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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l 24. 2024

프롤로그

꿈을 이루는 언젠가가 아닌 지금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습니다. 꿈이라 해야 할까요. 작가, 화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파티 플래너, 선물가게 주인, 플로리스트, 셰프, 여행 작가 등등. 관심 있는 거라면 뭐든지 꿈꿔봤던 것 같아요. 그러나 대학교는 수능 성적에 맞춰서 크게 무리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과를 선택했었고, 졸업하고는 교수님이 추천해 주셨던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막연하게 꿈꾸던 것들은 언젠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큰 고민이 없이 앞에 주어진 패를 쥐고 살아온 저는 확실히 진취적인 인물은 아니었어요.


 첫 직장은 패션 쪽의 무역회사였습니다. 일본에서 수주를 해 중국에서 제작을 하고 한국은 중간에서 컨트롤하는 일이었어요. 그 안에서 양쪽에서 원하는 것을 내부 조율하며 무역 서류를 담당했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임에도 사회 초년생에 덤벙거리는 성격이다 보니 실수가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한 실수들에도 회사 상사들은 따뜻하고 유쾌한 분들이어서 적당히 혼나가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 속에서 사회인이 되어갔습니다. 상사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로드하여 플레이해주고, 화제의 드라마를 CD로 구워다주고, 싸이월드의 화제 되는 이야기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똘똘한 막내라고 우쭈쭈 해주는 상사분들이 계셔서 제 첫 직장 생활은 안락하고 행복했었습니다. (너무 옛날이야기는 그러려니 해주세요.)


 그렇게 첫 직장을 다니다 구두 디자이너를 준비하던 언니가 함께 하자는 이야기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때는 또 막연하게 드라마 작가를 꿈꾸던 시기라 드라마 작가 교육원에 지원을 하고 작가 준비를 하며 그 사이 언니 일도 도와주자고 치열하지 못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는 자주 낙관하는 편이고요. 그렇게 시작한 패션 쪽 일은 제가 좋아하는 분야이고 어렸을 때부터 선망하던 일이기도 해서 어렵지만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청담동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을 하고 곧 근처에 작은 매장을 열었습니다.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고 백화점에서도 러브콜이 왔습니다. 하나씩 차곡차곡 무언가를 이뤄가는 시간이 가장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반짝일 때는 본인이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잘 모르지만요. 아름다운 구두를 보면서 하는 일들이 당연히도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발을 만들며 빚어지는 공장과의 크고 작은 마찰도, 같은 말을 한 시간이나 반복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고객의 컴플레인도, 신발 판매를 도와주던 큰 업체의 갑질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날도 있었어요. 그러나 힘든 일은 함께 하던 팀원들과 술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털어내는 것이 가능했어요.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다 보면 다음날 아무 일 없던 듯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많은 스케줄에 밤새 야근을 하는 것조차도 힘들다는 생각보다 즐거움을 더 크게 느끼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의 재미에 빠지며 작가의 길은 또 멀리 밀어두었습니다.


