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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Feb 02. 2023

요가 6년 만에 나도 드디어 그분을 만났다

그분을 뵈면 어떻게 대처하나요?

나는 6년째 주중에 몇 번 퇴근 후 집 근처의 한 칸짜리 작은 요가원에서 요가수련을 하고 있다. 노곤한 밤의 불빛 아래 격하게 땀을 흘리는 것이 좋아서 밤 수련을 특히 좋아한다.


퇴근 후 간단히 에너지바나 과일을 먹고, 빠듯하게 도착한다. 미리 챙겨간 요가복을 서둘러 갈아입은 후 먼저 도착한 분들의 몸풀기를 방해하지 않으려 종종 걸어 수련실에 들어가면 담요가 하나씩 놓여있다. 선생님이 그날 수업을 예약한 회원들이 자신의 요가매트 깔 자리를 미리 표시해 두신 것이다. 선생님 포함 9명이 매트를 펴면 충만해지는 이 공간은 덕분에 더욱 아늑해진다.


남은 몇 자리 중 가장 구석진 곳을 골라 매트를 편다.  뻐근한 어깨를 펴고 살짝 부대낀 배를 다듬으며  요가를 시작한다. 이미 해는 져 있어서 주변은 어둑어둑하고 조명도 휴식에 좋은 조도로 맞춰져 있다. 딱 내가 좋아하는 느낌.


오늘의 수업은 트위스트(비틀기)를 주제로 한 딥플로우 요가다. ‘플로우’가 붙은 요가는 한 동작에서 오래 머무는 대신 춤추듯, 물 흐르듯 동작과 동작사이를 부드럽게 이어가며 하는 요가수련방식이다. ‘딥’이 붙었으니, 동작은 아주 깊게 들어간다. 그래서 다소 난도가 높다. 나름 오래 수련을 했다고 생각해서 난이도 상관없이 시간 맞는 수업을 듣는 편인데 최근 어깨와 허리가 많이 굳어있어서 딥플로우 수업은 각오를 하고 들어야 한다.


몸이 안 좋은 탓인지 누워서 가볍게 푸는 동작인데도 벌써 장기가 척추 따라 비틀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우리 수련의 묘미인,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간다를 떠올리며 열심히 이어간다. 곧이어 팔도 꼬고, 다리도 꼬고, 척추도 비튼다. 일어서서 비틀고, 앉아서 비틀고, 한 발로 버티며 비튼다. 아, 오늘의 피크포즈로 머리서기를 하면서도  다리를 가위처럼 비틀며 찢었다. 호흡에 동작을 실어 열심히 비틀고 나서는 누워서 허리와 윗등을 쉬게 해주는 해피베이비 자세를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도 요가수업 6년 만에 처음으로 그분을 만나고 말았다. 방국봉 씨를.


방국봉 씨... 는 뽀옹.. 하고 오시지 않고, 뽀도독하고 오셨는데 나는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그 순간 ’헙‘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행히 질끈 눈을 감아서 참아냈다) 누워서 양팔을 뻗으면 손이 닿을 거리의 내 옆 자리 회원님은 당연히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아직 마스크를 쓰고 수련하고 있었고, 냄새도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 이후로 나는 잡생각을 하느라 수련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는데


‘아까 요가매트 발로 밀 때도 ‘뿌드덕’ 소리 났는데 그 소리로 알지 않을까?’

‘뽀도독’님이 오시는 게 나을까 뽀오오옹님이 오시는 게 나을까’

‘수련실의 몇 분이 이 소리를 들으셨을까’

‘나인걸 다들 알까?’

‘열심히 수련해서 이완한 거니까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방귀 뀌는 건 부끄럽지 않은데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잡생각이 엄청났다. 어느새 사바사나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사바사나를 알리시고는 조도를 더욱 낮추며 ‘인/센/스’를 태우셨다. 아..역시 냄새가 나나? 아니, 사바사나쯤에 원래 인센스를 원래 태우셨었나? 나 때문은 아니시겠지? 평소엔 수련에 집중하느라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사바사나에 선생님이 무얼 하시는지 하나하나 다 신경쓰였다.사바사나가 요가수업의 하이라이트인데 전혀 휴식할 수 없었다.


망했다 생각하며 망상을 계속하는데 어디선가 ‘코으오으--’. 희미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니 저 멀리에서도 잠이든 것이 분명한 거친 숨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어둠 속에서 잠든 사람들 숨소리를 듣다 보니 갑자기 안심이 밀려와 잡생각이 사라졌다.


이 수련에서 나 말고도 완전히 연소하고 이완한 사람들이 있구나. 내 방귀소리... 조금은 이해해 줄지도... 아니, 어쩌면 내가 평소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다른 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겠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숨을 고르고 사바사나의 끝을 알리는 띵샤의 맑은 소리가 들릴 때까지 방귀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장트러블로 요가 수업 때 방국봉 씨를 호출할까 걱정이 되는 초심자 분들이라면, 직장인이 가득한 평일 어둑한 저녁 요가원에서 깊은 수련에 도전해 보자. 그분을 만나도 코를 골며 주무실 수 있는 진정한 도반이 곁에 있을 테니-.



23년 1월 17일 저녁 수업.

딥플로우 빈야사. 80분.



오늘의 아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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