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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Oct 27. 2022

아들과 함께 러브호텔

여전히 모자란 해골물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과 러브호텔에 갔다. 아내와도 한 번 가본 적 없는 곳을. 물론 신기한 성인 장난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본격적인 러브호텔은 아니다. 예전에 러브호텔이었던 곳을 ‘러브러브’한 컬러를 약간 빼고 좀 얌전한 호텔로 변신을 시도한 곳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우리가 묵을 당시에도 젊은 연인들만 보였다.


아들과 짧은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를 알아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다. 연휴 기간이라 게으른 여행자에게 남아 있는 방이 없었다. 방이 있긴 했지만 예전에 이용했던 가격에 많게는 세배를 주어야 했다. 결재하려던 손이 부들부들 거리다 포기하고 말았다.


구글 지도를 통해 바닷가 근처의 숙박업소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이곳이었다. 창밖으로는 서해대교가 보이고 갯벌이 장대하게 펼쳐졌다. 약간 께름칙했지만 창 밖 풍경이 좋아 예약을 했다.


막상 가 보니 주차장도 넓고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숙박업소에 있는 관리자는 서늘한 날씨에도 민소매 옷을 입고 보란 듯이 팔뚝의 문신을 자랑했다. 아들과 함께 좁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향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향수의 미니왕국에 들어온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밤 9시 정도였다. 갯벌과 바다는 컴컴했고, 저 멀리 서해대교만이 우주에 떠 있는 구조물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에 흠뻑 빠져 쳐다봤지만, 아들은 호텔 앞에 버려진 ‘올드’ 카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차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무슨 차인지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처럼 주위의 잡초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었다면 인상 깊은 폐허 사진이 될 듯했다.


예상했듯이 호텔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흔한 편의점도, 슈퍼도, 길고양이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외딴 섬 같았지만 개인적 취향에 맞는, 하룻밤 묵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다만 방음이 신경 쓰였다. 혹시라도 한밤중에 호텔에서 이상야릇한 소리라도 들려온다면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라, 분명 이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그 소리를 아들과 함께 듣고 싶지는 않았다. 더더구나 아침에 일어나 아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밤에 침대에 눕자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 샤워기를 드는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호텔은 고요했다. 결과적으로 밤 내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신기했고 미안했다. 사람의 외양만 보고 그 속까지 판단해버린 속물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서.


물론 이 성수기에도 옆방이 비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우주선만큼 최첨단 방음시설이 갖춰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입실할 때 봤던 민소매 남자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개성을 어둠의 세계와 연결시키려 했던 나 자신의 속단에 대해.


아침에 호텔을 나설 때 비가 내렸다. 어때, 이 정도는 괜찮지? 하는 기분 좋은 가을비였다. 밤사이 걱정으로 마음에 낀 때를 씻어주는 듯했다. 아들은 아빠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춘기 소년 특유의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다. 세상만사에 관심없다는 듯.


떠나올 때 본 호텔은 멋진 외양이었다. 밤에는 싸구려 모텔 같다고 생각했는데, 갯벌 위에 우뚝 선 발사 직전의 우주선처럼 보였다.


살아오면서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수십 리터나 들이켰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선입견은 장기처럼 마음속에 고정되어 있다. 아직 모자란 듯하니 주기적으로 마시게 누군가 해골물 드링크라도 출시해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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