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녁 Mar 26. 2017

아사쿠사바시

浅草橋


일 때문에 2주일 정도 아사쿠사바시로 출근을 한 적이 있다. 아사쿠사는 잘 알고 있었지만 아사쿠사바시라니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보며 어디에 있나 봤더니 아키하바라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내가 사는 쿠니타치에서 중앙선을 타고 출발하여 오차노미즈에서 소부선으로 갈아타 두 정거장 거리. 마음만 먹는다면 아키하바라에서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였다.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일 때문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오지 못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외근 장소로 바로 출근을 하는 거라 10시까지 거래처에 가면 되었다. 평소보다 느긋하게 나와도 약속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환승역인 오차노미즈에서 잠시 내려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역 근처 히지리바시에서 선로를 내려다보며 3개의 JR열차가 동시에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거래처가 있는 아사쿠사바시역에 도착하여 개찰구를 빠져나와 출구로 나가려고 하면 꽤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만 한다. 게다가 계단 수도 상당하다. 어느 날은 계단을 다 내려올 때쯤 어떤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유도 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부진 체격에 짧게 자른 머리, 그리고 돌돌 말은 두건을 눈썹 위로 바싹 동여 묶은 모습. 정장 차림의 사람들 속에 도복을 걸치고 있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역의 입구에 서서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먹을 마주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다 말고 그런 모습을 보게 되니 마냥 신기한 게 아니었다. 바빠서인지 겸언쩍어서인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가벼운 펀치로 응답해주었다. 그러면 아저씨는 ”갓츠”라는 말로 용기를 붙돋아 주었다. 바쁜 출근길에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내서 누군가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나 또한 힘이 났다. 굳이 그 아저씨의 주먹에 나의 주먹을 맞대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잘 버텨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았다.






아침 출근길을 풍경으로써 바라볼 수 있는 건 여행자의 특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나가 그곳의 일상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매일매일 출근 전쟁을 하는 직장인으로서는 여행이 아니고선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평소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출근길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자신 또한 풍경 속 일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차 안에서는 하루 일과를 견대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환승을 하여 빽빽한 사람들 속을 헤집으며 플랫폼을 지나갈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기는 힘든 일이다. 비록 나 또한 출근을 하는 입장이기는 했지만 1시간 정도 여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사쿠사 바시는 JR소부선이 지나가는 노선으로 선로 밑에 옛 창고 터를 개조해서 만든 허름한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로 밑 좁은 소바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신사 옆 골목길에서 아침햇살을 쬐는 고양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느 튀김가게 앞에는 어제 쓰고 남은 튀김 부스러기를 내놓아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가게 했다. 우동을 먹을 때 요긴하게 쓰이는 재료로 마트에서 몇 번인가 돈을 주고 산적이 있다. 또 어느 가게 앞에 놓인 밀가루 포대에는 독특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가는 길을 멈추고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창문을 통해 아침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어느 노인의 얼굴을 보고선 깜짝 놀란적도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바쁘게 거리를 뛰어가는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자의 시선으로 아침 출근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풍경 속에 살며시 스며든다.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책을 펼쳐들고 하루를 버텨나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북오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