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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Nov 08. 2023

도대체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묻고 싶은 젊은이가 있네

회사 근처에 작은 카페가 있어. 동네 지역명을 딴 카페지. 점심 먹고 자주 들르곤 해. 값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왠지 정감 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주인은 20대 후반, 정도 되는 젊은 남자인데, 그럭저럭 친절해. 딱 카페를 운영하기 위한 친밀감 정도. 그런데 어느 날 가보니 주인이 바뀌어있지 뭐야. 웬 흰머리와 흰 수염이 가득한 60대 초반의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미묘한 경계에 살고 계시는 듯한 분이 앉아, 아니 서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어. 얼핏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시키기도 했어. 두 분을 모셔다 같이 사진을 찍는다면 형제로 보일 정도야. 하얀 중절모를 쓰고, 멜빵이 달린 작업복을 입고 커피를 서빙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카페의 주인으로 잘 어울리더라고. 하야시, 아니 하야오 선생께서는 예술가의 풍모를 지녔는데, 그쪽으로는 잘 풀리지 않아,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셔서 예술가의 느낌이 많이 바랜. 여하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또한 미묘한 직업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지. 그런데 이 분이 카드단말기를 잘 다루지는 못 하시더라고. 계산을 잘못해서,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본인이 잘 다루지 못한다며 대신 현금으로 주시더라고. 뭔가 순조롭게 카페 주인의 체인지가 일어난 느낌은 아니었어. 들어보니, 원래 있던 젊은 친구는 여자와 바람이 나서 어딘가로 갔고, 삼촌인 본인이 카페를 급하게 맡게 되었다는 거야. 얼마나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길래, 동네 카페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게 되는 일화더군. 도대체 얼마나 혼을 빼놓은 여인이길래, 갑자기 카드 단말기 조작도 서툰 삼촌이 가게를 맡게 되었는지. 그래도 커피는 잘 내리시나 봐. 조카가 내린 커피와 그다지 큰 차이는 없었지만, 카페주인의 걸맞는 풍모와 사연 등이 버무려지니 커피맛이 좀 더 고소하고 시큼하게 느껴지지 뭐야.

평소 카페형 인간, 아니 카페 주인장형 인간이 있다고 믿는 사람인데, 그러한 분의 전형을 만난 것 같아. 카페 주인장형 인간은 치열하게 살지 않아. 슬렁슬렁 살면서, 어딘가에 꿈을 숨기고 있지. 지금은 카페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하면서. 가끔씩 묻어뒀던 꿈을 꺼내 값비싼 도자기처럼 바라보는 거지. 그러다가도 손님이 오면 카페 주인장으로 다시 돌아가 꿈 따위는 꿔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커피를 내리곤 하지.  완벽한 카페형 인간이란 바로 그런 사람들이야. 꿈 앞에서 조금은 음흉한 사람들.

그 할저씨가 어떤 꿈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의 흰 수염은 마치 꿈의 표상처럼 보였어. 나는 하야오의 상상력이 그의 수염에서 돋아난다고 믿으니까. 그래도 도망간 조카가 더 궁금하긴 해. 할저씨의 꿈보다는. 도대체 그대는 어떻게 살려는가, 하고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내팽개친 젊은이에게 묻고 싶어 지네. 카페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인연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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