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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 Jul 10. 2020

삼전 사기, 좌충우돌 아이슬란드 한 바퀴 - 제 2장

불완전한 여행의 미학, 10박 11일 네 번째 아이슬란드 여행기

새로 오신 독자님을 위한 앞 이야기

①삼전 사기, 좌충우돌 아이슬란드 한 바퀴 - 제 1장

아이슬란드의 제 2도시 '아퀴레이리'를 떠나 서쪽으로 넘어가는 길.


빌릴 땐 자유지만, 받을 땐 아니란다.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아니지. 내가 영어를 잘 못하긴 하지만, 이 정도도 잘못 알아듣진 않아. 그럼 피곤해서 그런가? 아닌데. 여긴 아이슬란드잖아. 그 유명한 아프리카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이성과 사고가 상대적으로 잘 통하는 곳이잖아. 그럼 계약금은 왜 받아간 거야?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이내 감정의 동요를 누르고 머리를 굴려본다. 1종 면허야 있긴 하지. 단지 정말 서류상으로만 수동 기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일 뿐. 게다가, 보통 수동보다 자동이 비싸니까 내가 그냥 수동을 받아가면, 그 차액을 날로 먹겠다는 거잖아.

설사 운전을 줄 안다고 한들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해외에서 한국의 친절함을 기대하는 건 과도한 욕심이지만, 이건 친절도, 불친절의 영역도 아니다. 선을 넘었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99도까지 끓어올랐던 나의 스팀에 1도를 추가한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받을 거라 내심 기대했고 간절히 염원했던 그 주황 레니게이드. 앞서 내게 자리를 양보해 먼저 내려 사무실로 뛰어들어간 그 여자가 가져갔다. 게다가 그 오피스에 대기하던 6여 팀 중, 내일 다시 오라는 소리를 들은 팀은 중국인 한 팀, 우리를 포함한 한국인 2팀뿐이었다.


이거, ‘단순한 타이밍 미스 정도가 아니라 인종차별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렌터카 여행은 첫 바퀴부터 꼬이면 그 실타래를 풀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자니 첫날 일정의 백미인 골든 서클(싱벨리어 국립공원, 게이시르, 굴포스)을 통째로 날릴 판이다. 여행의 중반부터 시작될 스팟들의 퍼포먼스를 극대화시켜줄 디딤돌을 이렇게 포기할 순 없었다. (골든 서클은 처음 방문하면 '우와' 소리 나오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면 기억에서 가장 빨리 잊히는 곳 중 하나다.)


골든 서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 <꽃보다 청춘>이 방문했던 바로 그 굴포스(Gulfoss)다. (2018.01)


내가 꼬꼬마일 적, 주로 시간을 보내던 방법은 내 작은 방에 지구종말을 대비한 벙커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플랜 B(?)를 세우는 것을 좋아할지라도 이런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 없었다. 내가 받고 싶은 차종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했어도, 차가 아예 없는 경우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왜냐? 여긴 아이슬란드니까. 어쨌건, 혼자 전전긍긍해봤자 아쉬운 건 나고 투덜대 봤자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기에 이 문제를 가능한 빠르게 해결해야만 한다. 끓어오른 스팀을 식히고 Rentalcars.com 앱을 켜 다른 렌터카 업체를 물색했지만, 해당 시기에 11일을 연속으로 빌릴 수 있는 업체는 몇 없었다. 있다면 가격이 두세 배로 뛰어서 그렇지…


여하튼, 갈아탈 수 있는 차도 없고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의미한 컴플레인의 반복이었다. 씨알도 안 먹힐 걸 알았지만 어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 걸. 아마 그쪽에서 먼저 미안하다 한 마디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거야. 이제는 자존심의 영역이었고, 소위 말하는 '호갱'이 될 것만 같았다. 이때부터 어차피 망한 거 배 째라 식으로 ‘예약했다, 차 내놔라, 안된다’를 무한 반복했다. 아니, 이건 아시아인을 대표해서 링 위에 오른 것과 다름없었다. 여기서 내가 내려가면 얼마나 우릴 만만하게 보겠어. 그렇게 한참을 옥신각신 하는데, 안쪽에서 직원이 한 명 나오더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와서 하는 말,


'야, 우리 차 있어! 지프 줄게!'


11일 동안 우리의 말이 되었던 '레니.' 잘 보면 오른쪽 전조등도 나가 있다.


어이가 없어서 기쁘지도 않다. '없는 걸 어떻게 준단 말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따지고 싶기도 했으니 한번 물어나 본다. '이거 어디서 났는데?'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그냥, 줄 수 있게 됐어.' 이걸 기뻐해야 하나, 짜증을 내야 하나? 문제는 해결됐는데, 마음은 계속 찌뿌둥하다. 그래, 언제나 목적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번 여행의 목적은 행복한 아이슬란드의 기억을 만드는 것이고, 그 목표를 위해 오늘 여기서 차를 빌리는 거야. 여기서 짜증을 낸다 한들, 저 목적 달성에 하등 도움될 것 이 없으니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래, 이런 게 또 여행의 묘미지. 단, 이걸 묘미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추억을 회상하는 시점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문제지만.


