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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Jul 04. 2016

일생일대의 기회일까?

소시민적 아프리카 ep.00


여행 가려고 결혼하는 거 아니지?



 우리 결혼 발표를 들은 열 중에 여덟 아홉은 으레 묻곤 했다.

 대답하자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세상 누가 여행만을 위해 인륜지대사를 결정하겠는가. 하지만 우리 같은 소시민적 여행자들에겐 신혼여행으로 주어지는 휴가란 놓쳐서는 안될 기회이기는 했다.


 "나 가능한 멀리 가고 싶어."

 이 말은 예언과도 같았다. 또한 월화수목금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어쩌면 일생일대의 기회일지도 모를 이번 여행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이기도 했다.


 대개의 여행자가 그러하듯, 우리 역시 지구본 어디쯤과 내 주머니의 가벼움을 저울질해야 했다. 이번 경우에는 특히나 예산의 빠듯함이 이루 말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상당히 소박한 편인 결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한 몸 누일 곳을 찾는 데 모아두었던 대부분의 돈을 소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굳이 한마디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울살이는 팍팍했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 마음은 기울고 말았다. 장난처럼 말했던 '가능한 멀리'를 이루기 위해.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식이 끝나자마자 줄곧 길러오던 머리를 싹둑 잘라냈다. 일종의 의지 표명이었다. 더 적극적으로 모험하겠다는 의지.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워진 머리만큼이나 사뿐했다. 그러나 갈 길은 멀었다.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각 나라 간 이동까지 직항이라고는 전혀 없는 탓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중동의 작은 나라 카타르에서 여행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 나라의 운전법




 카타르 도하 공항에 내린 것은 깜깜한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항공사에서 제공해 준 호텔에 숙박하기 위해 바우처를 받고 지친 얼굴로 한참을 공항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호텔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다는데, 오긴 오는 거야?



 호텔에서 나온 직원은 공항에 널브러져 각자의 호텔을 기다리던 사람들 중 정확히 우리를 찾아냈다. 신기한 일이다. 아무튼 그는 우리를 공항 밖으로 안내했다. 15인승 소형버스가 곧이어 도착했다.


 처음엔 참으로 퇴근이 하고 싶으시구나 하고 생각했다.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인 거리에서 엑셀레이터를 그리도 밟은 이유에 대해 고찰하다 보니 그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것이라면 나도 충분히 그 마음 이해하지. 암 그렇고 말고.


엄청난 속도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시간은 어느새 새벽 5시가 넘어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그냥 이 나라 사람들은 차 기름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가 번갈아 나오고, 기어를 중립에 놓는 행위 따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의 의상을 반영한 표지판이 인상적이다.


 날이 밝아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암막커튼으로 빛을 간신히 가리며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했다.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몽롱한 정신을 겨우 깨우며 도하의 거리로 나섰다. 길에선 희미한 기름 냄새가 났다. 신호에 멈춰 선 차 뒤꽁무니에선 기름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성난 소처럼 씩씩대던 차들은 초록불이 오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더니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조수석에 누군가 있다. 상관없으니 타라고 손짓한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합승인가!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뒤의 차들이 부릉거리고 있었기에 일단 타야 할 것 같았다. 엉겁결에 택시에 올랐다. 다행히 별 일 없이 목적지인 '빌라지오 쇼핑몰'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최후의 만찬




 빌라지오는 2011년 도하 아시아게임을 위해 구축되었던 Aspire Zone에 위치한 큰 규모의 쇼핑센터인데, 어찌나 큰지 아이스링크도 있고 놀이기구도 있고 심지어 곤돌라도 다닌다.



 그러나 구경에 앞서 우리에겐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수하물이 목적지인 남아공으로 바로 가버리는 탓에 면세점에서 선물로 산 화장품들을 캐리어에 싣지 못했고, 그래서 기내 액체류 제한을 넘게 된 것이다. 승무원은 우리에게 도하에 도착하면 20x20 사이즈의 지퍼락을 사서 화장품을 옮겨담으라고 알려주었다. 운 좋게도 빌라지오 안의 큰 까르푸 매장에서 규정에 꼭 맞는 지퍼락을 발견했다. 심봤다!



