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스크린 앞에 앉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눈동자처럼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니 소회가 남다르다. 기묘한 부채감으로 이 공간에 발길을 끊은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일 년 지나 다시 들어와 보는 내 브런치 소개글에 웃음이 났다.
"소시민 직장인 여행자 언젠가 편도 티켓을 끊어 떠나는 것이 꿈입니다."
소개글에서부터 그렇게도 염원하던 편도 티켓을 샀다. 육 개월 전의 일이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비행기로 약 10시간이 떨어진, 이국 땅 호주에 첫 발을 디뎠다. 생각보다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조금씩은 성장하고 있을 게다.
2년도 더 전인 2016년 6월 20일에 나는 아래와 같은 글을 이곳에 저장해두었다.
나와 김남편은 상당히 평균적인 삶을 살아왔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고, 괜찮다 여겨지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보통의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월급이 밀리지 않을 것 같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이 평균적인 삶은 때로 전쟁과도 같았지만, 이 전쟁은 찻잔 속의 태풍과도 같았다. 누군가는 꿈을 찾기 위해 떠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폼나게 사직서를 던지고 세계 여행을 떠난다고도 했다. 휴대폰 속 작은 파란 창은 매일같이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나와 다른 존재들 같았다. 우리는 지나치게 평범했다. 보통사람만큼의 용기도 없어 결혼으로 주어지는 휴가에 며칠 더 붙여 사용하는 것조차 마음을 졸였다.
그래서 더욱 의외의 선택이기도 했다.
마치 2년 뒤에 나에게 일어날 일을 암시라도 하듯 "의외의 선택"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다. 이것은 간절히 일어나길 바라는 나의 기도문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혹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자꾸 말로 표현하다 보면 실현되기도 한다고. 그 덕인지 나는 이 머나먼 곳에 이방인인 채 한쪽 발을 걸치고 있다. 어디로 나를 이끌지 알 수 없는, 아주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