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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Sep 19. 2024

해외 이직기 (1)

호주 취업과 이직 이야기


1. 이직을 결심하기까지 (feat. 문과생에게 이직이란 무엇인가)


뭐 사실 그렇다. 회사 다니는 사람 중에 (공노비든 사노비든)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100% 만족하면서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가슴속에 삼천 원과 함께 사직서 정도는 품고 다니지 않는가. 그러나 품고 다니는 것과 실제로 실행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꼭 퇴사하고 만다"라고 염불 외는 사람이 가장 오래가는 법인데 나는 염불을 외다 외다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사실 이직이란 나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영역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소위 대기업이라 말하는 곳을 정확히 5년 꽉 채워 다녔다. 문송한 문과생이 취업난을 뚫고 영차영차 취업했으니 그 뽕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그 뽕은 1~2년 사이 폭삭 사그라들고 각종 욕을 달고 다니는 낡디 낡은 직원으로 변했는데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했던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연봉 및 복지혜택, 두 번째는 "경영지원"으로 입사한 문과생의 한계로 이직을 할 자신이 없어서 라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런가 같은 기수 동기들을 보면 이과 쪽 출신은 그래도 제법 살길 찾아서 잘 떠나가던데 문과 쪽 동기들은 어떻게든 근속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주관적인 관찰일 뿐이고 뒷받침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내가 한국을 떠난 지도 이미 몇 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조금은 과거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직도 해본 놈이 한다고(?) 대충 한 근속한 지 3~5년 사이에 이직을 하지 않은 경우는 보통 더 오래 근속하는 것 같다. 이것 역시 나의 주관적인 생각.


그러다가 이직은 아니고 호주로 유학을 오게 되며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이직"이라는 감각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공부를 하러 떠나는 것이지 다른 곳에서 일을 시작하려고 떠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호주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인턴을 거쳐 다시 쌩 신입처럼 취급받으며 회사에 취직했을 때는 너무 기뻤다. 비록 회사의 규모가 아주 작고 가.족같은 분위기였지만 어쨌든 외국인인 나에게 일자리가 주어지다니 그게 어디인가.

그러다가 영주권 초청을 기다리고 또 실제로 초청을 받아 영주권을 신청하게 되면서 그냥저냥 다니게 된 것이 어느새 인턴기간을 빼고도 3.5년이나 지난 것이다. 비록 내가 신청한 비자는 고용주와 관계없는 독립기술이민이었으나 승인이 날 때까지는 혹시 어떤 서류를 요구할지도 모르니 그날까지만 붙어있자,라고 했던 게 그렇게나 많은 시일이 지나간 것이다.


물론 그 3.5년간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내게 "Team work, Team effort"라는 게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런 조직문화는 우선 작은 회사라 가능했던 것도 있고 직원들의 나이가 대체적으로 비슷한 또래여서 가능했던 것도 있었다. 나에겐 한국에서 말하는 사수-부사수 문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느낌도 호주에서 느낀 신선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일을 할 땐 그냥 일이 일이지 뭐..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생각으로 따분하게 일을 했다면 호주에선 내가 어떤 일을 해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내 밥그릇을 챙겨야 하는지, 짧게 말하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이 고민은 한국에서도 진작 했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늦바람이 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매니지먼트 및 HR이 최악이었다. 사실 HR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왜냐하면 아예 없었으니까. 회사의 오너부부가 겸사겸사 매니지먼트와 HR (정확히는 페이롤 정도..)를 하고 있으니 조직문화가 개박살 나는 것은 시간문제.

다들 work flexibility를 외치는 마당에 시대를 역행하는 노예계약으로 나뿐만 아니라 오래 일한 매니저까지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직원들의 여러 가지 소리를 매니저가 전달하자 “나에 대한 쿠데타 같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오너 부부 중 한 명이 갑자기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며 일어난 일이었다.

회사가 처음부터 이 지경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소규모 회사로의 장점-간결하고 빠른 의사결정, less bureaucracy, 자유로운 분위기-을 한껏 살려 그럭저럭 다닐만한 회사였는데 무려 2년간 annual performance review를 하지 않고 고로 연봉 인상도 없는 와중에 조직문화는 개판이 나니 더 다닐 이유가 없었다.


2. 본격적인 이직준비에 앞서


중간중간 이직 위기(?)는 많았다. 사실 영주권 초청을 받기도 전에 다른 곳에 한 번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내 이직 의지 자체가 위에 상술한 이유로 확고하지 않았고 그래서 준비를 개떡같이 하는 바람에-아니 사실은 아예 준비를 아무것도 안 했다고 보면 된다-당연하게도 낙방했다.


이제는 어쨌든 한 꼭지(비자)는 해결되었으니 아무도 날 막을 순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이력서를 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기 전에 회사 이름만 바꿔가며 자소서 내던 심정으로 호주의 구직사이트 중 하나인 seek에서 내 job title을 넣으면 나오는 웬만한 곳에는 다 레주메를 뿌렸다.


그러니 잘될 리가 있나.


정중하지만 복붙을 한 것이 분명한 거절의 이메일을 받으며 사소하게 울적해지는 나날이었지만 지치지는 않았다. 나는 이 거지 같은 곳에서, 이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한다 라는 결사의지가 날 포기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대충 레주메 때려 넣고 줄줄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이 새대가리도 느낀 바가 있어 조금씩 레주메를 찬찬히 수정하게 된다. 느낀 점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내가 정말 이 job title을 계속하고 싶은가

(2) job description이 과연 내가 해온,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인가

(3) 나는 지금까지 무얼 했는가(!!!!!)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결국 “나”라는 인간이 뭘 해왔고, 뭘 잘할 수 있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주 뻔한 얘기지만.

한국에서도 자소서를 쓸 때 “스토리”가 있게 쓰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게 뭔 자소서야, 자소설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그게 호주에서도 똑같다. 정말로 소설을 쓰라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이 어느 정도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통해서 얻은 스킬로 지금 공고가 나온 그 자리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는 큰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깨달은 건 내 당시 job title인 “Business Analyst” 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숫자 데이터를 보는 걸 더 잘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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