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선정부터 난관을 겪다
독서 게이미피케이션
"왜 나는 학생들과 교실에서 책을 읽는가?"
"학생들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가?"
독서교육을 시작할 때면 언제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저 교육과정에 정해져 있기 때문인가? 책 읽기가 학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가? 고작 이 정도 이유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대체 왜 난 온갖 책을 찾아 헤매고, 매 학기마다 학생들과 읽을 책을 온 마음을 다해 고르고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욕구'라는 단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독서의 기쁨을 혼자 독식하지 않고 함께 나누고 싶다. 함께 하고 싶다. 이 즐거움에 함께 빠져들고 싶다. 제법 긴 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지내오면서 책 한 권을 통해 달라지는 학생의 모습을 보아왔다. 초반에는 정말 이해하기도, 감정 이입하기도 어려운 학생의 행동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변화하는 것도 경험했다. 책 속 한 줄이 내가 건넨 무수한 교육 활동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시간도 있었다.
책 한 권은 종이로 된 몇 백 그램의 물성에 지나지 않지만, 그 책 한 권이 학생에게, 그리고 학생과 나 사이의 관계에 주는 힘이 크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다. 아마 이 땅의 많은 선생님들이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는 이유도 나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상황을 마주했다. 보통 독서 수업 첫 시간에는 학교도서관 이용 방법과 청구 기호 읽는 방법을 익힌다. 이후에는 학교도서관에 있는 목록을 활용하여 단계별로 읽기 수준에 따른 도서 목록 세 장을 보물지도처럼 들고 자유롭게 한 차시 동안 직접 책을 골라와서 읽는다. 보물지도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건네기 위한 용도일 뿐, 학생들은 학교도서관 안에서 원하는 책을 선택할 수 있다. 책 읽기가 습관화되어 있지 않고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 학생들도 대부분 책 고르기 활동에 곧잘 참여한다.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기도 하고, 선생님의 손을 이끌고 가서 책을 권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통은 한 시간 안에 한 권씩은 골라서 자리에 앉는다.
그 속에 세 시간이 넘게 흐르도록 책을 선택하지 못한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학생 A는 절대 어떤 책도 손에 들지 않겠다고, 도서관 바닥에 드러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가 회유해도 내내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아서 정말 진땀을 흘렸다. 학생 B는 도서관 서가 한 곳에 머물러선 계속 망설이며 책을 손에 들지 못했다. 다가가서 질문해도 계속 고개를 저으며 책 고르기를 힘들어했다. 학생 C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도서관 문 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힘들어해서 계속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나중에 학생 한 명씩 개별적으로 말을 걸었다. 수업 시간을 넘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만났다. 세 번째 수업이 끝난 날 점심시간, 학생 B와 도서관 안을 함께 걸었다.
"이 책은 어떨까? 길이가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SF소설인데 내용도 재밌었어." 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책은 어때? 표지가 정말 예쁘지? 이건 선배들도 잘 읽었는데, 청소년 소설을 짧은 단편으로 실어놓은 거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거야." 학생은 역시나 고개를 저었다. 학생은 개인적인 상황으로 평소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도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고, 질문에 눈만 깜빡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을 뿐 내내 말문을 닫고 있다. 아예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인지 물어도 그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만사천 권이 넘는 책의 양이 무색할 만큼.
정말 궁금했다. 독서 수준에 맞는 책을 찾기가 어려워서일까? 마음에 드는 책이 도서관에 없어서일까? 아니면 책 읽기 자체가 싫은 것일까? 학생의 마음속을 온전히 알 수 없어 고민되었다. 담임선생님과 고민을 나누고, 학생의 평소 관심사를 여쭈었다. 그랬더니 학생이 평소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게임을 다룬 책을 권해보자. 분량이 길지 않으면서 프로게이머의 현실적인 고민을 담은 책 한 권을 건넸다. 게이머의 모습이 귀여운 일러스트로 그려진 표지의 책을 건네며 부디 이 책이 학생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기를 바랐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