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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Nov 17. 2023

스테판 형, 오랜만이야

지금이 더 낫다 ddp 전시


오스트리아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선생이 계시지. 이 선생님. 아주 재미있는 분이셔. 내가 월간 <디자인>지의 기자로 있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한번 인터뷰를 했었어. 그때가 첫 한국 방문인 줄 알았는데, 그전에 왔었더라고. 말하자면 한국에 자주 오는 친한파 디자이너지. 이번에 온 거까지 합치면 4번 정도 된다니까. 4번 가지고 친한파 들썩이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횟수보다는 한국을 생각하는 정도로 치면 그렇다는 이야기.


이번 전시에도 한국과 관련 있고, 내가 일하는 ddp와 관련 있는 것들이 좀 있어. 무튼 20년 전에 막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던 디자이너였어. 지금은 나이가 지긋한 환갑이 거의 다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젊은 디자이너가 도발적인 형식으로 쿨쿨 자던 사람들을 벌떡 일어나게 했었어. 본인 몸에다 그래픽 문신을 하면서, 사회적인 메시지들을 막 던졌으니까. 자신은 클라이언트 좝만 하는 상업적인 디자이너들과 다른 디자인 아티스트다, 라는 포지셔닝을 하던 시기였지.


그래서 당시 기자회견에서 좀 센 질문을 던졌던 게 생각이 나네. 뭐 나도 나름 시크하게 살던 시기라, 당시에 내가 쓴 기사를 읽어보니 좀 건방이 하늘을 찌르더라고. 예를 들어 이런 식의 질문이야. “당신이 그래픽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줄 것인가?” 라는 식으로 첫 질문을 던졌더라고. 아마 마음속으로는 “도대체”라는 말도 하고 있었을 거야. 그가 디자인한 그래픽처럼 굉장히 센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시간을 들여 차분히 내 진심을 보여줄 거야. 그럼 사람이 감동하지” 라는 좀 뻔한 대답을 하더라고. 그래서 이 분은 아직 버벌 디자인은 좀 약하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 이후 승승장구해서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름도 날리고, 돈도 많이 벌고 했나 봐. 이번 ddp에서 하는 전시는 <지금이 더 낫다>라는 제목인데, 굉장한 긍정주의자가 되었더라고. 물론 그 당시도 긍정주의자였어. 도발적인 도상들을 사용하긴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름다움이었으니까. 스테판 선생의 이번 작품은 데이터를 이용한 것들인데, 예를 들자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1900년대 초보다 지금은 무려 60살 가까이 늘어났다는 거고, 이 데이터를 춤추는 풍선 인형을 설치미술처럼 표현해 냈어. 왜 주유소 가면 방정맞게 춤추는 인형들 있잖아. 물론 그의 작품이 그런 건 아니고 그 인형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거지. ddp 잔디언덕이라는 곳에서 100개의 거대한 풍선 인형이 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걸 보고 있으면 우울한 기분이 날아갈 것 같긴 해. 스테판 센세는 이 인형들을 통해 “봐, 수명이 이렇게 길어졌는데, 어찌 즐겁지 않아?” 라고 말하고 있는 거지.


이번 전시에 실외 설치 작품은 하나고, 나머지는 실내에서 보여주는 포스터 형식의 작품이야. 50년 전보다 번개에 맞을 확률이 얼마나 줄었는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전 세계 10만 명당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 등등 흥미로운 데이터를 유엔을 비롯해, 저명한 대학으로부터 얻었다고 하네. 그리고 골동품 샵을 하셨던 할아버지 가게에서 가져온 옛날 그림에 아크릴 같은 번쩍이는 재료로 데이터를 표현한 것도 재미있어. 대비를 통해 과거와 오늘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 같아. 누군가 그랬지? 지금 평균적인 한국인이 먹는 밥상은 조선시대 정승 판서보다 좋을 거라고.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들은 물질적인 것 혹은 측정 가능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설령 그래서 삶의 개별성이 묻히겠지만, 우리 삶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는 거라고 그는 매력적인 그래픽으로 말하고 있는 중이야.

그가 이번에 입고 온 옷에는 크고 작은 칼들이 잔뜩 그려져 있는데, 옷 속에는 범죄로 죽은 사람들의 수의 변화가 칼의 크기로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보여주고 있더군. 이런 옷을 입고 공항을 들락거리다 겪은 에피소드도 있더라고. 여러모로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가야. ddp에서 하는 전시 한번 가서 봐봐. 내년 3월 3일까지라 시간이 넉넉하지만, 사람들이 핫한 이슈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침묵의 도가니에 빠지면 안 될 테니, 빨리 가서 보는 게 좋을 거야. 장담해. 돈이 절대 아깝지 않을 거야. 무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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