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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Nov 02. 2016

전통 미디어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려면

“All the news that fit to print(인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들)” 뉴욕타임스 1면 왼쪽 상단에 쓰인 이 글귀에는 뉴욕타임스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자신들이 인쇄하는 뉴스는 중요하다는 강력한 믿음. 이처럼 전통 언론이 지닌 미덕 중 하나는 ‘뉴스 가치(news values)’의 선별이다. 당대 사회에 필요한 아젠다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의 토론을 끌어내는 것은 민주주의의 동력이 된다. 언론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자연스레 편집방식을 통해 노출됐다. 기존의 신문은 1면 배치로, 방송뉴스는 방송 순서로 뉴스가치를 표현했다. 


하지만 분산 미디어 환경에서는 뉴스 가치의 전파가 불가능하다. 온라인에서조차 뉴스 구성 및 편집이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로이터 통신의 2015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데스크톱과 모바일에서 뉴스 소비의 시작점으로서 ‘뉴스 브랜드 직접 방문’의 비중이 작거나 감소하고 있다. 독자들은 철저하게 기사를 낱개 단위로 소비하고 있으며, 뉴스 소비의 비선형성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전통 미디어의 위기는 곧 저널리즘의 위기이며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제 독자들은 신문을 사거나 TV를 트는 것처럼 뉴스를 찾지 않고 뉴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독자들에게 가닿기 위한 미디어의 경쟁은 자극적인 스내커블 콘텐츠의 강화로 이어졌다.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거 CEO 마티아스 되프너의 경고는 허황되지 않다. 그는 전통의 콘텐츠 생산자들이 사라지고 나면, 사용자에 의해 생산된 콘텐츠와 상업적 이해에 따라 만들어진 전문적인 정보만이 넘쳐나는 일종의 독점적 체제가 형성될 것이고 소문과 사실이 뒤섞인 혼재 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통 미디어의 혁신이 절실한 이유다. 저널리즘의 깊이, 뉴스 가치 판단, 현장 취재 기법 등은 전통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고, 그들이 뉴미디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의 혁신 방향은 ‘꼰대 같고’ ‘재미없지만’ ‘뉴스 가치가 뛰어난’ 기사들을 읽히게 하는 쪽이어야만 한다. 언론 혁신의 원류로 종종 찬양받는 뉴욕타임스 스노우폴의 성공이 시사하는 것은 인터랙티브 뉴스라는 형식 그 자체가 아니다. 독자들이 자칫 지루해 수 있는 탐사 보도를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읽고 몰입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전통 미디어는 어떤 기발한 기술을 도입할지 고민하기에 앞서, 저널리즘에 기반을 둔 좋은 콘텐츠를 읽히도록 하겠다는 목표부터 설정해야 한다. 


어쩌면 답은 먼 곳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전통 언론들의 선전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보라. 어떤 기술보다 전통 언론의 중량감 있는 보도가 전통 언론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전통 미디어의 가장 큰 걸림돌은 카드 뉴스를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전통 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거둬버린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전통 미디어는 자본과 인력과 시간의 한계로 뉴미디어가 할 수 없는 탐사보도를 통해 거대권력을 건드리며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전통 미디어가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우스워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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