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밤 10시 제주의 한 달 살기 타운 주차장에 투숙객들이 모였다
오늘 밤하늘은 특히나 더 맑았고, 우리는 아부오름에 별을 보러 갈 예정었다. 주차장에 가득 뜬 별에 마음이 설렜다. 은하수를 볼수 있을까? 아부오름에 가는 차 안에서 입실, 퇴실일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하는 일과 소속에 대해 공감과 칭찬을 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아부오름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가로등이 거의 없는 제주의 깊은 산 속이라 하늘의 별이 정말 잘 보였다. 그보다 놀란점은 머리 위 달빛이 너무 밝아 달빛에 그림자가 졌다. 나는 달빛이 만든 그림자를 처음 보았다. 사람들 발 밑에 동그란 그림자가 하나씩 달려있었다. 애석하게도 아이폰 14 Pro 휴대폰 카메라로는 잘 담기지 않았다.
오름을 오를 땐 플래시를 끄자고 제안했다. 달빛만이 유일한 광원인 이곳에서 휴대폰 플래시를 발 밑에 켜니 오히려 휴대폰 아래와 밖의 밝기 대비가 심해 플래시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쉬웠기 때문이다. 플래시를 끄고 암적응을 하니 달빛만으로 오름을 오르는 쉬운 오솔길을 오를 수 있었다. 등산로 손잡이의 하얀 밧줄이 은은하게 빛났다. 헨젤과 그레텔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달빛에 빛나는 조약돌을 보고 돌아왔다는 말을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것도 처음 본 순간이다.
5분 정도 걸어 정상에 도착할 때쯤 갑자기 구름이 몰려왔다. 하늘의 별은 가려지고 곧 달빛까지도 희미해졌다. 구름은 한라산 쪽에서 와서 바다 쪽으로 사라졌다. 별 보러 왔는데 정상에 오니 별이 사라져 버려서 애꿎은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만 몇 장 찍어볼 뿐이었다. 아쉬웠지만 상황이 어이없고 웃기긴 했다. 정말 하나도 안보였다. 그래도 준비해 간 돗자리를 펴고 여럿이 머리를 한 방향으로 하고 누웠다.
나는 눕는 대신 어둠 속을 걷고 싶었다. 달빛이 희미한 오름(언덕, 얕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야경이랄 것도 없고 마치 전쟁이 나 불 꺼진 도시를 보는 기분이었다. 한라산에선 안개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가려진 달빛이 구름 속도를 보여주었다.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오름은 길이 하나밖에 없다. 전진 혹은 후진. 이 길을 계속 걸으면 오름을 한 바퀴 돈다. 멀리 있는 나무와 가까이 있는 나무가 구분이 안 가 머리를 들어 앞을 보려 할수록 무서웠다. 고개를 들고 걸으면 앞이 안 보여 몇 걸음 가기 전에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자동초점카메라가 어둠 속에서 초점을 못 잡았는데 내 눈도 똑같았다. 근데 고개를 내려 발 밑만 보면 길이 보였다. 발 밑이 어두워지면 달이 가려진 것이고, 발 밑이 희미하게 밝아지면 구름사이로 달이 나온 것이다. 앞을 안 봐도 주변을 느끼고 있다고 착각했다. 앞이 안 보일 때 한 걸음씩 나가라는 말을 몸으로 체감한 순간이다. 정신을 차리고 카카오맵을 켜보니 1/4 지점까지 와있길래 되돌아갔다. 일행이 있어 혼자 행동할 수는 없었다.
되돌아가는 길에 날 따라와 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손을 흔들고 춤을 췄다. 양손을 희한하게 흔드는 이상한 실루엣의 답무가 돌아왔다. 맞구나 내 남편. 어둠 속에서 보니 더 반가웠다. 손을 잡고 길을 나란히 걸으니 앞을 볼 수 있었다. 와. 나 오늘 뭐 많이 깨닫네.
누워서 별을 보던 사람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둠 속을 걷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하얀 밧줄을 잡고 내려왔다.
나는 이 어둠이 생소해 계속 즐기고 싶어 여전히 플래시를 켜지 않았지만 뒤에서 오는 일행분이 비춰주는 은은한 플래시가 도움이 되었다. 제주에 오래 사신 분들은 익숙한 어둠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시는 듯했다.
나는 별 보러 가서 별 대신 보고 느낀 어둠과 밝은 달빛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다음날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오름에 다시 오르게 되는데 그 이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