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훈 Nov 09. 2020

우리의 몸짓이 빛이 될 때

현대무용 워크샵을 통해 내가 배운 것

- 201107 무용 워크샵

 

 어느덧 현대무용을 취미로 시작한 지 3개월. 오늘은 현대무용 수업 진도를 나가는 대신 흥미로운 워크샵을 경험했다. 일종의 미러링. 바로 상대방 무용수의 행동을 거울처럼 따라 하는 것이다. 따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따라오게끔 리드도 번갈아 하면서.

이 행위를 할 때는 나 혼자 기술을 넣어가며 잘해 들려해서도 안되고 혼자만 리드해서도 안되며 상대방과 오롯이 합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몸짓과 시선으로 서로의 타이밍에 녹아드는 것이다. 무용쌤에게 이것에 대해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땐 눈을 맞추며 춤을 추는 상황이 너무 어색할 것 같았다. 방금 인사를 처음 나눈 사람과 아이컨택을 계속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인데 순간순간 상대방의 동작을 따라 하거나 상대방이 머뭇거리면 내가 동작을 만들어내 상대방이 따라오게끔 만들어야 하는. 허나 뭐든 해보면 후회보다는 경험이 더 남는 일. 그리고 역시나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즉석에서 눈을 10분 이상 맞추며 그 어떤 접촉도 없이 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정말이지 '감각'적인 순간이었다. 감각을 곤두세우고 눈 앞의 몸짓에 몰입하며 몸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 함께 선을 그리며 춤을 추고 나니 언어적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배려하는 태도 같은 것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과 배려를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춤을 통해 무언가를 분명히 나눈 것만 같았다. 실제로 함께 춤을 췄던 분들은 내게 '영훈 씨 성격은 차분한 것 같아요.', '상대방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것 같아요.', '절 생각해주는 게 전달되었어요.'와 같은 말들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춤은 나를 너무 많이 드러내는 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일.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한 몸이 말하고 싶은 아기처럼 옹알이하는 일 같기도 했다. 춤에는 생각보다 나의 성질이나 가치가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그것이 나도 모르게 표현되고 있었다. 언어와 접촉이 없어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믿으면, 주고받을 수 있다 다짐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상상하면 실제로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주고받을 수 있고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적어도 이 몸짓을 통해서만큼은 정말 그랬다. 몸의 언어는 상상하는 만큼 자라난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들은 전집에 가서 우리의 무용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 모습이 어색했는지 괜히 더 크게 웃어 보이고 말없이 영상에 눈을 모았다가 다시 서로의 눈을 보고 각자의 표현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친구는 인디밴드가 너무 좋아 홍대 클럽을 쏘아다니며 방방 뛰는 식으로 에너지를 표현했고, 한 친구는 마주 보고 앉아있지 않는데도 웃을 때마다 나에게 눈을 맞추는 식으로 마음을 표현했고, 한 친구는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보여주며 사랑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표현했고, 한 친구는 막걸리를 핑계로 지난날의 추억들에 눈물을 흘리는 방식으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전까지는 그저 같이 무용 수업을 듣게 된 타인에 불과했지만 춤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주고받은 사이가 되었다.

집에 오는 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표현하거나 표현되는 행위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죄다 아찔하구나. 눈부셔서 온통 아릴 정도로. 몸의 언어는 물론이고 표현되어도 나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타인의 아픔. 식물의 이타심. 동물의 요구. 들리지 않는 우주 어딘가의 주파수. 단 하나도 같을 수 없는 제각각의 움직임들은 또 어떠할까. 너무 많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방식으로 그들의 표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활기를 치고 있을 것만 같다. 그 모든 현상들을 감각할 수 있다면 어쩌면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까.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반사하고 산란하고 흡수하고 투과하는 빛처럼. 그래서 빛을 보면 눈이 부시고 셔터를 누르고 빤히 바라보고 한번 더 바라보고 그러는 거지 않을까. 너는 얼마나 자라서 얼마나 멀리 간 거니 하면서.

나는 오늘의 감각을 결국 또 글이라는 수단에 파고들어 표현하지만 몸의 대화와 그 후의 몽상 그리고 끄적임을 통해 하나의 다짐을 하게 됐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일은 다가오는 것들을 감각하기 위해 나를 최대한 열여 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다가오는 것들을 외면할 때 나는 최대한의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문을 활짝 열어둠으로써 나는 더 깊고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고 '발산하는 사랑'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정성 들여 세심히 감각하고 그것을 다시 표현하는 일은 그 자체로 빛나기도 하니까. 글을 쓰든 춤을 추든 명상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책을 읽든 세상을 궁금해하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든 섹스를 하든 계절을 느끼든 사랑을 하든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우리가 곧 빛이라는 말도 우리는 빛이 될 수 없다는 말도 결코 할 수 없지만, 그저 주어진 순간을 빛처럼 살아보는 일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한 것 같아라고 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반사하고 산란하고 흡수하고 투과하며 다가오는 여러분들도 모두 마음껏 빛나 주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스펙트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