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토 Mar 20. 2017

인간의 증명

소시민적 아프리카 ep.14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여행에서 처음 만난 이들과 같이 바다를 가기로 한 약속.

 야시장에서 만난 이들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어렴풋 들리는 한국어가 반가웠다고 했다. 이 먼 땅에서 구호와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들은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바다로의 여행에 우리를 초대했다.

 사실 그들의 초대는 초대라기엔 허술했다. 오후 즈음 '만나지면' 바다를 가자는 말은, 어쩌면 '다음에 밥 한 번 먹자'같은 어중간한 표현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몹시 특별한 약속이었다. 항상 둘만 다니던 여행이었다. 여행지에서 다른 누군가와 만나거나, 심지어 그들과 동행하기로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토록 소심했던 우리가 과연 그들과 만나질 수 있을까?

 그들의 초대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자신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저울질해야 할 하루가 밝았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어찌 됐건 만나기로 한 오후가 될 때까지는 나와 김남편 둘 뿐이었으므로 부지런히 스톤타운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항상 당연하게 둘이었는데, 우리 둘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렸으니까.



 호텔에서 나눠준 지도 한 장을 손에 쥔 채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골목길을 걸었다. 신경망처럼 갈래갈래 뻗어나간 골목길을 지도에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걷다니 꽤 의기양양한 기분이었으나, 실제로는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봐 품에 짐을 꼭 끌어안은 소심이였다.



 대강 걷고 있는 것 같아도 목적지는 있었다. 나야 생각 없이 걸었지만 김남편은 길잡이로서 제법 고민을 한 모양. 그러나 우리가 고민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차피 길은 잃게 되어있었다. 차라리 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면 뭐라도 될 것을 때마다 여기가 아닌가 보다, 하고 바꾸다 보니 점점 미궁을 걷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몹시 더웠으므로 얼마 안가 점점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되었다. 뻗은 것은 길이요, 걷는 것은 내 다리니라.



 그렇게 걷다 보니 바다가 나와버렸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기에 잠시 앉아 방향을 다시 잡아보기로 했다. 지도에 몰두한 사이 "Guide"명찰을 목에 건 현지인들이 슬금슬금 접근해 왔다.


 - Slave Market 가봤어? 내가 안내해줄게! 아니면 향신료 투어 할래? 진짜 재미있다구!


 미안하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그들과 대동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다 가봤다는 적당한 거짓말을 둘러대자 그들은 의외로 쿨하게 포기했다. 즐거운 여행이 되길! 하는 멋진 인사와 함께 호객꾼들 몇몇이 떠나고, 우리도 다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제각각 색을 입은 창문이 골목길 쪽으로 활짝 열려있었다. 몇 번이나 덧대어 칠한 덜렁대는 창문이 누군가를 맞이하려는 것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손짓했다. 문득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가 생각나는 것을 보니 주입식 교육의 힘이 어지간하기는 한가보다. 왜 사냐건 웃지요. 허허.



 예전에는 재력을 나타내는 요소이기도했었다는 문 역시 창문만큼이나 각양각색이었다. 문이 두꺼울수록, 열쇠가 무거울수록 부자였다고 하니 이것 참 불편한 증명이 아닐 수 없었다.



 걷다 보니 시장에 발길이 닿았다. 차와 사람과 짐이 엉켜 혼잡한 모습이 영락없이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꼭 닮아 있었다. 대형 마트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어 한참 구경을 하다가 코를 찌르는 비린내에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바닷가 마을답게 수산물 가게가 잔뜩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한 번 감지한 냄새는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부쩍 비위가 약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말라리아 약의 부작용 같다며 애꿎은 약을 원망했다. 몇 번이고 침을 삼키며 속을 겨우 진정시켰을 무렵, 드디어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인간으로 살아야겠다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지나칠 법한 장소였다. 요란 벅적한 우리나라 간판에 익숙해져서인지 웬만큼 강렬하지 않고선 시선을 오래 두지 못하는 탓일지도 모른다. 대강 구색만 맞춘 듯한 티켓 오피스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섰다.



 잡다한 기념품과 예술작품을 팔고 있는 곳을 지나칠 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입장하는 곳이 지하라서 특이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열몇 평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 나왔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하인 탓만은 아닐 것이었다.

 이 곳은 노예 시장이 있던 장소였다.



 키가 작은 나에게도 허리를 꼿꼿이 펴기 부담스러운 높이의 낮은 천장 아래 한 줌 햇빛이 겨우 들어오는 창문이 보였다. 그 햇빛을 제외하고선 온통 새카만 어둠이었다. 인공적으로 달아놓은 조명이 없었다면 발을 헛디딜 검정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지금은 제 역할을 잃은 채 방치되어 있는 녹슨 쇠사슬조차 서슬 퍼레 보였다. 등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흐르는 더위 속을 걸어왔는데, 이곳은 냉동고 안에 있는 것처럼 추웠다. 주위가 온통 질식할 것 같은 공기와 어둠이었다.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 지상으로 올라왔다. 차라리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세면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오물을 처리할 장치마저 없었다는 말이다. 후에 찾아보니 방금 보았던 손바닥만 한 창으로 바닷물이 들이쳐 알아서 배설물을 씻어갈 때까지 내버려 뒀다고 한다. 이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만이 바다를 건너 유럽 대륙 등지로 팔려갔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이 노예시장으로 인해 번영을 누렸다는 건 그저 질 나쁜 농담 같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디 이렇게나 잔인한 것이었나 보다. 어쩌면 '인간성'이라는 것은 허구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진화된 생명체로서 도구와 제도를 좀 더 유익한 방향으로 누릴 수 있다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극도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포유류일지도 모른다.

 '흑인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예는 영혼을 가지지 않은 존재라는 인식의 틀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전쟁이나 노예제도와 같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는 항상 이렇게 합리화되며 저질러져 왔다.



 노예시장이 열리던 곳에 지금은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보수공사 중이었으나 들어가 볼 수는 있었다.

 소박하고 낡은 교회였다. 교회만큼 낡은 선풍기는 아예 작동을 멈춘 채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나무 십자가 하나가 걸려있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묻혔던 곳에서 자라난 나무로 만든 십자가라고 했다. 침략국 중 하나인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노예제를 없애는 데 공헌을 한 점은 모순처럼 느껴졌다. 결국 침략하는 것도, 목숨을 빼앗는 것도, 착취당하는 것도 모두 인간인 모순처럼 말이다.


 너도 나도 모두 같은 인간임을 증명하는 데 인류는 그 자신의 시간을 꼬박 다 사용해야 했다. 지금도 그 증명은 칠판에 빼곡하게 적히는 중이다. 인종과 성별과 종교가 인간을 만들지 않는다는 단순 명료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인간'으로 살아야겠다. 모래알 같은 예시 하나로 남기 위해서라도, 나는 인간으로 살아야겠다. 그렇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헤매기 위해 잔지바르로 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