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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Nov 21. 2016

청와대가 사라졌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난 군중의 분노한 함성과 구호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보도와 도로를 빼곡히 메운 인파가 거대한 물결을 이뤄 전진에 전진을 했다. 경찰은 차벽으로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


이제 곧 경찰이 세운 벽과 행진하는 군중이 대치를 앞두고 있었다. 방송국의 카메라는 바쁘게 경찰과 촛불을 든 군중을 번갈아 비추기 시작했다.


경적소리와 함성 소리, 교통을 정리하는 경찰이 쉴 새 없이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까지 밤거리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찼다. 차벽 뒤로 채증용 카메라를 매단 막대가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마침내 군중이 차벽 앞에 도달했다. 그 뒤로 차곡차곡 길게, 빼곡하게 경복궁역 주위가 인파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비켜라! 비켜라!”


결집된 군중의 목소리는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경찰 벽을 해제하라 요구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분노, 절망, 허탈에 기쁨과 환희 또한 존재했다. 순간의 감정이야 다양할지언정 이들의 목적은 모두 같았다. 대통령의 퇴진이었다.


밀집한 군중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의 최전선의 밀도는 최악이었다. 차벽과 무리지은 사람들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플래시 라이트가 순간적으로 점멸하듯 강렬한 불빛이 사위를 채웠다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강풍이 휘몰아쳤다. 그 위력이 대단해 차벽과 차벽 뒤의 경찰부대 그리고 군중을 전부 뒤쪽으로 조금씩 밀려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호흡을 할 수 없었으며 도미노처럼 줄줄이 뒤로 쓰러졌다.


바람이 품은 뜨거운 열기로 초겨울의 날씨가 마치 여름처럼 느껴졌다. 차벽 뒤쪽에 있던 경찰부대의 최후방에 있던 경찰들의 방호복에는 불까지 붙었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뒤엉켜 있었다. 까무러친 사람, 신음을 토하는 사람, 울며불며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으로 집회 현장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경찰이 모종의 무기를 썼다는 사람, 끝내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도 있었고, 북한의 침공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차벽 뒤의 경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피해가 심각했다. 군중과 비슷한 모양새로 뒤엉켜 있었고, 몸에 불이 붙은 후방의 경찰들은 심각한 화상이 우려됐다.


이러한 혼란의 실체는 다음날에야 드러났다.


청와대가 사라져 버렸다.


청와대와 부속시설물들이 있던 자리는 시커멓게 그을린, 완전히 폐허가 된 텅 빈 공터만이 남아있었으며 바닥이 움푹 파여 있었다. 아주 크고 뜨겁게 달아오른 무언가가 청와대 일대를 완전히 깔아뭉갠 것 같았다.


청와대 뒤쪽으로 난 북악산 언저리는 숯이 된 나무들이 한쪽 방향으로 줄지어 쓰러져 있었으며 그 너머에는 멀쩡한 나무들이 같은 방향으로 누워있었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을 포함,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청와대가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고, 당연히 안에 있던 모든 청와대 내부 인사들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치, 사회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비선 실세 사태,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 대통령의 퇴진과 처벌을 요구하던 여론은 이제 미스터리한 청와대 증발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뉴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북한은 발 빠르게 자신들의 저지른 테러는 아니라는 성명을 냈다. 군사전문가들도 청와대가 사라진 정황은 기존의 무기의 위력과 작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 지적했다. 또한 미사일이라든지 비행체가 포착되거나 한 정황도 없었고, 한창 시위가 벌어지던 시간, 보안과 방비가 철저했던 청와대에 누가 몰래 침입했을 가능성도 적었다.


어쨌거나 당장의 국정운영을 위한 새로운 정부의 구성이 필요했다. 국회는 그간 들끓던 민심을 반영, 기존의 국무총리의 해임을 추진하고 새로운 국무총리를 선출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차기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각계의 전문가들은 청와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의 본질, 배후를 밝히려 애쓰고 있었다. TV토론회에서 한 패널은 청와대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한 과거의 사례를 가져와 자신의 생각을 개진했다.


“1908년 6월 30일 모스크바 동쪽 퉁구스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농부인 세르게이 세메노프는 하늘에서 빛을 목격했고, 열기에 셔츠가 탈 뻔했습니다. 퉁구스카의 거대한 숲이 사라지고, 그곳은 움푹 파인 진흙 벌판이 됐습니다. 타 죽은 순록으로 가득했고, 나무들이 숯이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탐사대가 지하 30미터까지 파봤지만 운석 및 외부물질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뒤늦은 1965년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몇 초간 1000조 줄의 에너지가 분출됐음을 밝혀냈습니다. 물론 핵폭발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할 수 있는 물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반물질입니다. 퉁구스카에는 우주에서 온 지름 1미터 정도의 반바위 덩어리가 대기에서 폭발했을 거란 설이 있습니다. 반물질은 모두 우주, 특히 우주선(cosmic ray)에서 검출되곤 합니다. 이번 청와대 증발 또한 반물질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연히 퉁구스카 사례보다 훨씬 작은, 지름 1미터는커녕 1센티도 안 되는 작은 반물질 먼지였을 겁니다. 물론 추측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현재로써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혜성의 파편이 폭발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과학적 분석보다 ‘천벌’이라는 막연한 가능성에 더욱 주목했다. 비선실세로 지목당한 C씨도 청와대에 천벌이 내렸다며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어쨌거나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던 어지러운 시국에 청와대 일대라는 특정한 지역에 그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우연치곤 너무도 절묘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성과 논리보다는 종교적 혹은 운명적 필연성에 더욱 의지하도록한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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