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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 Feb 18. 2017

청춘 18

셋째 날

2016.1.1. 금


09:00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찬기운이 감도는 호텔 책상에 앉아 남은 3일간의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올 한 해의 계획이나 버킷리스트 등을 노트에 적어 볼 생각이었느나 좀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이번 여행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오전에는 영화 레브 레터의 장소를 돌아봤다. 먼저 15도 경사 표지판이 있는 언덕길을 걸었다. 그리고 나서 오타루의 중앙로 거리를 걷고 돌벽을 따라 유리공방을 지났다. 거친 눈보라를 헤치며 영화에서 도서관으로 등장한 건물을 찾아 헤맸다. 영화 속 주인공이 앉아 있던 도서관 앞 계단. 그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눈보라 속을 한 시간이나 헤매었다. 병원으로 등장한 시청 건물까지 보고 나서 오타루에서의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으로 오타루 운하를 다시 한번 들른 후 역으로 향했다.





12:40

오타루에서 하코다테로 가기 위해 오샤만베행 열차를 탔다. 오타루에서의 기억들이 너무도 강렬해서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차창밖으로 오타루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오타루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아직도 오타루의 풍경 속을, 그 눈 속을 헤매고 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추위를 몰고 온 거친 눈보라가 지금이라도 당장 나를 덮쳐 올 것 만 같다. 방금 전까지 추위에 떨며 오타루를 헤매고 있었는데, 지금은 따사로운 햇살을 내리쬐며 여유롭게 다음 여행지로 향하고 있다. 좌석에 앉아 눈 앞에서 멀어져 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다음 여행지를 생각하기보단 방금 떠나온 여행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15:50

대합실에서 하코다테행 열차를 기다린다. 좁은 공간 안에서 조용히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숨죽이고 있다. 열차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았기에 근처 바닷가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경사진 해변에는 꼬마 아이가 미끄럼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꼬마 아이의 할아버지로 보이는 노인이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다. 겨울 바다를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바다를 보면 그 광활함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는데, 이제는 바다를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않는다. 나이를 먹은 탓일까. 바다를 뒤로 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 역을 향해 걸었다.





19:00

하코다테에 도착했을 때 역 앞 일루미네이션이 나를 반겨줬다. 미리 예약 해 둔 호텔까지 가는 길은 얼음이 얼어 빙판 길이 되어 있었다. 분명 이 거리를 걷다가 몇 명은 엉덩방아를 찍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슬아슬 빙판길을 걸어 호텔에 도착했다. 하지만 금역석을 예약한다는 것이 모르고 흡연석을 예약한 덕에 하룻밤 담배 냄새에 푹 절어 있어야 했다. 짐을 풀고서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한산했다. 신년 연휴로 인해 문을 닫은 가게도 많았다. 노면 전차를 타고 아카렌가 창고를 가볼 생각이었으나 그곳까지 가는 노면 전차는 이미 운행을 종료한 상태였다. 갈 데도 없고 해서 저녁을 먹고 빨리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가까운 식당 거리를 찾았다. 식당에 들어가 시오라멘을 달라고 하자 주인과 좁은 카운터석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한꺼번에 웃음 터트렸다. 간판을 잘 못 보고 라멘 집이 아니라 옆에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주인은 라멘집은 옆에 있는 가게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본의 아니게 가게 안에 웃음을 선사하고서는 옆에 있는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라멘집의 주인은 수염이 덥수룩하고 덩치도 산만했다. 이 집은 분명 시오라멘 집인데 주인장의 모습만 본다면 시오라멘 보다는 돈코츠라멘이 어울릴듯 했다. 라멘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닭고기 베이스로 맛을 낸 깔끔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꾸밈없이 순수한 맛. 그런 맛이었다. 이런 음식을 만드는 주인장이라면 겉모습과 달리 여리고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고 라멘 국물을 들이키며 생각했다.





23:00

올 해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아마도 내 생에 있어서 가장 버라이어티 한 첫날이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일이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오타루에서 폭설 속을 헤매던 나의 모습.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열차를 갈아탄 끝에 하코다테의 좁은 비즈니스 호텔에 앉아 있는 지금의 내 모습. 그런 모습들이 마치 꿈처럼 여겨졌다.




<청춘 18 3일 차 경로>

오타루(12:20)----하코다테 본선---->(15:15)오샤만베(16:09)----하코다테 본선---->(19:25)하코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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