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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Aug 04. 2024

영어를 한다는 것, 영어를 잘한다는 것 (1)

2021년 호주 센서스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면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인, 정확히 말하면 호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약 10만 명이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한국에서 온 약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어를 외국어로써 사용하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이다. 위의 데이터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는 가져오지 않았지만) 14,000명 정도 되는 0세부터 24세까지의 1.5세대 혹은 2세대 이민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10만 명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20대 이상의 한국에서 영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영어교육의 풍토가 바뀌어 일찍이는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쓰이기 위한” 영어교육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저 센서스 데이터에 나와있는 십만이라는 숫자는 거의 입시 위주의 영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나 역시도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차근차근 밟으며 영어를 배웠던 사람 중 하나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 내내 영어교육의 목적은 오로지 입시를 위해서였다.

이 글은 입시위주의 영어교육을 밟아온 내가 어떻게 호주에서 살기 위한 아이엘츠, PTE 등의 영어성적을 취득했으며 그걸 넘어 호주 회사를 다니고 영어를 사용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거창한 얘기는 아니고 쫌쫌따리로다가. 쉽게 말하면 추억팔이.






1. 학창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교에 원어민 선생님이 계셨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20대 초반의 재미교포였던 것 같다. 아무튼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영어시간에 선생님을 대신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딱히 뭘 배우는 것도 없는 교과서였지만 그래도 책을 안 보고 선생님과 놀면(?) 되었던 시간이라 나름대로 즐거웠던 것 같다. 이 수업자체가 굉장히 시범적이었던 거라 그는 1년 만에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정도의 특이했던 경험을 제외하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영어교육은 정말 지지부진했다. 애플을 연달아 외치는 챈트 같은 걸 한다던가.. 뭐 그 정도?

영어의 중요성은 이 때도 제법 학부모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것이었어서 너나 할 것 없이 영어학원을 다닌다기에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엄마를 졸라 영어학원을 다녀본 적이 있었다. 학기 중간쯤에 들어간 터라 이미 다른 아이들은 교재의 진도가 꽤 나가있는 상태였다. 수업에 들어가게 된 나는 교재의 중간쯤을 펼치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be 동사를 적어내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be 동사가 뭔지도 몰랐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다들 열심히도 연필을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적기 시작한 be.. be.. be.. 몇 분뒤 선생님이 알려준 정답은 is, are, was, were 등이었다. “be”동사라매. 왜 정답이 그건데?

첫 수업부터 너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서 학원은 한 달 정도 다니다 그만두었다. 솔직히 뭐라는지도 모르겠고 따라갈 수조차 없었고. 아직도 기억나는 나의 흑역사인 “be 동사”의 강렬한 추억…

그렇게 영어에 뜨겁게 데인 나는 그대로 중학생이 되고 중학교쯤 되니 다들 영어학원은 기본으로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학원을 다닐 순 없었지만 그래도 영어교과서에 나오는 “본문”만 달달 외우면 영어시험은 90~100점을 왔다 갔다 하며 받을 수 있었다. 왜 그런 문장이 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성실하기는 했었다. 그리고 그러면서 중학생이 배웠어야 할 영어단어는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달달 외운 본문이 알게 모르게 영어의 문장구조를 머릿속에 박아 넣는 역할을 했었던 걸 수도 있고.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수능을 위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언어과목 자체를 다 좋아하고 잘하기도 했었다. 국어도 영어도 제2외국어도. 좋게 말하면 소질이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좋아하는 거였다. (나쁘게 말하면 문송한 거고.) 하긴,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소질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수능을 치고 대학생이 되어 영어는 전혀 단 1도 상관없는 법학과로 진학을 하게 되어 조금 가까워졌던 영어는 다시 멀어졌다. (물론 전공과목 중에 영어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몇 개 있긴 했고 1학년 필수과목 중에 영어 쓰기와 영어발표가 있긴 했지만.. 정말 작은 비중을 차지했다.)

슬렁슬렁하던 고시준비를 때려치우고, 4학년 때 진로를 틀어서 취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급하게 토익성적을 따고 한 달 토익스피킹 학원을 다니고 뭐 그래도 할 건 다 했다.

이때 받았던 성적은 토익 930점, 토익스피킹 레벨 7이었다. 그렇다. 솔직히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긴 했다.

2. 직장인이 되고 나서

토익스피킹 실컷 했더니 회사에서 오픽을 따란다. 불어닥친 오픽의 바람 때문에 부서에서 성적이 없거나 낮은 몇 명은 끌려가(?) 영어수업을 들어야 했고 구체적인 퍼센티지도 내려와서 부서 몇 프로 이상은 IH 이상, IM 이상, IL 이상, 어쩌고 저쩌고 웅성웅성 채워야 할 목표치가 떨어졌다.

