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인플루언서의 삶
오늘밤 나의 일기는 18000명에게 배달된다
2018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일기를 쓰는데 그날따라 내 글씨가 너무 예뻐 보였다. 마침 집에 사둔 스티커 하나를 붙였는데, 그것도 굉장히 귀엽게 잘 매치시킨 것처럼 보였다. 내용도 크게 숨겨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것이 나의 일기 인스타그램의 시작이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 그저 오늘 쓴 일기가 좀 예뻐 보였고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개인 계정이니 친구들에게 내가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를 이야기하는 수단이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났고, 만나서 갔던 맛집이 진짜 맛있었고, 새로 듣게 된 노래가 이건대 되게 좋았다는 이야기를 한 장의 사진에 다 담을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일기를 보고 댓글을 달아줬다. "나도 거기 가봤는데 진짜 맛있지? 나중에 가게 되면 이 메뉴도 한번 먹어봐~" 또는 "야 그 노래 들어보니까 진짜 좋더라 추천 고마워!" 라는 시시콜콜한 댓글들이 재밌었다. 재밌으니까, 계속 업로드를 하게 되고 나의 개인 계정이었던 인스타그램은 점점 일기를 주로 올리는 일기 인스타그램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인스타그램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다. 공간은 커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지만 나의 일기는 변한 것이 많지는 않다. 처음의 그날처럼 솔직하게 일기를 쓰고 우울한 감정이나 신나는 감정이나 가리지 않고 친구한테 이야기하듯이 전하고 있다. 우울하거나 힘든 일을 공유할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시기도 한다. 정말 예쁜 말들을 고이고이 적어서 보내주셔서 눈물 글썽한 날도 있다. 기쁜 일이 생겨서 공유했을 때도 정말 인류애란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내 일처럼 기뻐해주시기도 했다.
방구석에서 시작된 조그만 일이었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은 결코 조그맣지 않았다. 나는 매일 일기장을 통해서 세상을 만나고 있었다. 나의 일기는 나랑 같이 인스타그램에서 봐주시는 많은 분들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하나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은 워낙 사진 기반의 플랫폼이다 보니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도 전부 다 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기를 쓰면 쓸 수록 그날의 일에 대한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서 점점 깊은 생각으로 진화하게 되는데 그 많은 생각들을 다 적고 공유해서 인스타그램에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브런치라는 공간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내 이야기, 사진, 손글씨 너머의 이야기를 비하인드 디렉터스 컷 느낌으로 브런치에 담아보려고 한다.더 찐한 수다를 이 공간에서 더 넓고 깊게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