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아
아이가 생겼고 아이와 만나기까지 1달 정도 시간이 남았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끝을 같이 생각한다. 언제까지 끝을 내야 하며,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 인가. 그러다 보니 인생이 어느 순간 재미없는 레이싱이 되어버렸다. 내 인생의 끝이 정해져 있는 레이스. 수많은 미생물과 습기, 작은 곤충들에게 둘려 쌓이는 게 결국에는 인간의 마지막이 아닌가.
하지만 이번일은 이전에 해왔던 무언가와는 달랐다. 아내가 출산을 하면 이번 일은 마무리가 되는 것인가?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가 시작되고 육아는 아이가 20살에 도달하면 끝이 나는 것인가? 사회에 적응하는 걸 도와줘야 끝이 나는 것일까? 어엿한 성인으로 반려자를 찾아 떠나는 순간이 끝인 것인가? 내가 노인이 되고 손자가 생기다면 그건 다시 시작인 것인가? 이 사건의 마무리에 대한 고민은 끝을 알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마지막에 대한 물음에 끝이 없는 건 처음이다. 끝이 어딘지 모르는 레이스. 이 사건은 나를 오랜만에 설레게 만들었다. 늘 끝이 보이는 레이스에 재미도 없고 지루하게 달렸다면 이 사건은 이전과는 달랐다.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옷을 준비하고 잘 곳을 마련하고 알지 못했던 육아의 세계에 대해서 공부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니 정말 오랜만에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거 같다.
비록 내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나의 선택으로 태어날 아이에 대한 책임감. 나의 선택들이 누군가에게 커다란 의미를 만들 수도 있다는 불안함. 내가 현자처럼 늘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기에 매일을 단련을 하고 달라져야 한다.
늘 마음으로는 알았다. 끝이 정해져 있지만 지금에 집중하며 현재가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격언이다. 하지만 지금에 집중해야 할 도파민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을 일에서 더욱 강하게 쏟아져 나오지 않은가. 이렇게 반복된 삶에 이 매거진인 "왜 살아야 할까"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강력한 사건을 하나 맡아서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도록 현재에 집중을 하고 있다. 덕분에 당분간 또는 몇 십 년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접속한 브런치에서 그동안 "왜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며 시작했던 매거진이 고작 3회 만에 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고작 스스로 숨도 못 쉬는 태아에게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되는 걸 보니 삶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떠오른다.
저자는 이제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잠시 미뤄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을 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아직 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그에 맞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단 살아가보자라고 말하고 싶다. 끝이 정해져 있는 레이스라고 하더라고 달리면서 여러 가지의 사건이 지나갈 테고 당장은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일이더라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달리다 보면 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달려라, 달리는 이유를 모르겠어도 일단은 그냥 달렸으면 한다.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달려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