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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y 29. 2024

오픈 이노베이션
vs. 오픈 컴피티션


대기업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제언 2. 오픈 이노베이션이 아닌 오픈 컴피티션 


1. 대기업이 아무리 보유한 자원이 많아도 신기술, 그것도 성공 가능성을 예단하기 매우 어려운 첨단 신기술의 개발이나 이들 기술의 사업화에 도전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기대다. 대기업들은 막대한 자산과 인력, 영업 능력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 자원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최대의 이익을 매년 만들어서 주주들에게 돌려줄 의무가 있는 조직이지 시장 선도적 위치에 서있는 것이 이들의 의무가 아니다. 다만 시장 선도적 위치에 있는 것이 이들이 매년 큰 수익을 돌려줄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이렇게 기대하는 것일 뿐. 


2. 대기업의 신기술 개발이 매우 높은 확률로 사업화에 성공하고, 시장을 선도해서 큰 이익을 남겨줄 것이라 믿는다면 세계 최대 기업들의 R&D 비용은 지금보다 월등히 높아져야 한다. 대부분의 대기업들, 특히 기술 분야의 대기업들이라고 해도 매출의 10% 이상을 R&D로 쓰는 경우는 매우 적다. 무조건 기술력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엔비디아의 경우에도 2023년 R&D 비용은 $8.7B 정도로 매출액의 14% 수준이며, 역시 넘사벽의 기술력을 가졌다고 이야기되는 애플은 불과(!) 8% 수준이다. R&D를 통해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면 무적의 방패같겠지만, 업체들이 이 정도 비용만 쓰는 것의 의미는 R&D가 무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배민이 연평균 80% 수준으로 성장하던 시절 마케팅 비용은 매출액의 60%가 넘었었다. 마케팅이 배민의 성장의 가장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특정 비용의 소모가 시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 무리해서라도 엄청난 돈을 그 항목에 쓰게끔 설계된 시스템이다. 예전 대형마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절에는 관련 부동산 취득 비용이 매출의 20%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 매장을 늘리는 것이 매출과 직결되었으니까.) 


3. 대기업 R&D는 많은 경우 대략 3년 내외의 기간에 매출에 영향을 줄만한 기술만 주로 연구하게 된다. 물론 선행연구나 원천기술 연구도 하기는 하지만 전체 R&D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앞서 설명한 이유로 매우 낮다.  그렇지만 신기술은 계속 시장에 등장하고, 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경쟁사가 등장하는데 대기업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모든 기술을 살펴볼 수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소위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4. 현 시점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의 의미는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한 신기술 또는 신시장에 대한 tapping’ 정도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기술 업체의 경우엔 자사 엔지니어를 투입하기에는 불명확한 기술인데 외부 스타트업이 하고 있다면 협업이나 지분 투자를 통해 관계를 맺고 그 기술의 성장을 살펴보자는 의미가 되고, 비기술 분야의 경우 새로운 고객 니즈나 세그먼트에 대해 사업적 성장 가능성을 스타트업을 활용해 테스트하자는 의미가 된다. 


5. 명분은 참 좋은데, 막상 지난 기간 진행된 오픈 이노베이션은 거의 대부분 대기업 쪽에서 ‘우리가 쓸만한 기술이 뭐가 있는지 스타트업들이 설명해줘봐. 그럼 우리가 납품 받을께’ 정도에 가까웠다. 대기업은 자원이 우월적이기 때문에 그 자원을 보완하기 위한 구성품의 하나 정도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한 셈이다. 당연한 것이지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이렇게 되면 스타트업의 혁신적 아이디어 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저 대기업의 ‘기존 사업’을 보완하는 용도로만 쓰이게 되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의미가 되기는 어렵다는게 문제다. 


