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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훈 Jan 16. 2020

아무튼 비건, 비건을 지향하기로 결심하다.

비건적 삶의 기록 #1

 2020년 첫 책으로 아무튼 비건을 읽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리스트에 올려놓은 지 1년 만이었다. 잊고 있다가 이 책을 결국 구입하게 된 3가지 계기가 있는데 첫째는 이슬아 작가의 첫 인터뷰집인 <깨끗한 존경>을 읽고 인터뷰이로 나온 김한민 환경운동가가 쓴 이 책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고, 둘째는 나와 둥둥거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친구가 비건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연말에 나의 허무맹랑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이 유니버스 모임에 가서 '지구를 사랑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말했고 그 말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3가지 계기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버무려지면서 아무튼 비건을 읽을 타이밍이라는 게 생겼다. (이는 사실 타이밍을 운운하며 지금까지 이 책을 미뤄온 나 스스로에 대한 핑계에 가깝다.)



아무튼, 아무튼 비건이라는 이 작고 얇은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며, 이렇게나 거창하게 읽을만한 타이밍을 만들어낸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고 적어도 앞으로 비건적인 삶을 지향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외면해온 시간에 비해서 설득되는 시간은 아주 단순하고 짧았다. 책 초반에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연&동물과의 '연결감'을 사회화되면서 어떻게 잃어왔는지, 인간이라는 위치에서 개는 반려동물로 돼지는 식용으로 분리하며 얼마나 동물을 타자화했는지, '인도적인 도살'이란 말이 얼마나 형용모순한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일은 공장식 축산(동물권뿐만 아니라 인권, 노동권도 연관되어 있는) 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을 접하며 짧고 굵게 더 이상 이러한 인간이기도 한 나를 외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 운동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동물권과 비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나에게 모순되는 행동이었다. 특히 몸과 정신의 건강, 자연과의 조화, 연대와 회귀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나에게 비건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은 너무나도 잘 맞았기에 비건 지향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정의하는 사람답게 사는 삶을 위해서는 비건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출처 : pixabay

그렇게 초반부터 강력한 설득이 된 뒤에는 앞으로 비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며 책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정말 좋았던 점은 이 책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행복을 주는지 알려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비건은 삶을 외면하지 않고 즉시 하는 것, 타자에 눈을 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라는 것,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는 말 등등. 그중에서도 '비건의 이상은 감각과 감수성의 혁명적 전환이다'라고 말하며 비건의 창조성을 언급하는 부분이 마음을 건드렸다.


비건은 평범한 개인이 지구의 동물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도울 수 있는 운동이다.
비건은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이자 소비자운동이다.
나는 비건이라는 개념이 나의 몸과 영혼 자연의 건강 모두를 아우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건의 목적은 지구와 동물들에게 끼치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더 건강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아무튼 비건> (김한민, 위고)


비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특히 비건의 시선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은 참으로 특이했고 언젠가 소설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들기도 했다. 그 어느 곳보다도 트렌트와 유행에 민감하지만 채식에 있어서 만큼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느린 점, 성장 위주의 경제모델을 추구해온 대한민국의 관성에서 채식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동물에 대한 감정 이입이 비교적 쉬운 강아지를 먹는 나라에서 동물권 운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각종 소수자 운동에서 억압을 작동시키는 원리가 얼마나 비슷하고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행동이 어떻게 해방운동에 영향을 끼치는지 등. 생각하고 옮겨볼 법한 지점이 많았다. 그 외에도 비건적 삶을 살면서 나름의 기준을 정하는 방법, 채식에 대한 잘못된 오해나 편견들을 바로잡아주는 것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얇고 귀여워 보이는 책에 이런 많은 내용이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잘 들어가 있나 싶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이 책의 에필로그가 내 마음에 잔상을 남겼다. 작가분의 가족이자 강아지인 '난희'가 가르쳐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나 마음가짐.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 우리 집 강아지 별이. 태어난 지 채 3달이 되기도 전에 우리 집에 와 많이 부족한 가족들 사이에서 부단히도 많은 것을 내어준 고마운 친구. 행복하면서 동시에 슬플 수 있다는 것도, 살을 맞대고 자는 게 얼마나 고요하고 평온한 기분을 주는지도, 말없이도 많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한결같이 믿음을 보여주는 것도 모두 별이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그런 별이에게,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대단한 선포인 것처럼 말해서 더욱 미안하게 비건적 삶을 시작하려 한다. 오래 꾸준히 주어진 것들을 직면하며 다 같이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반드시 비건이 아니더라도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다면, 좀 더 연결된 세상 속에서 따뜻하게 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비건은 함께 잘 살고자 하는 태도이자 동시에 나를 더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임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비건에 대한 오해 & 팩트체크

동물들도 동물을 먹잖아 - 인간의 윤리를 동물의 행동 생태에 기초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동물 착취를 정당화할 때는 인간의 우월함과 특별함을 들먹이다가,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싶을 때는 우리 역시 어쩔 수 없는 동물일 뿐이라며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은 편의주의적이고 비겁하며 앞뒤가 안 맞는 태도이다. 생태계 파괴를 일삼으면서 자연의 일부분만 임으로 본떠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스스로의 모순에 갇힐 뿐이다.

축산업은 분뇨 처리 비용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니, 업계가 이윤 추구를 하면서 생기는 똥을 우리 세금으로 치우는 셈이다.

달걀과 유제품 생산 과정은 육류 생산보다 더 잔인하면 잔인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필수 영양제로 고대 포장된 동물성 오메가 3 건강 보조제품 때문에 남극해의 크릴도 남획되고 있어 극지 생태계까지 위기를 맞고 있다. 식물성이면서 오메가 3가 풍부하고 중금속 오염이 없거나 훨씬 적은 들깨, 미역, 시금치, 아마 씨, 호두, 올리브 오일 등을 추천한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식생활 방식은 비건과 로커보어 (지역 먹거리 주의자)를 합친 형태일 것이다.

지구 생태발자국 네트워크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 도시인들의 평균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려면 지구가 약 3.3개 필요할 만큼 우리는 생태 발자국이 크다. 즉, 자원 소비량이 많다. 우리의 책임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행동도 많이 요구되는 것이다.

풀어서 기르는 닭, 풀 먹인 소는 문제없다 - 본질을 희석하고, 동물을 착취할 수 있는 제3의 선한 방법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더 위험하다. <아무튼 비건> (김한민,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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