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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oooz Jul 21. 2020

17평 아파트, 리모델링 소회   

사람이 전부였던 인테리어 공사

30년 된 집의 리모델링은 마치 꿀벌이 벌통을 새롭게 꾸리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


모든 것을 거둬 내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창문부터 방문까지 남길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도리가 없었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에 함께 해주셨다. 짐작대로 집을 보러 갔을 땐 몰랐던 작은 하자들이 나왔고, 사장님은 빼놓지 않고 우리에게 상황을 전해주셨다.


그럼에도 보름의 시간이 영겁으로 느껴졌다.


매일매일 크고 작은 선택이 요구되었다. 작은 타일부터 붙박이장의 구성까지,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서는 다음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지금의 선택이 최선일지, 차악 일지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고 선택의 결과는 오직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 외로웠다. 날마다 하루 끝에 '우리 오늘도 잘했다'를 서로에게 주문처럼 들려줬다. 선택 범위가 적은, 방 하나 딸린 17평의 작은 집이라는 것은 와중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모든 변명의 서두가 그렇듯, 그 시기엔 영락없이 바빴다. 없던 야근이 생기거나 골치 아픈 프로젝트를 맡게 되는 식이었다. 현장에 자주 가지 못했고 과정을 온전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직접 작업자에게 이것저것 요청을 했다거나 현장에서 지켜보다가 방향을 급선회하는 결정을 해서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 는 다른 사람들의 인테리어 기록을 보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이 모든 것에 전후 사정이 있는 것이므로 살면서 온전히 집을 사랑해주자고 애써 다짐했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성실하고 깐깐했다. 주말이나 평일 어느 오후에 겨우 짬을 내어 무작정 현장에 가면 사장님이 늘 작업 중이셨다. 처음 보는 작업자 분들 사이에 엉거주춤 서서 어색할 일이 없었다. 방문을 할 때마다 작업을 멈추고 진행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주셨다.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그게 너무 고마웠다. 뭘 모르는 뜨내기로 보지 않고 집에 살 부대끼며 살 집주인으로 봐주셨다.


처음 사장님과 미팅을 하던 날, 내가 준비해 간 어수룩한 몇 장의 레퍼런스 자료들을 함께 보면서 이 작업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이 작업 때문에 집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주셨던 것이 좋았다. 무조건 됩니다! 하는 예스맨도 아니었고 그건 절대 불가능한 건데 뭘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같은 어깃장도 없었다. 인생 첫 집에서 인생 첫 리모델링을 의뢰하는 우리 입장에서 그만큼 감사한 일도 없었다.


꼼꼼하고 착실한 작업자를 만난 건 다행한 일이었다. 30년 된 17평 아파트의 올수리 견적으로 받은 1300만 원과 5000만 원, 7000만 원 견적서 모두 나름의 납득할 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형편과 현실을 놓고 선택했을 뿐이다.


다만 작업자를 최종적으로 선택하기 전, 우리 둘은 포트폴리오 대신 다른 이야기를 나눴었다. 사장님의 거친 손, 아파트 상태에 대해 설명하며 어떤 작업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실 때의 눈빛, 스케줄을 정리하실 때의 표정,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골똘히 생각하시던 모습들, 한 달에 두 건만 공사를 진행한다는 강단.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믿을 만한 작업자라고 여길 수 있는 기준이 있었고 어려운 견적표 대신 사장님의 그런 모습을 믿었다.


그리고 약속받은 날보다 하루 당겨, 공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마음 졸인 것과 무관하게 그 어렵고 자잘했던 모든 선택들이 공간 안에서 조화로웠다. 다른 집주인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할 때도 지지해준 인테리어 사장님과 남편에게도 고마워서 수상 소감 마냥 감사합니다, 고마워를 연발했다.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만큼 좋은 분이었고, SNS나 매거진에 나올 모습은 아니어도 심란했던 공간에서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집이 신기했다.


짧은 봄을 보내고 여름을 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 공간 안에서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하자 하나 없는 견고하고 완성도 높은 집이다. 예산을 더 당겼다면 애쓰지 않아도 예쁘고 자랑할만한 공간이 완성되었겠지만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깨끗하고 안락하며 안전하게 삶을 보내고 있다.   


His comment

처음으로 큰돈 쓰는 일이라서 둘이 엄청 떨었던 기억이 나, 우리 둘 다 자취 경험도 없고 이런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걱정했던 거였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은근 뭐 결정할 때 팀플이 잘 됐다? 물론 내가 많이 양보한 거. 그거 인간적으로 까먹지 말자! 공사 다 끝나고 우리 둘이 자축한다고 피맥 하면서 잔금 보낼 때, 사장님한테 얼마라도 돈 더 보내자고 했었잖아. 우리가 넉넉한 돈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보름 동안 고생하신 사장님 생각하면 나는 아깝지 않았어. 우리가 함께 사는 첫 집에 힘을 보태 준 사장님을 나는 진짜 오래 기억할 거 같다.


/인테리어 과정이 글감이 될거라 생각하지 못해 사진이 변변치 않습니다./

좁은 집이라 답답하지 않게 모두 흰 벽을 만들고 집에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에 벽이나 다름 없는 수납을 두었다.
공간에 개방감을 주기 위해 부엌 수납을 반장으로 짜고, 하부장은 우드 포인트를 두었다.  
짐이 들어오기 전. 개방감이 너무 중요했던 우리는 지금도 최대한 짐을 줄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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