 한참 걷다 지친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스타벅스를 발견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세상 어디에서나 비슷한 맛일 것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것이 나와 그의 작별인사였고, 최후의 만찬이었음을 이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당연한 와이파이와 당연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모든 것들을 너무 감흥 없이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그것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처럼.


 공기처럼 생각했던 많은 것들과의 작별. 그것이 아프리카 여행이었고, 우리는 그걸 몰랐다. 모드 변경 스위치가 있었다면 진작 딸깍하고 올렸어야 했는데.


여행에서 먹은 마지막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름 옆에 하트까지 그려주었다.


 빌라지오는 냉방 탓에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감상이라고 생각하며 고국으로 짧은 안부인사를 보냈다. 과연 21세기 여행자다웠다. 우아하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여행지의 정보를 검색하고 집으로 방금 찍은 셀피를 보낸다. 참을 수 없는 연락의 가벼움이었다.


 문득 스물두세 살 무렵 받았던 엽서 한 장이 떠올랐다. 한 달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친구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르누아르의 그림이 그려진, 루브르에서 샀다는 엽서의 뒷면은 순간을 박제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꾹꾹 눌러 써내려간 손글씨로 빼곡했다. 1분 1초가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할애해서 엽서를 쓰고 보내는 그 정성과 낭만을 나는 아직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스마트폰 같은 것들에 어느새 길들여져 버렸다.

 때때로 추억이란 것은 불편함을 동반한 기억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금수저 나라




 빌라지오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호텔 직원에게 추천받은 장소인 Musium of Isramic Art로 향했다. 역시나 거친 운전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꽈악 잡았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기름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스쳐 지나갔다.



 바다 건너 자리 잡은 으리으리한 마천루가 보였다.

 세계지도에서는 점하나 콕 찍어 놓은 듯한 작은 나라이지만, 자원의 힘과 지리적인 이점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 국가계(?)의 금수저라고나 할까.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한 곳이라지만 이럴 땐 그 불공평함이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어쨌든 탄탄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2020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되었는데, 한 편에서는 그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가 심각하다고 한다. 주로 위험하고 힘든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는데 금수저 나라의 씁쓸한 단면인 것만 같았다.





 이슬람 박물관은 사실 오랫동안 이 자리에 서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끝자락에 개관했다고 하니, 몇 살인지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도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것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I.M.Pei 가 설계한 이 박물관은 히잡을 쓴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문외한이라 잘 모르긴 몰라도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건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내부의 전면 유리창은 대담했다. 기하학적 디자인의 건물과 그 안에서 바라보는 비취색 해변만으로도 이곳을 찾아올 이유는 충분했다.



 이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주로 주변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사들여 온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수학, 기하학, 천문학 등이 발달되었었다고 하는데 이 박물관 건물도 마치 그걸 반영하려는 것처럼 정확한 계산 아래 지어진 느낌이 들었다. 다른 박물관과는 다르게 묘하게 차분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수학적 안정감을 주는 건물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그다지 많지 않은 관광객 덕도 있었고.



 밖으로 나와 경치를 감상하며 호텔에서 받아 든 지도를 꺼내 들었다.(사실 난 거의 지도를 볼 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보는 척만 했다.) 원래는 호텔에서 휴식이나 하려고 했었던 터였다. 그냥 멍하니 쉬는 게 적성에 맞지 않는단 걸 일찌감치 깨달아 나서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즉석에서 모든 걸 결정해야 했다. 늘 촘촘하게 계획을 짜서 다녔던 우리가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었다. 어쩐지 모험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신이 났다.




 그럭저럭 걸어갈 만한 거리에 Souq Waqif(쑥 와키프)라고 하는 전통 시장이 있었다.

 거의 "지나가다 들린" 수준이어서 거의 아무 정보 없이 찾아갔는데, 세상에나. 이런 별천지가.



