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와분노 Feb 20. 2021

<네트워크> "소리와 분노"

시드니 루멧,1976

1. <네트워크>를 오랜만에 다시 보며 생각했다. 시발... 영화가 이렇게까지 재밌어도 되는거니? 


2. 더욱 심오하고 완벽하다고 주장될 영화들도 있겠지만 <네트워크>는 그 나름 추구하는 방향성에서 최고의 각본과 최고의 연출이 배우들로 하여금 최고의 '절정의' 연기를 이끌어낸 결과이다. 그래서 수십 년 후 관객인 나조차도 영화 속 인물들에 홀린 듯 빠져들어 영화의 딥한 지점까지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피터 핀치, 로버트 듀발 주연배우 네 명의 이름은 오프닝 화면을 대문짝만하게 가릴 자격이 충분하다. 물론 시드니 루멧과 각본을 쓴 패디 차예프스키도...  


3. 그런데 그 중에서도 페이 더너웨이! 오직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이 영화속에 있다. <차이나타운>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보다 <네트워크>의 페이 더너웨이가 최고다.  


4. 시작하는 영화의 시선은 피터 핀치가 연기하는 늙은 뉴스앵커 하워드 빌에 주목한다. 하워드 빌은 '2주 후 해고'를 통고받았다. 그는 오랫동안 이 방송국의 간판뉴스를 맡아왔지만 그는 늙었고 시청률은 바닥이고 그래서 그는 쓸모없다. 하워드 빌은 뉴스 생방송 도중 다음주 생방송에서 자신의 쓸모없는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터뜨리겠다는 폭탄발언을 한다. 그로부터 어찌저찌 이어지는 그의 미친 뉴스쇼가 내러티브 한가운데 자리잡는다. 


5. 허나 하워드 빌의 뉴스쇼는 영화의 중심이면서도 메인플롯보다는 서브플롯에 가깝다. 미친 하워드 빌의 미친 뉴스쇼를 둥글게 둘러싼 방송국 사람, 다이애나(페이 더너웨이) 맥스(윌리엄 홀든) 해켓(로버트 듀발) 그들끼리 벌이는 권력투쟁, 인정투쟁, 애정의 투쟁이 영화의 보다 폭넓은 맥락이다. 고로 영화의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세심하게 그들 한 명 한 명의 캐릭터는 구축되어 있고 훌륭한 연기로서 그 각각의 깊이가 표현된다. 


6. 그 중에서도 역시 그녀, 페이 더너웨이가 맡은 다이애나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그녀는 시청률에 미친 제작자다. 시청률에 미친 그녀는 미친 하워드 빌의 미친 뉴스쇼에서 시청률 반등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모든 미친 짓거리를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추진한다. 이 정도만 말하면 흔해빠진 속물같지만 그녀에게는 '에반게리온의 아스카'와 비견될 법한 속물적인 진정성, 간절함이 있다. 천박한 세계의 인정투쟁에 기꺼이 온몸을 내던져서 누구보다 그 천박함에 당당하고 솔직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표현하는 페이 더너웨이의 연기는 노골적으로 히스테릭하다. 히스테릭한데 유쾌하고 유쾌한데 애절하다. 영화 속 대사 그대로 그녀는온갖 정보와 감정을 쏟아내는 TV(혹은 미디어)의 현신인것만 같다. 



7. 현실의 속물들은(즉 우리는) 그녀처럼 솔직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속물스러움이 들통날까봐 노심초사한다. 가급적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그런 상대적인 절제로 상대보다 우위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애쓴다. 그러니까 그녀, 다이애나의 캐릭터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리얼리티가 아니다. 페이 더너웨이의 연기는 다소 과장된 희극성을 띠며 그녀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희극적으로 과장된 우스꽝스러운 미치광이 난장판을 연출한다. 그런 스타일로 현실의 위장을 한 꺼풀 벗겨내 현실의 솔직한 광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풍자하지만 신랄하게 비웃는 것보다 더 파고들어 영화적으로 완성된 리얼리티가 있다. 페이 더너웨이(다이애나)가 그 리얼리티의 정점이다. 그녀는 현실을 조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속물이 속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내밀한 마음을 끌어안고 영화에서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8. 사실 하워드 빌의 미친 뉴스쇼도 사실적이지만은 않다.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 70년대 대항문화의 시대적 분위기에서라면 몰라도 모두가 올바른 척 성숙한 척 떠들어대는 지금이라면 말이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아무리 시청률에 목말라도, 뉴스는 그 객관성에 대한 신뢰가 생명이다. 당연히 객관적일 리가 없고 우리 모두 곧이곧대로 신뢰하지도 않겠지만 객관적인 것처럼 신뢰하는 것처럼 서로 적당히 속이고 적당히 속아넘어가는 그 점잖은 분위기가 언론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래야 더 효율적으로 기만할 수 있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왜 구태여 솔직해야 하는가? 왜 구태여 우리는 오로지 당신들의 관심을 끌고싶고 관심을 끌고 위해서라면 정치, 경제, 사회, 연예인들의 가십 온갖 것들을 끌고와서 진지하고 엄숙한 비판인 마냥 포장하고 당신들 모두 진지하고 엄숙한마냥 분노하고 소리지를 뿐이라는 반응을 예측하고 유도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 솔직해져야 할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 기만적인 연극에 진절머리가 나 솔직하게 미쳐버리고 싶어지기 직전까지는...


9. I'm as mad as hell, and I'm not going to take this anymore!


10. 하워드 빌은 생방송 카메라를 쳐다보며 분노하고 소리지른다. 묵묵히 TV화면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서 집집마다 창문을 열고 분노하고 소리지른다. 비록 영화이고 영화라서 가능한 풍경이지만 맙소사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장면일까! 


11. 수십 년이 흘러 미디어 환경이 급변한 지금까지도 현실이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현실의 가장 솔직한 속내인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기사에서 정치인과 연예인과 범죄자의 잘잘못을 따지고 꾸짖고 비난하기 앞서 우리 저마다가 고립된 채로 분노하고 소리지르고 싶어하고 그래서 그 타겟이 필요하며 미디어는 열심히 그 타겟들을 공급해주며 분노하고 소리지르는 조회수, 댓글에 내심 환호한다는 이 근원적인 현실을 적어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장면일테니! 차라리 솔직하게 사람들 가슴마다 켜켜이 쌓인 소리와 분노를 창문 바깥으로 시원하게 쏟아내고 다시 냉정하고 침착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마 미디어는 내심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친 짓거리는 관두고 냉정한 척 침착한 척 시민사회 정의를 점잖은 목소리로 떠들어대며 정치인과 연예인과 범죄자 그밖에도 타겟이 될만한 것들은 뭐든 찾아내서 우리 눈앞에 들이대는 것이다. 매일매일 열심히 부지런히 우리가 늘 그래왔듯... 


12. 그밖에도 <네트워크>에는 뭔가 아연한 심정으로 응시하게 되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그것은 그 영화가 아직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우리가 우리들이 처한 현실에 솔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입술을 꾹 다문 채 발설되지 못한 소리와 분노를 저마다의 가슴에 켜켜이 쌓아간다. 그러다 문득 스마트폰의 뉴스나 기사를 발견하고 이 모든 게 무엇 때문이고 누구 때문일 거라며 대상을 특정화하게 된다. 미디어는 환호한다. 시스템은 굴러간다. 네트워크는 영원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인의 향기 / 형사 서피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