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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Sep 03. 2024

영어를 한다는 것, 영어를 잘한다는 것 (3)

해외에 살면 영어가 느나요?

1. 아이엘츠. 여름이었다.

호주에서 혹독한(?) 첫 학기를 보내고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엘츠를 한번 더 쳐보기로 했다. 특별히 성적이 필요했던 것도 아닌데 왜 시험을 쳤냐면 그때 우린 미쳤었죠라고 밖에 대답할 수가 없다... 는 반쯤 농담이고, 나는 그냥 정말 순수하게 궁금했던 것 같다. 호주에서 보낸 4개월이 내 영어실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말이다. 스스로에 대한 테스트의 의미가 컸기에 따로 아이엘츠를 공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어떤 유형인지는 한번 쳐봐서 알고 있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러자고 30만 원을 태워?! 싶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따로 없었나 보다.



좌측이 호주로의 유학과 이민을 고민하던 시절 일단 한번 쳐본 아이엘츠 성적표이고 우측이 호주에서 4개월을 보낸 뒤 쳐본 아이엘츠 성적이다.

지난 글에서 밝힌 바대로 역시 귀가 영어에 절여져 있어서(?) 그런가 리스닝이 8.5가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의외로 리딩은 약간 주춤했는데 그냥 7에서 7.5 정도가 내 기본 실력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은 역시 라이팅이었는데 꾸역꾸역 한 학기 동안 레포트를 열심히 쓴 것뿐인데 기존에 받았던 5.5에서 6.5로 점프를 했다. 스피킹도 소소하게나마 6.5에서 7로 상승하였는데 6점대와 7은 또 차이가 제법 크다고 하니 스스로 등을 약간 두드려볼 만했다. 아이엘츠를 전략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 실력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말해도 될 듯했다.

무엇보다 개고생을 하며 레포트를 써낸 시간들이 어쨌든 헛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2~3000자 쓰다가 200자 쓰면 너무 술술 써지고 할 말이 넘쳐난다.

2. 영어의 자연성장률(?)

그렇다면 정말 호주에서 살기만 하면 영어가 느는가? 내 대답은 일단 Yes이다. 당연히 주변에서 매일 듣는 게 영어면 단어 하나라도 더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는 하니까.

그러나 이것도 케바케 사바사인 것이, 호주에 살면서 영어는 거의 쓰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유학을 온 경우는 어찌 되었든 학교를 다녀야 하니 좋든 싫든 수업을 영어로 들어야 하고 영어로 과제도 해야 하지만, 워킹 홀리데이라던지 다른 워크 퍼밋이 있는 비자로 일만 하는 경우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영어를 아예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한인 사업체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호주에 살며 아~무것도 안 해도 쥐똥만큼 늘기는 는다고 본다. 아무리 한인 사업체에서만 일하고 한국인들과만 어울리며 살아도 호주에 사는 이상 여러 가지 생활 사무를 처리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되어있고 그러다 보면 조금쯤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영어를 말할 기회가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다.

이 쥐똥만 하고 극악한 자연성장률(?)에 조금 더 힘을 보태서 약간이라도 가속을 하려면 결국 평소에 어떻게 영어를 접하고 사용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많이 들을수록, 그리고 그걸 “귀담아”들을수록, 또 들은걸 많이 사용하려 할수록 영어실력은 빠르게 는다.

3. 그래도 늘지 않는 영어?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은 정말 길고 고통스럽고 지리하다. 언어를 배우는 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특히 어떤 지표로 평가받지 않는다면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기란 매우 어려우므로 내가 이전보다 성장했는지 아닌지를 알기가 매우 어렵고,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계속 동기부여 해가며 열심히 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흔히들 언어는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평평한 부분을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계단식 그래프보다 더 재미난 그래프가 있어 가지고 와봤다.


<출처: https://sascha-kasper.com/the-bumpy-learning-curve/>


비단 영어만이 아니다. 무엇이든 배우다 보면 I don’t know s***! 구간이 반드시 온다. 이 구간을 존중하며 버텨야 한다. 아직 그렇게까지 오래 산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버티는 놈이 장땡이더라.

그러니 지금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 영어는 하나도 안 느는 거 같고, 이거 해도 되기는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면 I don’t know s***! 구간을 지나는 중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를 대입해 보면 한국에서 막 영어에 재미를 붙였을 땐 Looks like fun 구간이었고 호주에 오고 나서 학교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This is hard!, 한참 다니던 시절은 No idea what I am doing. But I keep doing it.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자신감은 쪼그라들면서 내리막을 걷기도 하다가 지금은 This actually makes sense와 Did I do that? 구간의 사이 정도를 지나는 듯하다.

앞서 말했듯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매우 길고 지난한 일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 단어 하나라도 더 배웠다면 어제보다는 나은 것이니 스스로를 조금 토닥여보도록 하자.

세상은 이미 물리적인 경계가 흐릿해졌다. 해외에 살든 살지 않든 휴대폰만 들여다봐도 온갖 컨텐츠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그러니 버티는 놈이 장땡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존버해 보자. 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지금도 내 뇌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중일 것이므로.

아, 정말로 배우려고 하는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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