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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Sep 10. 2024

영어를 한다는 것, 영어를 잘한다는 것 (4)

농담도 잘하시네!


1. 비꼼의 미학


해외에서 생활하며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더라도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들의 유우머이다. 나의 경험칙 상 서양식 유머는 보통 sarcasm이나 영화/팝컬처 레퍼런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인 듯하다. (늘 강조하지만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며 이를 검증할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sarcasm 성격을 띠고 있는 농담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한국에서도 소위 서로가 서로를 "까면서" 하는 농담들이 이에 해당하니까 아주 대단히 낯설지도 않고 말이다. 영어가 어느 정도 되기 시작하면 이런 농담은 그래도 알아듣고 같이 웃을 수 있다. 또 이보다 더 영어실력이 는다면 지킬 선만 지키면서 하기도 쉬운 농담이다. 난이도 중상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내가 회사를 다니며 보았던 예시를 나의 엉망진창 의역과 함께 들어보겠다.


예시 1.

호주에 아주 큰 비가 내린 다음날이었다. 회사 사람 A가 물이 범람한 자신의 집 앞 도로 사진을 올렸다.

A: Well, I now have a river front property!

[음, 나 이제 강변뷰에 살아!]

B: Darn - price just doubled! :)

[저런, 집값이 배로 뛰겠어!ㅋㅋ]

C: Tell ***(A의 파트너) that you need to buy a boat now.

[너 파트너한테 배 사야 한다고 말해]

A: (스티로폼 박스 사진을 업로드) I just found one!

[방금 배 하나 찾았어]


예시 2.

여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respectful workplace에 대한 강의를 듣는 중이었다. 강사가 bystander effect (방관자 효과)에 대해 설명하던 중 강사의 인터넷이 끊겨 갑자기 강의가 중단되었다.

A: I think he just dropped out.

[강사 인터넷 끊긴 거 같아]

B: Well, unless he is demonstrating bystander effect...

[음, 방관자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글로 옮기니 저게 뭔 유우머인가 싶긴 하지만 또 내가 이 문화에 제법 적응했는지 그 상황 속에서는 꽤 웃겼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머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그리고 전체적으로 서양문화권에서 타인에 대한 조롱, 비난, 외모에 대한 평가, 인종차별 등은 꽤 심각하게 다뤄지고 생각한 것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농담을 하려고 시도하다 자칫 잘못하여 이 선을 넘어버릴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그러하겠지만 대면을 하고 농담을 하는 경우는 이에 대한 판단이 조금 더 쉽다. 얼굴 표정과 분위기에서 드러나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내가 서툴게 농담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농담임을 알아차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게 활자의 형태만을 띄게 되면 애매해진다.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방과 나 사이의 관계설정도 중요하고 말이다. 얼마나 캐주얼한 자리인지, 어느 정도까지의 농담이 허용되는 분위기인지는 사바사 케바케이므로 불안할 땐 농담을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빈정대다가 빈정상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2. 밑도 끝도 없는 레퍼런스의 세계


나에게 있어 난이도가 극악한 부분은 레퍼런스를 활용한 농담이다. 사실 레퍼런스의 기준이 개인마다, 또 집단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되어있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기 때문에 알아듣기도 만들기도 아주 어려운 편에 속한다. 어릴 때부터 서양 문화권에 관심을 갖고 쭉 지켜와 본 사람이라면 식은 죽 먹기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나처럼 그냥 적당히 할리우드 영화 보고 미드 좀 그럭저럭 보면서 자란 사람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이 없다.

미드에서도 종종 캐릭터들끼리 레퍼런스를 주고받으며 척하면 척하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한다. 호주에 오기 전까진 그걸 보면서 '에이, 설마 저걸 다 기억하고 다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였다.

사실 이런 부분은 조금 더 깊게 '문화적인 차이'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뭐 말하고 보니 거창한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국에서 누가 "누구인가?"라는 말을 한다면 그다음엔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가 따라 나올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혹은 "난 이제 지쳤어요"라는 말을 한다면 "땡벌! 땡벌!"을 자연스럽게 외치게 된다거나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 시대, 그 문화를 살아내지 않은 사람이라면 레퍼런스를 사용한 농담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같은 한국인끼리도 어떤 콘텐츠를 향유하고 살았느냐에 따라 이런 농담이 통하느냐 아니냐에 있어 큰 차이가 난다. 영어권도 비슷하다. 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인용뿐만이 아니라 시, 소설, 노래에 대한 인용도 제법 많다. 역시나 예시를 들어보겠다. 참고로 아래의 예시는 내가 기억한 레퍼런스로 기타 많고 많은 레퍼런스는 내 머릿속에 단 1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시로 들어볼 수조차 없다.


예시 1.

A: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Hello!

B: (노래로) From the other side~~~~~

[Adele의 Hello를 인용. 저 구절 이외에도 으레 Hello 뒤에 "It's me"가 따라붙기도 했다. 이 역시 같은 노래에 등장.]



예시 2.

A: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Hello!

B: Darkness, my old friend

[무려 1964년에 발표된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s of silence'라는 곡에서 인용한 것이다.]

예시 3.

