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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Aug 01. 2020

제발 잃어버리지 좀 말고

설마 그도


사랑이 제일 좋은 거야.
그게 안되니까 그림 따위 그리고 있는 거지



양구 박수근 미술관을 다녀오면서 우산을 잃어버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차에 오를 때, 앞좌석 그물주머니에 우산을 꽂아 놓으며, 설마 잊고 가진 않겠지 했는데, 양구에서 한참 일을 볼 때까지도 우산의 존재 따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구에서 동서울로 돌아오는 차를 기다리는 데 빗줄기 하나가 머리를 때렸다. 아차, 하고 그때 우산을 허겁지겁 찾아보았다. 당연히 우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산에 눈이 있었다면 내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얼마나 한심하게 쳐다봤을지.

고속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타고 왔던 버스가 얼마 전에 동서울로 돌아왔는데, 우산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챙겼을지도 모르겠다고, 고속버스회사의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우산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의 창립기념품으로 받은 것이라, 제법 값이 나가고 디자인도 괜찮아서 아깝기는 했다. 아마 지금까지 잃어버린 우산을 모은다면 조그만 가게 하나는 차릴 텐데 그중에 가장 잘 보이는 진열대에 놓고 싶은 우산이다.

청소하는 분이 챙겼다면 절도 정도는 아니더라도 점유이탈물 횡령 정도는 될 것이다. 따지고 싶었지만, 힘들게 일하시는 분에게 일어나는 하루 행운 정도의 의미가 될 수 있도록 기부하기로 했다. 굳이 청소하는 분이 아니라 그 좌석에 앉은 누군가라 하더라도. 또 이렇게 하루하루를 정신승리로 채우고 있다. 이러다가 정신승리법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몇 년 후에 각 상황별로 승리하는 법 따위를 기술하는 책을 쓰고 있을지도.

그나저나 박수근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작가가 그렸다기보다는 어디 흙속이나 돌 속에서 오랫동안 묻혀있던 것들을 찾아낸 것 같다. 누군가 그 앞에서 “ 사랑이 제일 좋은 거야. 그게 안되니까 그림 따위 그리고 있는 거지”라고 비아냥거린다 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굴작업을 할 것 같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도 짙은 그리움의 냄새가 난다. 그게 사랑인지 우산인지 모르겠다만 그도 무언가를 적지 않게 잃으며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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