10분쯤 기다렸을까, 차바퀴가 자갈을 밟고 굴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왔다. 혹시 주황색 레니게이드를 주는 건 아닐까? 부푼 마음을 끌어안고 밖으로 나갔지만, 이게 웬걸. 혹시 방금 어디 물웅덩이에 빠져있다가 견인해온 걸 나한테 갖다 준 건가?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만든 창고에서 방금 나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레니게이드가 눈앞에 서있다. 보니 곳곳에 스크래치가 가득하고, 앞유리엔 크랙도 꽤 있다. 문콕도 있고, 아. 이거 자기들이 정비하려고 어디 넣어둔 차를 가지고 나왔구나. 이제야 어떻게 나한테 차를 줬는지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다.


그래, 이게 내가 마주한 실이지.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덤터기를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의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차량 검수의 2대 악조건(어두운 시간, 눈/비)을 모두 갖춘 상황이지만,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이런 상황이 생길 걸 대비해 초강력 플래시 라이트를 한국에서 챙겨 왔기 때문이지. 핸드폰 플래시 정도로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도 힘들뿐더러 다 흔들린 사진은 나중에 증거로 들이밀 수도 없다. 그렇게 30여 분 동안 200여 장의 사진을 찍고, 계약서에 온갖 잡 스크래치를 다 체크하고 차량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땐 몰랐다. 외관만 호다닥(?) 검수하고 떠난 것이 2차 위기를 초래할 줄은... 여하튼, 그렇게 새벽 세 시, 첫 숙소에 체크인했다.


타이어 공기압이 낮은 것쯤은 지나고 보니 큰 문제도 아니었다.


-3부에 계속


부록. 아이슬란드에서 조심해야 할 것


아이슬란드에서는 쓰리프티, 허츠, 엔터프라이즈 등 글로벌 업체를 이용하길 추천한다. 아니면 1군으로 꼽히는 프로 카 같은 영세업체나… 돈이 아깝긴 한데, 적어도 여긴 수리비 덤터기는 잘 안 씌우니까. 아이슬란드 렌트 여행 후기를 조금만 읽다 보면 작은 스크래치에 70만 원을 청구받았다는 약소한(?) 이야기부터 클러치가 고장 나 400만 원을 지불한 여행자, 엔진이 고장 나 천만 원 단위의 돈을 물어낸 사람까지, 자동차 수리비로 다양한 고통을 겪은 여행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바가지 같지만 견인비만 해도 20~70만 원가량 드는 나라니까 차량과 연관된 비용이 어마 무시할 뿐, 덤터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게 업체가 나쁜 의도를 가진 경우에는 싸늘한 비수가 되어 여행자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3류 영세업체의 돈벌이 수단 중 하나는 기존에 쓰인 스크래치 덤터기에서 오는 수리비 심지어 수리는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음 희생양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다. 그래서 항상 풀커버 보험을 들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풀커버라고 진짜 전부 다 보장해주지 않는다 것이다. 
이 풀커버(업체에 따라 프리미엄 보험, 플래티넘 보험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업체 별 상이)도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

1. 렌트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풀커버 보험, 사고 시 수리비를 지불 X, 보장 범위 좁음, 보증금 0원(업체 별 상이), 보험 가격 비쌈
2. 써드파티가 보유한 풀커버 보험, 사고 시 선지 불하고 후 청구하는 방식, 보장 범위 넓음, 업체가 요구하는 보증금 다 내야 함, 보험 가격 쌈


의 두 가지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언뜻 보면 오직 지불 방식의 차이가 있어 보이는 이 두 가지 보험은 완전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풀커버라는 말에 혹하지 말고 자세하게 약관을 읽어보면, 업체 자체 보험의 경우 이런 항목을 볼 수 있다.

글로벌 업체인 Thrifty의 보험 종류. 보통 영세업체에서 말하는 SCDW(흔히 말하는 완전 자차, Super CDW) 보험이 2번째 'Super'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보험은 타이어/휠 파손, 문 꺾임에 의한 파손, 앞유리 등 글래스에 대한 파손, 차량 하부에 대한 파손, 화산재나 모래에 의한 파손을 커버하지 않음!'(업체 별 상이)


문제는 이 항목들이 덴트/스크래치를 제외한다면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차량 파손 사례라는 것이다. 보통 타이어, 휠은 제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문 꺾임은 차에 타보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고, 앞유리 크랙은 기를 쓰고 찾으려 해도 잘 보이지 않고, 하부나 루프는 아예 볼 생각도 못한다. 이런 부위 중 하나에 걸리면 진짜 마음 아픈 지출이 생기니까, 아이슬란드 렌트 여행을 꿈꾸신다면 렌터카 보장 범위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가장 비싼 보험을 구매하도록 하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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