외근을 하느라 사무실에 잘 출근하지 않던 A가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B: (A를 향해) Wild A has appeared!!!

[포켓몬의 인용. 야생의 A가 나타났다!!!"]


이밖에도 영화나 드라마의 인용은 한도 끝도 없다.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고 공감 가능한 건 마블 영화정도...? 또 왜인지 이전 회사사람들은 Borat이라는 영화를 좋아해서 여기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곤 했다. (인용이라기엔 별것 없다. 주로 여기 주인공이 만드는 희한한 감탄사 같은 것들이라 거의 성대모사에 가깝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영화이지만 왜인지 서구권에선 제법 유명한 클래식 영화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한도전이 탄생시킨 수많은 걸출한 짤 중 하나인 "존이냐 박이냐"가 나왔을 당시 존박이 '노홍철이 영어를 못해도 미국에서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인용했던 영화가 바로 이 Borat이었다.



서구문화권을 통틀어 적용되는 이러저러한 레퍼런스가 있는 반면 특정 국가에만 적용되는 레퍼런스도 있다. 나는 정말 생전 처음 들었지만 호주인에게는 유명한 Crocodile Dundee라는 영화 같은 것이 해당한다. 뭐 이런 각국에만 특유한 레퍼런스까지 말하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이민자로서 이걸 다 알기는 어렵다. 물론 알아야 할 의무도 없다. 관심이 간다면 자연스레 조금씩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오직 농담을 하기 위해서 이런 레퍼런스를 다 찾아본다는 건 시간낭비에 가깝다. 사실 호주인들끼리도 누구는 아는 레퍼런스를 누구는 모르기도 한다. 취향의 세계란 정말 깊고 넓고도 다양하기에.

하지만 분명 그들 간에도 일정 정도의 컨센서스는 존재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걸 모름으로 인해서 나만 외로운 순간들도 온다.

그렇다. 이제 이 유우머에 대한 문제가 이민자로서의 외로움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나만 조금 외로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보낸 학창 시절이라는 시간의 갭을 메꿀 수는 없다. 학창 시절에 먹은 불량식품, 소풍으로 갔던 장소, 매점에서 사 먹은 음료, 보고 자란 만화, 친구네 집에 가면 했던 게임, 이런 것들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들 메꿀 수 없는 간극인 것이다.

결국 내가 이민자 1세대로 여기서 어떤 스탠스를 갖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이 이야기도 하자면 날밤 깔 테니 여기서 줄이겠다.

짧게 말하면 (그래도 호주에서 산지 몇 년 지났다고) 지금은 "너네도 내가 어릴 때 일요일 아침 8시마다 뭐 봤는지 모르잖아!" 하는 마인드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민자로서 이 정도의 마이웨이는 필요한 것 같다.


3. 영어를 '잘' 한다는 것


이 시리즈 제목이기도 한 영어를 '잘' 한다는 것에 대한 나의 대답을 한마디로 압축해 보면 영어로 농담을 구사할 수 있느냐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대답은 이 시리즈(?)를 처음 기획(?)하면서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이기도 하다. 농담, 유머를 다른 언어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 자체를 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위에 문화적인 부분까지도 어느 정도 수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민자로서 반드시 유머를 구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솔직히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고 영어공부를 계속할 생각이 있다면 '영어로 유머 구사하기'를 목표로 삼아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 조금 더 풀어쓰면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 모두가 즐거운 진짜 유머 만들기'라고 해야 할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서양 문화권에서 유머는 어찌 됐든 꽤 중요한 요소이니까 말이다. 이와 함께 원어민들이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하고-밥 먹듯 사용하는 idiom이나 표현까지 사용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소수 의견일지도 모르는 소신 발언을 하나 첨언하고 싶다. 요즘 범람하는 영어 콘텐츠들 중에는 굉장히 지엽적인 표현을 알려주는 숏츠나 영상이 꽤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콘텐츠는 두 가지 경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경우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의 영어 실력이 중급 이상일 때, 그리고 두 번째 경우는 잠재적인 학습자의 흥미도를 끌어올릴 때. 이 경우 외에 나의 실력이 너무 초보인 경우나 그 콘텐츠를 학습의 메인 자료로 활용하려는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부적절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어떤 표현을 쓰는 상황은 정말 복잡하고 다양하고 그때그때의 문맥에 따라 다르다. 어떤 표현이 힙하고 원어민스러워서 열심히 공부하고 기억해 뒀다가 쓰려는 것은 당연히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만 이로 인해 애매할 때에 애매한 표현을 쓰게 되면 모두가 어색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평소에 초보적인 수준으로 한국어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알잘딱깔센으로 부탁해요!" "너무 억텐이세요! 아하하"라고 말하는 걸 보는 느낌이랄까...?

고리타분한 소리이지만 역시 언어는 어느 정도 기본을 쌓고 난 다음에 재미난 표현을 익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왜 어떻게 어떤 표현이 나왔는지 자연스럽게 알고 사용하는 것과 어떤 표현 하나만 주구장창 외워서 쓰는 건 당연히 다르고 티가 난다.

처음 글로 쓰고자 생각했던 영어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면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해외살이를 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때로는 거창한 문화차이나 정서적 차이를 다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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