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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데이 Sep 06. 2022

정년보장은 필요 없어요

뭐가 더 필요한지

정년보장, 유연 휴가제, 육아휴직 2년, 낮은 업무강도, 칼퇴근 보장. 괜찮은 연봉.


나의 직장은 소위 말하는 '신의 직장'이다. 혹자는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히 좋은 점들을 가지고 있다. 나의 첫 제대로 된 직장이었고 여기서 벌써 8년 차이다. 꽤 오랜 시간을 여기서 보내왔다. 그런 직장을 그만 둘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처음 취직했을 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너무 놀랍다.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은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막상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그 뒤로는 무엇을 해야 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여기를 들어와서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까지의 여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아쉬운가?를 생각해봤을 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만큼 좋은 직장, 사실 못 찾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뒤돌아서서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대책 없이 그냥 그만둘 수는 없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할 때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은 나를 말렸다. 소현아. 그만한 곳 없어. 진짜야. 너 나오면 분명히 후회할 거야.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흔들렸다. 그래 이곳만큼 좋은 곳 없는데 왜 나는 여기를 그만두려고 하지? 계속 합리화를 하고 남들의 시선대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남들 말을 듣고 미뤄온 시간들이 나의 내면 안에 있는 나를 죽이고 짓밟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할 때가 되어가고 있다. 퇴사 시점은 그냥 운명적으로 알게 된다더니 그게 이런 거구나. 이제 진짜 안 되겠구나. 꽤 강한 확신이 왔다. 강한 확신 다음에는? 그만두고 써 내려갈 그 뒷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한 역대급 불경기가 예상되고 있고, 환율이 계속 올라가는 것을 보아하니 향후 몇 년은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 같아서 완벽한 준비를 해서 퇴사하고 싶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면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퇴사는 처음이라서 무섭단 말이야. 명확하게 내가 그 뒤의 일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그만두고 싶단 말이야.


생각나는 대로 다이어리에 적어보았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아이디어는 적으면서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아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1번. 가계부 정리. 자산 계획 세우기. 퇴사 후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이지 않을까. 퇴사를 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돈을 하루아침에 안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들어오는 돈은 적거나 없어지는데, 지금 쓰고 있는 돈의 상당수는 계속 소비해야 되는 상황이므로 적어도 몇 개월에서 몇 년은 수입이 없는 상황까지 생각하고 돈을 준비해야 된다. 제일 먼저 내가 한 달에 얼마 정도를 지출하는지 평균값을 알아야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버틸 수 있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나는 내년 5월에 청약에 당첨된 조그만 아파트의 대출금까지 갚으면서 버텨야 하니까 그것까지 고려해야 된다.


2번. 부수입 만들기. 퇴사하기 전부터 부수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생각만 계속했지 뭐 하나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어 아쉽지만 지금부터는 부수입에 대한 것들을 많이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달에 만원 정도 간신히 벌리고 있는 수익형 블로그를 조금 더 키워보는 것, 영어를 계속해왔으니까 영어 과외를 하는 것, 써보자고 마음먹고 있는 전자책 하나를 잘 마무리해서 출판해보는 것. 이 정도가 생각이 난다. 어떤 것들이 나에게 큰 수익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뭐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적어보니까 시각화가 된다.


3번. 앞으로의 방향 정하기. 별표 다섯 개.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나는 퇴사하고 뭘 하고 싶은가. 그냥 백수처럼 놀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대학원 진학이나 이직 또는 내 꺼를 만들어보고 싶은 3가지 생각이 드는데 어떤 걸 어떤 방식으로 준비해야 되는지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요즘은 아침마다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명상을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내 꿈에 대해서 계속 시각화를 하고 있는데 아직은 구체적이지 못하지만 조금씩 실마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가장 중요하니까 시간 날 때마다 고민하고 있는 것.


4번. 매일 해야 되는 것 정리. 3가지를 정리해보니 이제 정해지진 않았지만 퇴사하는 그날까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쌓고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감이 좀 잡힌다. 일단 체력을 위한 운동을 넣었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또 뭔가 생산을 해내려면 가장 먼저 체력이 필요하다. 자산 계획을 위해서 매일 가계부를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고, 부수입을 위해서 수익형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세 개에 추가로 계속하고 있는 독서와 수익과 별개로 지속해야 되는 글쓰기를 추가해봤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나는 퇴사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 든다. 언제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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