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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n 12. 2022

나의 여행 Flex

너무 계산하지 말고



해안도로를 따라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러다가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는 거다. 앞에는 파도가 일렁이고 하늘은 파랗다. 물론 비가 내려도 괜찮다. 어떤 날씨 건 도시를 떠나 바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니까. 줄에 걸린 생선과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기회를 엿보는 갈매기와 바닷가 마을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들은 무엇이라도 좋다. 빨간 등대라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저 시간을 소비하련다. 물처럼 흘러가 바다로 간들 무슨 상관인가. 시간의 환금성을 계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누군가 시비를 건다면 씩 한번 웃어주고 싶다. 그의 예상보다 한참 더 어리석어 보이게.


그러다 슬슬 지겨워지면 차에 올라가 시동을 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올드카라도 나쁘지 않다.  애처로운 엔진음과 삐걱이는 미션이 예정에 없던 여행에는 오히려 어울릴 테니. 목적지는 없다. 어딘가 달리다 보면 해가 질 것이고, 또 노을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라고 걱정하듯 묻겠지만, 어두워진 산길의 도로를 구불구불 달리고 있노라면 검은 나무들이 조금은 무섭게 지나치더라도, 작은 마을의 모텔 간판이라도 보이면 또 그것으로 족하다. 깊은 산중에서 인가를 발견한 고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나는 안도할 것이다. 모텔 네온사인의 일부는 빛을 잃은 지 오래겠지만 어쩌겠는가. 다음날 아침 모텔이 무덤으로 변하지는 않겠지.


그 옆에 늦게까지 불을 밝힌 백반집이 있다면 주저 없이 들어가 볼 것이다. 그저 밥과 찌개가 있을 뿐인데 정신없이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라면. 밥을 먹고 나오면 가로등 하나 찾기 어려운 마을의 어둠 속에서 어느 화가의 미니멀한 그림 같은 산등성이를 보며 부산한 일상과의 경계가 주는 여러 감정을 헤아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희망이겠다만, 아침이면 아마도 새소리가 들릴 것이다.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장작 타는 냄새가 나면 제법 멀리 왔다는, 공중을 부유하는 느낌에 사로 잡힐 테고. 밤과는 다른 마을 풍경에 흠칫 놀라 아주 긴 밤을 지나온 듯한 여행지의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안개가 끼어있다면 그 나름대로 반갑다. 막막함은 목적 없는 여행을 위한 장식품 같은 것이고 지나가야 할 문 같은 것이니.


그러다 문득 재채기처럼 지인들의 얼굴이 떠오르겠지. 안녕들 하신가. 나는 지금 무작정 여행 중이라네. 바쁜 일상을 보내는 댁들에게 미안하게도. 하지만 너무 부러워마시라. 초호화 럭셔리 여행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니. 그저 내 인생 어딘가에 부목처럼 박혀있는 여분의 시간을 빼내 조금씩 깎아나가는 것뿐이라고 중얼거리며 자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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