 몇 년 후 알고 지내던 대학 교수님이 패션과 학생들을 상대로 저희 회사를 견학시켜 주고 저에게 작은 강의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왔습니다.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들이 승승장구 하던 때였고 대표 디자이너가 전면에 나서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기획 실장급으로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었지만 사실 누구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상황 자체가 낯설었지만 10여 년 간 일해 온 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기에 별 고민 없이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막상 반짝이는 삼십여 명의 눈앞에 섰을 때는 조금 떨리기는 했지만 해오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했고 질문들에도 재미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홍보를 담당하며 브랜드의 스토리와 보도자료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쯤 출간된 디자이너인 언니가 쓰는 책을 돕기도 했고요. 깨닫지 못했을 뿐 제가 꿈꾸던 작가의 일에 조금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회사에서는 브랜드를 알리고 보여주기 위해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꿈꾸어 오던 파티 플래너의 일과 흡사했습니다. 웨딩슈즈 라인이 생기면서 드레스 업체들과 많은 미팅을 하고 웨딩슈즈 디자인에도 함께 했습니다. 항상 선망으로 바라보던 아름다운 하얀 드레스들 사이에서 멋진 패션쇼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살롱 문화를 가진 회사라 여러 사람을 초대해 테이블을 차리고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 과정들이 모두 기꺼이 즐거웠던 것은 제가 좋아하는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사랑한 우리 회사는 도산공원에 갤러리를 열어 여러 아티스트, 장애인 아티스트들과 전시도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전시를 좋아해서 잘 보러 다녔지만 직접 전시회를 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어려웠습니다. 처음 전시를 하던 때는 캡션조차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려웠으니까요. 그렇게 전시도 하면서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깨닿지 못한채 내 안에 쌓였던 일들이 커리어라는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이야기들을 학생들 앞에서 하면서 비로소 제가 해왔던 일들이 저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또 예전에 내가 꿈꿔왔던 일들이 대부분 제 일 속에 녹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꿈을 미뤄둔다고만 생각했던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일이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더 컸던 이유를 그때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었죠. 꿈을 이루며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저는 미뤄두었던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쓰기 위해 응모했습니다. 그 때는 그저 쓰고 싶다는 생각에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작가라는 꿈을 위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하다보니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브런치 스토리에서 '푸드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습니다. 요즘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쓴다는 이유로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작가는 아니라고 쑥스럽게 말을 하다 어느 순간 또 깨닫습니다. 제가 꿈을 하나 또 이루고 있다고요. 저는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라 그냥저냥 살다 보니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하고 싶다는 제 안의 열망이 저를 이렇게 끌고 왔겠다 싶어요. 꿈꿔오던 일이 모두 제가 상상하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만 어쩌면 이 모습이 꿈과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하고 싶던 일 한 가지를 본격적으로 계획해 보려 합니다. 여행 작가가 되기입니다. <여행, 먹으려 떠난 건 아니지만>은 제가 여행하면서 먹은 음식들을 엮어보는 글입니다. 여행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하는 제가 머리를 짜낸 '계속 여행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역시나 제가 상상했던 여행 작가의 모습은 아니지만 모든 꿈이 상상과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아니까요.  

첫 글에 이렇게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게 될 줄 몰랐습니다. 부끄러운 마음도 있지만 적어봅니다. 언젠가로 미루어두었던 것이 지나고 보니 내가 해오던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여행도 음식도 글쓰기도 좋아하는 제가 지금 너무나 하고 싶던 여행 에세이를 미루지 않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챕터가 끝날 쯤에는 여행 작가의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조심히 꿈꿔 봅니다.


                     





<여행, 먹으려 떠난 건 아니지만> 미리보기.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거에요.


프랑스 니스에서 먹은 첫 식사인 바질 파스타. 프랑스 음식은 다 맛있을 줄 알았다...


파리의 노트르담드 성당을 구경하고 나와 먹은 길거리 샌드위치에서는 자유의 맛이 느껴졌다.



샤넬 전시회를 보러 간 상하이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인 훠궈.

먹을 때는 좋았지만 싸고 로컬스러운 훠궈를 먹을 기회가 많은 상하이에서 왜이렇게 비싼 걸 선택했을까란 후회가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조차도 즐거움입니다.



이것 때문에 대구를 가고 싶다 생각하게하는 대구의 제일콩국



비싸고 크게 특색이 있진 않았지만 모두 내 스타일이었던 하와이의 음식



강릉의 중앙시장과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나눠서 이것저것 사서 모인 이들의 술상


1박 2일 제주가 4박 5일 방콕만큼의 여행경비가 나온 건에 대해서. (지금도 의문입니다)



제 2의 고향같기도 한 도쿄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한 부분 같다.


일 년에 두 세번씩 가는 강릉에서 늘 같은 것을 먹는 이야기


양양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한달살기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하여



방콕을 다녀와서  '네버 엔딩 썸머'를 소재로 여행잡지에 부탁받아 원고를 썼다. 그러고보니 첫 여행기도 음식과 관련되었네


홍콩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완탕면과 스파이시 크랩. 사진을 올릴 때 가장 참기 힘든 음식이 바로 스파이시 크랩이다.



부산에 가서 해운대 암소 갈비를 어떻게 안먹을 수가 있겠는가


작년, 코로나가 지나고 간 첫 대만여행에서 먹은 딘타이펑의 샤오롱바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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