보통 이런 끌려가는(?) 교육은 신입사원이나 연차가 낮은 사원들이 가게 마련인데, 신입사원 교육 때 기본적으로 2번 응시하게 해 준 오픽에서 IH를 받아놔서 눈치는 조금 보이지만 나는 면제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이 IH로는 눈치도 보이기도 하고 이대로라면 언제 기준이 바뀌어 끌려갈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있어서 또 열심히 공부해서 AL을 받게 된다.

자, 이때의 “열심히”란 그래서 무어냐. 하면 학원이다.

학창 시절 내내 사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는데 이게 기묘하게 한이 맺혀서(?) 내돈내산 할 수 있게 되자 사교육에 돈을 쌔려붓기 시작한다. 회사에 입사한 직후 회사에서 복지로 제공해 주던 전화영어를 야금야금하다가 이듬해 국내 모 회화전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꽤 비싼, 아니 아주 비싼 편에 속하는 학원은 열심히 하는 만큼 수업을 더 많이 참가할 수 있는 구조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회사에서 늙고 낡아가는 사원 나부랭이가 뽕을 뽑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뭘 하든 그럭저럭 꾸준히는 하는 편인 나라는 사람은 AL을 받아 영어성적이 더는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3년 동안이나 이 학원을 다닌다. (지금 가격 기준으로도 샤넬백 하나는 장만할 금액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래서 내가 샤넬백이 없나 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회사를 다니면서 깨닫게 되었고 구체적인 생각이나 계획은 없었지만 언젠가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되어 활용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니 준비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3년을 다니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 생각하여 스스로 하산을 결정하고 막 세상에 나오기 시작하던 1:1 영어회화 어플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학원 가격보다는 훨씬 저렴했고 원어민과 얘기하는 재미에 빠져 제법 열심히 했다. (심지어 호주에 온 이후에도 계속했는데 이후에는 흐지부지해져서 결제해 둔 이용권을 다 쓰지 못하고 날렸지만.)

스피킹에 대한 두려움을 깨 준 것은 영어회화 학원이었고 기본적인 영어 스피킹 실력을 끌어올려준 것은 1:1 영어회화 어플이었다.

물론 외국인 친구를 만들거나 언어교환 같은 걸 하는 사람들도 왕왕 있겠지만 I 성향인 데다 새로운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썩 부담스러워하는 나에게는 돈을 주고 재화/서비스를 구매하는 쪽이 훨씬 더 취향에 맞았다.

3. 호주 대학원 입학

호주행을 마음먹고 한 유학원과 상담을 했다. 어린 나이에 가는 건 아닌지라 유학원에선 유학과 이민의 성공여부를 점쳐보기 위해 거의 준비하지 않고 아이엘츠 시험을 쳐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만큼 영주권을 따는데 영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기도 했던 것 같다. 준비를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시험을 보고 나오는 성적을 바탕으로 어떤 학업을 할지를 정할 수 있고 정말 안 되는 경우에는 아예 호주를 잊어버리고 사는 게 낫다는 다소 강한 말씀도 하셨다.

앞서 말했듯 돈을 쏟아부으며 좋아서 했던 영어공부 가락이 있었던지라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이 기회에 한번 시험을 쳐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어 시험을 봤고 Listening 7.5 / Reading 7.5 / Writing 5.5 / Speaking 6.5로 Overall 7을 받았다. 의도치 않게 그 당시 학교 학업 기준이던 Overall 6 이상을 그냥 덜컥 받아버렸다.

아무튼 학원과 어플에 그렇게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Speaking이 7 이상이 안되는구나 싶어 약간 속상했고 그나마 책이라도 한 권 사서 본 Writing이 제일 낮은 점수가 나와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 나 영어 쓰기 안되는구나.. 하고 자기 객관화를 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이런 과거를 가지고 호주에 입국을 하게 된다. 그렇다. 여기까지가 나의 기본 실력. 즉 프롤로그.






이렇게 초등학교에서부터 직장인에 이르기까지의 긴긴 시간을 영어의 기초를 쌓는데 보냈다. 혹자는 영어를 빠르게 잘하게 되는 법에 대해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런 천재는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왕도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한국식 영어교육이 하등의 쓸모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겪어온 바로는 학교에서 내내 가르치는 주어와 동사 찾기를 필두로 한 문법교육이 사실 꽤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문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알고 문장을 접하는 것과 아예 아무것도 모른 채 어떤 말을 영어로 듣는 것과는 천지 차이가 있다고 본다. 어린아이들이 언어를 처음 배울 때 그런 문법을 알고서 배우냐고? 그건 아니지만 우린 어른이 되어서 외국어로써 영어를 배우는 걸.

나는 뭐든지 할 때 제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학생시절에는 학생의 본분대로 그냥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하는 것 말고 내가 특별히 다른 재주가 뛰어나서 다른 걸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 않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 공부해 둔 것이, 당시엔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결국 나중엔 다 내 밑거름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기나긴 프롤로그를 거쳐 본격적인 영어 시험과 그 이후의 일들은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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