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테이블에서 여러 거친 표현들이 나오기에 본의 아니게 고개를 돌려봤다. 모녀가 앉아 있었다. 엄마의 표정은 '세상이 무너지기 직전'을 마주한 듯 매우 심각해 보였다.
딸은 중학생? 많아봐야 고1쯤 돼 보였다. 아주 착하고 순한 인상이었는데, 역시 삶 끝자락에 내몰린 연약한 양처럼 눈의 총기는 사라진 채, 고개마저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남의 가정사에 관심 가질 필요는 없지만, 엄마가 쏘는 말들이 워낙 매섭고 사나운 탓에 내 귀까지 쫑긋 세웠다. "너, 오늘꺼 예습은 했어?" "어제 쪽지시험 본 건 어떻게 됐어?" "너는 네 인생이 창피하지도 않냐" 등등.
엄마가 딸의 성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옛날로 치면, 양·가야 양·가!". 아이 성적은 대강 100점 만점 기준 60점 안팎이었나보다.
음, 그래. 높은 성적은 아니다. 엄마는 속상할 수 있다. 나름 딸에 자극을 주려 일부러 세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인생 패배자" 식의 말까지 해야 했는진 의문이지만, 엄마의 심경 자체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허나, 딸 입장에서도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내가 괜스레 안타까웠다. 어디 세상이 다 내 마음 같던가, 누구는 좋은 성적 안 받고 싶나, 정작 제일 힘든 이는 딸일 텐데.
고딩 시절.
고딩 시절.
굳이 남 얘기로 글을 끄적이는 이유. 개인적으로 학생들에 '억지로'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데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큰 편이다. 공부를 '유도'할 수는 있지만, "인생 패배자" 등 모멸감까지 안기며 책상에 머물도록 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폭력'과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에이, 폭력이라 할 것 까지야?'
이리 받아들일 수도 있겠으나, 나로선 고집스러울 정도로 이 같이 여기게 된다. 여기엔 몇 가지 배경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내 고등학생 시절 기억이다.
속칭 뺑뺑이였지만, 지역에서 선호도가 꽤 높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엄격한 규율과 체벌로 면학 분위기를 다잡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문제는 그 분위기란 게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공유하는 발상들도 심하게 지엽적이었단 점이다.
"오로지 공부만이 살 길"이란 기조가 뚜렷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이 공부, 대입 외 다른 길로 나아갈 여지 자체를 일절 열어두지 않았다.
공부에 큰 뜻이 없음에도, 부모 강요에 못 이겨 입학한 학생들한테는 매일매일이 지옥이고 고문이었다. 어찌 이토록,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게다가 몽둥이로 맞아가면서까지 원치 않는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를 납득할 수 없는 학생들은 어쩌란 말인지.
돌이켜보면,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학생들을 납득시키기란 불가능의 영역이었거늘. 결국 이들 학생들에 고등학교 시절이란, 인생에서 '잃어버린 3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가 됐다.
요근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보면, 옛 그 시절 기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추억파'. 그리고 "삶에서 지우고 싶다"는 '악몽파'.
공교롭게도 이 두 부류는 현재 삶에 대한 만족감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그 시절을 '추억'으로 기억하는 쪽은 대개 "학교가 빡쎘던 덕분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어"라고 회상한다.
반대로'악몽'을 떠올린 이들은 "그 학교가 아니었다면 지금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 테야"라고 털어놓는다.
여기서 후자, 즉 자기가 나온 고등학교를 원망하는 친구들의 사정은 충분히 알 것 같다. 얘네들의 과거 교실 속 모습을 떠올려보면, 진즉부터 공부엔 뜻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쓸모가 없었는가. 당연히 아니었다. 되레 인기는 많았다.
'성적은 꼴찌' '특기는 야자 째기(도망)'로 대표됐던 한 녀석은 실은 진가가 따로 있었다. 친구들의 컴퓨터나 자전거 등 물건들이 고장 나면 고쳐주길 참 좋아하던 애였다. 심지어 잘 고쳤다. 나 역시 뭔가 문제가 생기면 얘한테 수리를 부탁하곤 했다. 그럴 때면 '자주 부탁해서 미안'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아냐, 난 이런저런 물건들 뜯어보는 게 재밌더라고" 식이었다.
이 친구는 3학년 1학기에 접어든 지 얼마 안 돼 실체를 알 수 없는 모 대학 영문과에 진학했다. '모르긴 몰라도 4년제는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한 현실 속, 얘 또한 '아무 데나 합격해 합법적으로 야자를 빼자'는 무의미한 절박함으로 대학에 등록했단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 친구 삶은 다사다난 그 자체다. 가까스로 어느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매 순간 '영혼 이탈'을 되풀이하며 사건 사고도 반복된다. 스트레스에 술에 취하면 했던 말들을 또 하고, 또 한다. 이런 말들.
난 조직생활은 안 맞아. ㅇㅇ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뭔가 크게 꼬인 것 같아. 사실 난 카센터나 컴퓨터 AS지점 같은 걸 차려서 기계 전문가가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곧 죽어도 공고 등 실업계는 보낼 수 없단 거야. 그래서 ㅇㅇ고 시절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잤잖아. 그러다 선생들한테 두들겨 맞고…
얘의 진면목을 그때부터 주변서 알아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지금쯤 정말 기술 전문가가 돼 주변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어떻든 저마다의 소중한 인생인데, 왜 '잃어버린 시간'을 만들어야 하냔 거다.
다시 최근 카페에서 내 옆에 있던 모녀 이야기. 엄마와 딸, 둘 다 음료는 잘 마시지 않았다. 엄마는 아메리카노 아이스(아아)를 시켰고, 딸은 민트 머시기…암튼 되게 달고 맛있어 보이는 음료를 주문한 상태였다.
화가 난 엄마 앞에서 고개만 푹 숙인 딸 앞의 달달해 보이는 그 음료가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시킨 '아아'야 뭐, 카페 온 김에 으레 시키는 메뉴일 테고. 딸은 그 음료를 얼마나 기분 좋게 마시고 싶었을지.
앳되고 풋풋한 그 소녀가 음료 하나 제대로 못 마시는 모습에 속으로 꼭 하고픈 몇 마디가 꿈틀댔다. 남의 가정사지만…엄마가 딸의 진면목을 좀 봐주면 어떨지. 뭐 그런 거였다. 내 고교 시절, 옛 기억을 떠올리고 지금 주변을 되돌아보니, 괜히 복받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