단순히 조롱 정도로 여기는 것일까?

풍자는 고차원적인 수사(rhetoric)가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웃음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유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풍자가 없는 정치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풍자가 정치사회를 견제할 때 비로소 건전한 정치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풍자는 램푼 lampoon 따위의 조약 한 말장난이 아니다. 사유를 제공하는 레토릭이다.

오늘 소개할 희극 배우는 어윈 코리다. 교수라는 칭호가 붙는 그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며 영화배우다. 동시에 급진적 실천가로 살아온 인물이다.

코리는 1950년대 코미디 계에 등장. 지식인들과 정치적 담화를 비꼬는 유머로 코미디계의 최고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스티브 앨런, 데이비드 레터맨 등 코미디계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텔레비전 쇼에도 출연하기도 하고, 우디 앨런, 재키 글리슨 등 감독의 영화에서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좌파 정치를 지지했다. 쿠바 어린이들, 무미아 아부 자말(전 흑표범당 당원으로 필라델피아 라디오 방송 언론인이었으나 1981년 12월 경찰관 다니얼 코크너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음)을 지지했다.

그런 이력으로 1950년대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으며 그 이력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1914년 7월 29일 브루클린 술집 종업원인 아버지와 봉재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아버지의 가출, 어머니의 결핵 투병 등 불우한 가족환경으로 남매는 고아원에 맡겨진다. 그가 코미디를 시작한 계기가 이때였다고 한다. 고아원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코리는 이후 약자, 소수자, 좌파적 정체성들을 형성하는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13살(1927년)이 되어서야 일가가 다시 모여 살게 되었고 고교 1년을 마치자 대공황기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노동을 시작하다가 뉴욕으로 돌아와(1938년) 뉴딜 공공근로 인부로 일하게 된다.

‘Pins and Needles’(봉제공들의 노동조합을 소재로 한 뮤지컬코미디)의 배우 겸 보조 작가로 일을 시작한다. 이때 배우조합을 만들려다 해고당한다.

복싱리그 골든글러브에서 챔피언(전미 아마추어 복싱리그인 골든글러브에서 패더급 무패 챔피언이었다)이

되자 곧장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코미디언의 길을 걷게 된다.

40년대의 인기 브로드웨이 쇼 ‘New Faces’를 통해 데뷔하게 된 그는 점차 코미디언으로서 인기를 얻어가며

그리니치빌리지의 간판 극장인 ‘빌리지 뱅가드’의 고정 프로그램을 맡게 되고 그가 항상 과장되게 외치던 ‘howEver’란 말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코리교수라는 이름으로 뉴욕 코미디 극장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중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징집되지만 동성애자 행세로 6개월 만에 브로드웨이로 복귀한다.

그는 1939년 한 공산주의자 캠프에서 만난 프랜 버먼(Fran Berman, 2011년 작고)과 결혼하고 아들 한 명을 두고 해로하다가 아내를 사별한 이후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말년까지 뉴욕 맨해튼의 한 거리에서 노숙자 차림으로 신문을 팔았다. 그렇게 번 돈을 쿠바 아동의료복지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90세가 넘어서도 지역의 공연장에서 연기 활동을 해 왔는데, 당시 그를 본 문화부 기자 벤 브랜틀리는

“90이 넘는 나이에도 캐릭터를 정확하게 연기한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권위의 위선을 조롱한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코미디언으로 묘사된다.

40년대 후반부터 그는 교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한쪽으로 쏠린, 마치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낡은 연미복, 운동화 차림이 그가 만들어낸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장문의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는 말장난으로 정치적 담화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라며 교수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다.

참고로, 비평가 케네스 타이넌(Kenneth Tynan)은 그가 만들어 낸 캐릭터를 두고 “미국에서 가장 웃기고 기괴한 캐릭터”이자 “대학 나온 채플린의 광대”라 불렀다.


그리고 그 권위 있는 캐릭터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권위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으며, 권위 자체를 조롱했다. 체제와 권력에 대한 비판, 정치와 지식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부역자들을 조롱하고 그런 사람들로부터 억눌리고 소외받던 사람들을 그리고 이 세상을 보듬고자 했다. 그는 고교 1년 중퇴가 전부였지만, 폭넓은 독서와 웅변가들을 능가할 정도의 언변으로 지적 권위를 조롱하며 극장과 라디오, 영화와 TV매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실재 그는 다독가였고, 자신이 엉터리처럼 구사하는 전문용어들의 의미를 알던 지식이었다.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머리 좋은 코미디언 중 한 명”이라는 찬사(미국의 전설적 코미디언 레니 브루스, 1925~1966)가 있을 정도로 실제 박식했지만, 자신의 앎의 지평을 희극적으로 과장해 표현함으로 자신을 낮춰 감추곤 했다.


‘그는 진짜 코미디는 권위에 맞서는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한국일보 2017.3.4.)


그는 주로 장광설을 사용했는데, 일반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들을 끄집어내어 설명하면서 거만한 지식인의 표정과 말투를 그대로 재현해 사람들의 혼을 빼놓다가도 “만일 우리가 지금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이 길에서 멈추게 될 것”이라는, “당신이 어딜 가든, 거기 당신이 있을 것”이라는 등 진짜 중요한 메시지를 알레고리처럼 한 두 마디 끼워 넣곤 했다.


2014년 7월 그의 100세 생일 파티에서 거동도 불편하고 귀도 어두워진 그는 참석자들 앞에서 “10년 전 이 자리에는 조니 캐시(Johnny Cash, 가수, 2003년 작고)도 있고, 밥 호프(Bob Hope, 배우, 2003년 작고)도 있고, 스티브 잡스(2011년 작고)도 있었는데…, 이제 캐시(돈)도 없고, 호프(희망)도 없고, 잡스(일자리)도 없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예술가로서 그리고 세상의 권위를 조롱하며 약자들의 편에 서려했던 그의 열정을 돌아보며, 우리 시대 진정한 풍자, 그리고 광대가 보여줄 수 있는 지적 꼬집음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사실 어윈 코리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에 많이 없어서 기사들을 편집 정리하는 수준이 그쳤다.

이점 양해 바란다.

아래의 글은 생전 그가 남긴 말들이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의 2017년 3월 4일 자 기사에서 일부 발췌)

- 러시아 발레리나들과 쿠바 야구 선수들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defect) 미국으로 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결함 많은(defective) 나라이기 때문이죠.

- 미국 대통령들이 지닌 유일하게 좋은 점은 그들 대부분 죽었다는 사실 아닌가요.

- 부시요? 저라면 차라리 부시의 아들(son of Bush)이 되기보단 개새끼(son of bitch)가 될 거예요.

- “결혼은 ring(반지) 세 개로 이뤄지죠. engagement ring(약혼반지))와 wedding ring(결혼반지)

그리고 suffering(고통)입니다”

- “결혼은 은행계좌와 비슷합니다.

넣었다가 빼면 이자(interest, 혹은 흥미)도 없어요.”


어윈 코리의 공연 포스터

어윈 코리의 젊은 시절 모습

어윈 코리의 노숙자 시절의 모습(뉴욕타임즈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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