 두터운 등껍질을 자랑하는 육지 거북이부터 도무지 왜 안 날아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새들까지, 우리가 생각한 '시장'의 모습을 한참 뛰어넘은 곳이었다.(처음엔 새들이 가짜인 줄 알았다.)

 동물이 있다 보니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한 정도였다. 아무쪼록 녀석들이 고통받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곳으로 온 것이길 바랐다.

 숱한 사람들이 주변을 스쳐 지나갔지만 거의가 현지인이었고, 동양인은 거의 없었다. 여느 시장처럼 분주하고 활기찬 모습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는데 설상가상 안쪽 길은 미로에 가까웠다. 더 가다간 길을 잃고 헤맬 것 같아서 적당한 곳에서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순식간에 우리는 오징어가 되어버렸다. 켁.


 이곳 사람들은 무척이나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걸 여실히 알게 된 건 옆에서 사진을 찍으면서였다.

 쑥 와키프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우리가 오히려 신기했던 한 가족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부탁했다. 워낙 잘생기고 예쁜 가족이어서 김남편이 속으로 저분들과 사진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웬 횡재람.

 어쩌면 이곳의 석유 부자였을지도 모르는, 나이도 가늠이 가지 않는 그의 옆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했을 때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와, 우리 오징어야!


바닷 바람이란 정말이지.


 마지막으로 관광지도에 소개된 시계탑을 보러 헤매며 걸어왔다. 설마 저 작은 시계탑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시계탑이었다. 이걸 보려고 꽤나 많이 걸어왔으니 어쨌든 사진이라도 남겨야겠다. 그런데 바람이 참 비협조적이다.

 돌아가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한국에선 그 흔한 택시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자가용이라도 타는 거야 뭐야! 택시 잡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금요일 밤의 강남역을 방불케 했다. 택시 한 대를 잡기 위해 온갖 큰 대로변을 누비기를 삼십 분가량 했을까, 가까스로 한 대를 붙잡아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 하루의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원래의 목적지인 남아공으로 향해야 할 때였다.



 물건을 하나 사면 하나를 더 받는 행사처럼, 아프리카 여행을 주문했더니 도하 여행이 따라왔다. 선물처럼 얻은 도하에서의 하루는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마드 국제공항에서 마무리되었다. 잠깐 면세점을 둘러보다가 캐리어에 자리만 있었다면 담아오고 싶었던 늑대 인형과 인사하고, 예약해둔 아프리카에서의 투어를 확인하기 위해 공항 내에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해 이메일 체크도 했다.

 자, 모든 준비는 끝났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에 내린 것은 대낮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직도 우리는 "첫날밤"을 맞이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시간을 거슬러 왔던 것이다.

 수면부족은 대개 짜증을 유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적잖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얼른 숙소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문제는 입국심사부터 시작됐다.

 월드컵을 치러낸 나라라 나름대로 시스템이 잘 자리 잡혀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줄은 빨리 줄어들었다. 다만 직원들의 태도는 불친절하다 못해 불쾌할 지경이었다.

 압권은 결혼식을 위해 받은 네일아트에 붙어있던 리본 모양의 파츠를 볼펜으로 툭툭 치며 이게 뭐냐, 너의 손톱이냐,라고 물은 순간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분명 불쾌함을 표출했을 순간이었겠지만 여기는 어딘가. 아프리카가 아닌가. 최대한 모든 일을 문제 삼지 않고 지나가기로 다짐하고 왔었기 때문에 속으로 꾸욱 참으며 헤헤, 하고 웃어버렸다.


생각보다 큰 규모였던 케이프타운 국제공항. 어렴풋이 앞으로 우리가 지나칠 공항 중에 가장 좋은 곳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불쾌했던 입국심사가 끝나고 드디어 예약해 두었던 렌터카까지 찾았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렌터카를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좀 소요됐다.

 장롱면허가 된 지 벌써 오래된 김남편의 운전은 불안 불안했다.(그렇다고 내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난 무면허니까.) 게다가 운전석 방향도 반대인지라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좀 불안한 출발이긴 했지만, 어쨌든 출발했으니 된 거다.

 저 멀리 테이블 마운틴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숙소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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