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세 번째 : 인생언니 이효리
"가수로 성공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행복한데.. 그냥 사는 거지.. "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5수 끝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한 민박 손님의 고민을 들은 뒤, 이상순과 나눈 말이다. 민박 손님은 "대학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다"며 울었다. 나도 그랬다. 대학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고, 취직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리고 퇴사만 하면 행복할 거 같은 단계에 이르렀고, 퇴사했다. 이제 '퇴사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단계에 이를 차례인가. 줄어드는 잔고를 보며 다시 어쩔 수 없는 취직을 꿈꾸겠지.
퇴사를 할 때까지, 아니 취직을 할 때까지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한 학기에 두 번 있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 남들이 인정하는 취직을 하는 것. 좋은 대학을 가고 가니 세상을 얻은 듯 자신감에 찼다. 그 자신감은 입학하기 전 새내기 배움터에서 이미 무너졌지만, 난 학벌로는 결코 열등감을 가지지 않는 방어권을 얻는 것에 만족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 다하는 여행, 맛집, 동아리를 모두 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고시, 대기업이 아니라 소위 '힙한' 삶을 살고 싶었다. 미식축구 매니저, 영어회화, 정보문화학, 대학 연합 동아리 창단 등 들으면 한 번쯤은 호기심을 드러낼 것들에 도전했고, 장준하, 희망대행진 등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일들을 벌렸다.
이대로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던 찬란한 20대는 지나버리고, 어느덧 무직의 29세가 됐다.
그 사이 남은 것은 별 거 없다.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하지 않으니 의욕이 떨어지고 나의 모든 일들은 용두사미가 됐다. 친한 친구 1명을 남긴 것만 해도 값진 경험이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한 나의 미래는 이게 아닌데 싶어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지금의 모습을 합리화하기 핑계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4년간 3번의 퇴사. 프로퇴사러가 되고, 백수가 된 뒤에 본 '효리네 민박'에서 머리를 맞은 듯 배웠다. 지금까지의 난 행복을 찾기 위해 미친 듯 달렸다. 남들의 인정도 받고 싶었고, 다른 삶도 살고 싶었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뭐만 하며 행복할 줄 알았던 삶으로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던 것이다. 그냥 살면 되는 건데.
이제는 그 압박, 스스로를 가두는 행복의 틀에서 벗어나 그냥 사는 삶을 살아보자. 캐나다 여행도 행복하고, 알차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순간을 즐기자. 가끔씩 남들과의 비교가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을 깨우기도 하지만, 누가 그러더라. "앞으로 40년은 계속 돈 벌어야 하는데 1~2년 늦게 시작하는 게 어때서"라고. 행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냥 순간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순간 욱하는 성격은 어쩔 수 없지만.
이효리는 고민하며 우는 민박 손님에게 "예전에 난 내가 예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날 예쁘게 봐주지 않을까를 먼저 걱정했다. 그런데 그건 내가 나를 예쁘게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면서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할 것을 조언했다. 나도 나를 예뻐하기로 했다. 그래서 퇴사를 할 수 있는 내가 즐겁다. 취직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나는 퇴사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