6.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사이의 협업일 것이다. 엔지니어가 10만명이 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돌파하지 못하고 있던 LLM 기반 생성형 AI 시장을 700여명의 오픈AI가 챗GPT로 돌파하면서 시장에 완전히 새로운 성장 동력이 생겨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재빨리 이 기업체 지분의 49%를 인수하고 자사의 오피스 제품군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외부 스타트업이던 Deep Mind를 통해 AI의 가능성을 선보였던 구글과 동일한 경로를 마이크로소프트가 걷고 있는 것이고, 오픈AI의 자극 때문에 구글도 제미니를 선보이며 강력하게 맞서고 있는 모습이다. 


7. 즉, 오픈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미래를 돌파해나갈 에너지를 얻는 일일 수 있는데, 국내에서 그간 진행된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존 사업부에서 ‘활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경영진의 전략적 시각에서의 문제일수도 있고, 국내에 오픈AI나 Deepmind 같은 스타트업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Deepmind가 알파고로 프로 기사를 이긴 것은 창업 후 만 6년이 넘는 시점, 구글이 인수하고도 3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고, 오픈AI도 챗GPT 대박을 터뜨린 것은 창업 후 6년이 지나서였다. 국내에 ‘좋은 스타트업이 별로 없다’고 여기기에는 과연 국내 대기업들이 이 정도 길게 기다려줄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8. 무엇보다 ‘기존 사업의 보완재’ 정도로 스타트업을 찾고 활용하다보면 기존 사업이 가진 한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요소 또는 부분 기술이 시장이 혁신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기존 사업부의 ‘활용’ 또는 ‘시너지’ 라는 관점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알아서 스타트업이 혁신하라고 그냥 Spray & pray 하라는 뜻도 당연히 아니다. 힌트는 수많은 기술들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갈 것이고, 어느 기술이 우리에게 더 유리할지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 


9. 대기업이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탐색해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Open Competition’이 대안이 된다. 대부분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기존 사업부의 ‘입장과 위상을 강화’시키는 것에 머무른다면, 오픈 컴피티션은 대기업내에서 안락한 삶을 사는 기존 사업부에게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외부의 잠재력 높은 스타트업에게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유사한 기술 또는 유사한 시장을 놓고 내부 사업부와 외부 스타트업을 경쟁 붙여서 이기는 쪽에 지원을 확대하고 밀려난 쪽은 정리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그 자체로 위기감의 덩어리다.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냥 망한다는 것을 창업자나 직원들 모두 잘 알고 있는 곳이니까. 대기업 임직원들에게 이런 ‘기업가정신’을 스스로 갖기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기대다. 그래서 경쟁자를 끌고 와야 한다. 내부 경쟁자를 부각시키면 위기감보다 질투와 갈등으로 정치질에 몰두할 위험성만 높아진다. 하지만 외부에서 경쟁자가 생기면 정치질할 여지가 줄어들고 실력 대 실력으로 붙을 가능성이 올라간다. 구중궁궐같은 대기업 한복판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우리 기업 규모가 있는데 쉽게 안망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은 안망할지 몰라도 우리 사업부는 외부 업체에게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줘야하는 것이다. 


10. 정확히 같은 예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얼마전 삼성전자가 로봇 스타트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는 발표가 나오고 바로 며칠 뒤 삼성전자내에서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하던 사내 팀을 해체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두 사업체의 영역이 정확히 겹치지 않으니 스타트업이 삼성전자 개발팀을 밀어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 로봇 분야에서 내부와 외부 자원 중 어느 쪽이 더 시장의 각광을 받을지에 대해 선택한 것처럼 보이게 된 것. 


11. 이런 식의 경쟁을 통해 대기업 사업부들이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긴장하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 신성장동력을 찾는 길이고, 그를 위해서는 내부를 자극할 강력한 방법이 필요하다. 원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이런 길을 열어줄 것이라 믿었지만, 기존 사업부의 입김이 너무 강한 상태에서 고작해야 ‘보완재’를 찾는 방식이 되어버렸기에 더 노골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고, 그 방법으로 떠올리는 솔루션이 ‘오픈 컴피티션’이다. 외부 스타트업에게 기회를 주는 비용이 대기업 사업부에 혁신에 필요한 비용보다 훨씬 싸다. 그리고 이 시도가 성공하게 되면 올드한 사업부에 강력한 위기감을 제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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