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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틴강 Mar 03. 2023

3월은 무소의 뿔처럼, 겸손하게

3월 3일(금) 2월의 늦은 마무리

2월을 마무리한 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3월 1일은 좀비처럼 하루를 보냈다. 목요일은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가 저녁에 운동을 다녀왔다. 그리고 오늘이 찾아왔다. 금요일은 학원에서 평소보다 짧은 일과를 보내고 귀가한다. 그리고 의정부에 엄마를 만나러 간다. 한 시간 정도 걸려 의정부에 도착하면 엄마 미용실로 가서 짧게 수다를 떤다. 그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엄마와 함께 산책을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금요일 루틴이다. 오늘 저녁은 외식 대신 엄마가 해준 등갈비를 먹었다. 엄청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요리였다. 맛있게 먹었다. 내심 조금 짠맛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엄마 요리를 먹게 되어서 그런지 마음이 고마워서 그런지 엄마에게 맛있다는 말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상념에 젖었다. 


엄마의 마음을 생각을 했다. 내 마음도 생각해 봤다. 수험생활을 생각해 봤다. 3월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봤다. 


엄마의 마음, 월요일이었을까 엄마가 카톡을 보내왔다. 뭐 하냐고 물었다. 나는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몇 달 전부터 말했던 등갈비를 해준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바로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등갈비를 샀다고 해서 웬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금요일이 되어서 의정부에 갔다. 그리고 엄마가 해준 등갈비를 먹었다. 살은 좀 퍽퍽했고, 졸이면서 먹어서 그런지 조금 짰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여운이 남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였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득 상념이 찾아왔다. '잊고 살던 것들이 있었구나'생각했다. 표현하는 것을 잘 안 하고 살았구나 생각했다. 엄마와 매주 금요일에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산책을 했지만, 수많은 대화 중 엄마에게 엄마에 대한 어떠한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구나 생각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카톡이나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곤 했는데, 그러한 것들이 어느새인가 잦아들었던 것이 등갈비를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계속했던 내 모습을 통해 느껴졌다. 등갈비. 엄마의 마음. 나의 표현. 집에 돌아와 남은 등갈비를 냉장고에 넣으며 엄마에게 연락했다. 감동적인 맛이었다고.


내 마음, 2월의 마무리가 늦었다. 형사법을 끝내는 날이 하루 미뤄져서 3월 1일에서야 마무리가 됐다. 그리고 오늘 범죄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3월이 시작됐다는 것을 인지했다. 3월 25일 순경시험만 생각하다 보니 3월이 시작됐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늦었나 보다. 돌이켜보면 3월 25일에 대한 나의 마음은 겸손하지 않았다. 어쩌면 거만함에 가까웠다. 순경시험을 앞두고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생각했던 것은 답안지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였다. 참 부끄럽다. 나는 순경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마음이 전제로 깔려있었다. 부끄럽다. 겸손하게 공부해도 부족할 때 마음에 허가 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고, 나름 유지가 되고 있으니까 자신감이 자만심이 되어가던 중이었던 것 같다. 자만하지도 자학하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찰학도 계속 안 보고 있었던 것을 반성하게 됐다. 계속 안 보고 있었어도 이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 한 번 점수를 올려뒀으니 다시 올려서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고, 후회한다. 아주 멀리까지 가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겸손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답안지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순경시험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지, 무엇을 목표로 해서 3월을 달려 나갈 것인지 생각했어야 했다. 겸손하게 다시 공부해야겠다.


3월은 '무소의 뿔처럼, 겸손하게'라는 마음으로 보내야겠다. 최근 학원을 그만둔 친구가 몇 있다. 취업을 하게 된 친구도 있고, 건강관리를 하기 위해 그만둔 친구도 있다. 그전에 그만둔 친구들도 꽤 있다. 각자의 이유로 그만두었고, 각자의 상황에서 더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다. 남은 사람과 떠나간 사람, 아마도 이전에 있었던 직장에서는 내가 떠나간 사람이었을 텐데 이곳에서는 내가 남은 사람이다. 빈자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뭔가 아쉬운 마음도 들고, 같이 끝까지 완주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든다. 어디에서든 남은 사람과 떠나간 사람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줄거리도, 주제도 기억나지 않는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책이 떠올랐다. 무소의 뿔처럼 흔들리지 않으며 묵묵히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두는 친구, 마음이 어려운 친구, 평소처럼 농땡이 피우는 친구, 시험만 보면 힘들어하는 친구들 속에서 나는 무소의 뿔처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금은 혼자서 말고 같이 공부하고 있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그리고 '겸손하게' 목표를 향해서. 겸손해야 한 글자라도 더 본다고 느낀다. 3월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 봤다. 3월 22일 렉스 7회 모의고사에서 10개 이내로 틀리기, 3월 25일 순경 시험에서 필기 합격하고, 체력시험까지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남은 3주를 보내야겠다. 그리고 나에게는 3월 25일이 3월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상기했다. 나는 3월 31일까지 있고, 그날이 지나면 바로 다음 시험은 나의 본시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7월 29일까지 겸손하게.


수험생활에 몰두하다 보니 잊고 사는 것, 놓치고 사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있다는 것 자체도 잊어버리고 산다. 오늘은 그것을 느끼게 되어서 조금은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잊고 있다는 것을 잊은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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