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jaC 카작 Jun 30. 2023

내 OST

소시와 원걸부터 ITZY와 레드벨벳까지

H.O.T. 늑대와 양

우연히 케이블TV 채널에서 흘러나온 H.O.T.의 '늑대와 양'을 듣게 됐다. 내가 초딩 저학년 때인 1997년 나온 곡인데 어쩐지 그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태권도 학원을 다녔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학원 봉고차 안에서 항상 H.O.T. 노래 테잎을 틀어줬기 때문이다. 간만에 늑대와 양을 들으니 26년 전 그 봉고차에서 느꼈던 공기, 심지어 냄새마저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노래는 역시 이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옛날부터 지금까지를 쭉 되새겨봤다. 이런저런 시절마다 자주 듣던 음악이 있었다. 몇몇 떠오르는 곡들을 플레이해보니, '그때'를 너무나도 생생히 떠오르게 하는 '그 노래'가 있었다.


-고딩,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각박한 학창시절...
소녀시대 키씽유
원더걸스 쏘핫

노래에 가장 집착했던 시기는 단연 고딩 때였다. 정확히는 노래가 아니라 걸그룹이었다. 각박한 학창시절, 살 길이 그뿐이었다. 남고에 다닌 탓인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데뷔는 충격 그 잡채였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면 선생님 몰래 컴퓨터 연결된 교실 TV를 틀고 '다시만나세계'(소시)나 '텔미'(원걸) 뮤비를 봤다.

 

친구들 중에는 걸그룹 사진을 장당 500원 정도에 파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소시 유리와 원걸 예은의 사진을 구매해 책상에 붙였더랬다. 물론 이는 바람직한 행태가 아니었다. 당시 분위기에선 소시와 원걸 두 팀중 하나를 소신껏 택해야만 했다. 나처럼 줏대 없이 '둘 다 좋아' 한다면 인간 대접을 기대해선 안 됐다.


암튼 나는 소시의 키씽유와 원걸의 쏘핫을 유독 좋아했다. 특히 원걸 쏘핫은 뮤비 첫 공개된 순간도 생각난다. 이거 보겠다고 늦은 밤 독서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PC이용실 쓰려고. 게으른 나는 경쟁에 제대로 끼지도 못한 채 결국 자리 예약에 실패했지만, 비슷한 처지를 토로하며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친구들과 한패 이뤄 PC이용실로 쳐들어갔다. 다행히 무례하단 취급은 받지 않았다. 모두가 쏘핫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물 초반, 오렌지캬라멜&티아라                                       

수련원 사무실에서
얘네도 이제 성인이겠다.
오캬 마법소녀
박봄 YOU AND I
티아라 거짓말

20대 초반부터는 할 말이 대단히 많아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눈썰매장 군밤 장수, 어린이 캠프 가이드, 레크레이션 행사 보조, 청소년수련원 조교 등으로 잡다한 일을 하며 매일 음악을 듣고 춤을 췄다. 마침 걸그룹 점령기가 도래해 명곡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들은 이렇다. 카라 '허니', 포미닛 '핫이슈', 티아라 '거짓말&보핍보핍', 오렌지캬라멜 '마법소녀&아잉', 박봄 'YOU AND I', 손담비 ‘토요일밤에’ 등이다.


숙식하며 일하던 어린이 캠프장에서 오지게 틀어준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꼽으라면 역시 오렌지캬라멜이다. 캠프 온 애기들이랑 자주 따라 불렀고, 눈썰매장 한복판에서는 같이 일하는 가이드들끼리 멜로디 맞춰 춤 추고…그랬다. 그러고 보니 그때 본 5~7살 애기들도 이제 성인이겠다.

 

암튼 이들 노래는 '어마무시하다'는 평가를 줘도 무리가 아니다. 함께 숙식하던 형들 가운데에는 학창시절 심한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서도 크고작은 물의를 빚은 흡사 건달과 유사한 이들이 적잖았는데 카라, 포미닛, 티아라 등 앞에선 사이비에 심취한 어린 염소들에 불과했다. 물론 나는 "보핍보핍 나옵니다!" 소리쳐야 하는 막내로서 좀 고단했지만.

      

-스물 후반, 볼빨간사춘기와 블랙핑크

야학
놀러가기.
볼빨간사춘기 우주를 줄게
블랙핑크 불장난

망나니로 지낸 대딩 땐 볼빨간사춘기와 블랙핑크 노래에 빠졌다. 볼사의 '우주를 줄게'와 '썸탈거야'는 거의 매일 들은 것 같다. 그때 만나던 여친님한테 자주 들으라고 협박 비슷한 것도 했었는데, 돌아보니 그때부터 '내 OST' 따위의 개소리를 입에 붙인 것 같다. "내 OST니까 자주 들어야 해"랬나 뭐랬나.

 

블랙핑크 '불장난'과 '휘파람'은 함께 쓰레기로 살았던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학교 정문 앞 술집과 당구장 및 락볼링장 등에서 걸핏하면 이걸 틀어줬다. 매일 밤새 마시고, 밤새 당구치고, 또 다시 밤새 술을 쳐묵쳐묵했기에 매일을 밤새들은 노래였다고 해도 심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진짜 대세는 트와이스였는데 개인적으론 별로 안 좋아했다.  


그렇다고 꼭 '미친놈마냥 아무 데서나 먹고 자는 모습'만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그때 나름대로 취직도 도전해보겠다며 공부…는 아니고, 대외 활동 비스무리한 걸 했었다. 아직도 이름이 헷갈리는 모 언론사에 꼭지당 1만 원씩 받고 어뷰징 기사를 넘겼는데 속으로 "음 역시 난 열심히 사는군" 자아도취에 빠진 순간들도 돌아보게 한다.  

   

-서른 초중반, ITZY와 레드벨벳

출장길
ITZY 워너비
레드벨벳 필마이리듬

요즘은 ITZY의 '워너비'를 내 OST로 삼고 있다. 이 노래가 그런 처지에 놓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재작년 한창 출장을 다닌 때 그냥 많이 들었다. 신나는 멜로디도 좋은데 가사가 명품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I wanna be me, me, me.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 각종 보고와 데스크 지시 등에서 해방되는 출장길에 딱 어울리는 리듬과 가사다.


레드벨벳은 '필마이리듬'이 쩐다. 이건 내 OST 2번째 트랙 정도로 생각하는데, 역시 이런 처지가 된 배경은 그냥 많이 들어서다. 이건 모 항만과 모 제조공장에서 일할 때부터 항상 차에서 재생했다. 몸이 부숴 질 듯 아파 죽을 무렵 큰 위안이 됐다. "꽃 가루를 날려 폭죽을 더 크게 터트려 우릴 오만과 편견에 가두지 마!".

 

-별별 순간, 별별 노래

아이유 섬데이

대개 신나는 노래 위주인데 가끔 조용한 노래를 들은 때도 있었다. 아이유 '섬데이'가 대표적이다. 청소년수련원에서 일하며 몹시 아꼈던 동생이 싸이월드 bgm으로 선물해달라고 졸라대기에 해줬던 곡이다. 내가 전역한 뒤 이 친구는 백혈병으로 하늘의 별이 됐는데, 아이유 섬데이를 들으며 그 아이 생각을 한참 하기도 했다. 위 영상은 아이유가 비교적 최근에 부른 섬데이다. 업그레이드 된 섬데이를 들으면 얘가 얼마나 좋아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2022 슬로건은 '한심하게 살자'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