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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Mar 05. 2021

<냠냠> 좀비, 크랜베리스

라스 다모아쥬, 2019


 여친의 가슴이 F라는 사실은 그 남친의 특정만족도를 A+에 가깝게 끌어올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무겁고 허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 남자들은 당연하고 여자들까지 말이다. 결국 거기에 진절머리가 난 그녀는 남친이랑 병원에 가서 가슴을 F에서 B로 줄이기로 한다. 


 B?

 F에서 B?

 거기까지 이 영화 <냠냠>을 봤을 때 좀 뭐랄까? 영화 시작부터 주인공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을 저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슴이 꼭 커야한다는 건 아니다. 여친이 B인데 F로 확대하겠다면 그거야말로 별로였을 것이다. 어쨌든 몸에 칼을 들이대는 자체가 별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불편하다 하니 줄이긴 줄여야겠고 그래도 갑작스럽게 F에서 B라니...

 뭐 가슴축소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좀비영화니까 좀비가 가장 중요하겠지. 

 그래도 장르영화 속 세계에 한정하자면 그 세계에선 좀비보다는 가슴축소가 훨씬 특별한 사건처럼 느껴진다.

 좀비는... 아직도 좀비라는 소재에 뭐 특별한 구석이 남아있을까? 


 가슴을 확대하고 가슴을 축소하고 

 음경을 확대하고 음경을 축소할... 리는 없을 거고 아무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와 존엄과 편리함을 위해 신체조건을 바꿔주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역시 신체가 훼손된 좀비들과 역시 신체가 훼손되어가는 생존자들의 분투가 펼쳐진다. 

 그러니까 아주 특별한 설정이나 연출은 아닌 평범한 좀비물이고 고어한 장면들이 잦은 한편 약간의 코미디가 섞여 있기에 잔인함과 가벼움을 함께 소화하는 관객에게 어울리는 영화일 것 같다. 

 킬링타임으로 적합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가 제대로 킬링타임의 역할을 해내는 것도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심각한 생각 없이 영화에 빠져들어 잠시 현실을 잊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녹록치 않게 별 같잖은 의미부여로 별 같잖은 이야기와 인물을 은근슬쩍 포장하는 장르영화들도 흔하기 때문이다. 

 <냠냠>이 그런 경우는 아니라고 본다. 성형외과 병원이라는 공간에 배치된 좀비라는 소재가 약간의 비판적 시선을 드러낼 순 있어도 원래 좀비라는 소재 자체에 인간성에 대한 신랄함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그 신랄한 의미를 강조하려 들지 않고 그래서 의미의 과잉에 빠져들지 않는다. 고로 어떤 관객에겐 뭐야, 대단할 것 없는 영화네 싶을 수 있지만 또 어떤 관객에겐 그 대단한 걸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 장점일 것이다.  

 대신 <냠냠>은 주어진 상황과 각각의 캐릭터와 그때그때 캐릭터마다 상황을 헤쳐나가는 이야기의 가능성에 충실한 편이다. 그래서 중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영화보는 맛이 붙는다. 장르영화임에도 통일된 컨셉과 주제에 치중해 중후반으로 갈수록 영화 밖을 의식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영화 안으로 꾸준하게 조금씩이라도 관객들을 끌어오는 힘이 있다. 

 이 정도면 스포일러는 없이 그럭저럭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한 것 같다. 


 영화와 상관없는 시덥잖은 얘기 하나만 덧붙이자. 

 유튜브에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라고... 유명하니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BTS도 나왔다더라) 나도 이따금 봐왔는데 작년이었나 제작년이었나 거기서 '크랜베리스'의 공연을 시청했다. 아일랜드 락밴드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것 같다.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번안해서 부른 노래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다 보고 나서 댓글을 훑어보는데 거기 리드싱어의 이름(돌로레스 뭐였는데...) 옆에 R.I.P.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2018년 1월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뒤늦게 알게 된 것도 정말 한참 뒤였을 것이다. 

 그 후 크랜베리스의 영상을 몇 개 찾아봤는데 아래 링크한 대규모 공연이 맘에 들었다.   

 '좀비'라는 노래를 무대에서 열창하는 그녀 눈 앞에는 말 그대로 좀비떼처럼 와글와글 모인 군중들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노래부르는 그녀는 물론이고 그녀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그 많은 사람들 누구도 서로를 좀비처럼 무서워하거나 혐오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그냥 함께 노래부른다. 그 노래에 빠져들어서, 그 노래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In your head, in your head

 당신들의 머릿속에 

 Zombie, zombie, zombie-ie-ie

 좀비가 있을 거라고 외친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https://youtu.be/8MuhFxaT7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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