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언제나 캔디일 필요는 없다.
문득 울고 싶은 날이 있다. 원래도 내 마음은 머리보다 빠른데, 이런 날은 머리가 좇아갈 새도 주지 않고 마음 혼자 저 멀리 달려가 버린 그런 날이다. ‘그냥’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날. 바람도 쓸쓸하고, 노을도 아련하고, 하하호호 웃음소리도 공허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울적함에 한없이 이불속으로만 들어가게 되는 날.
가끔, 아주 가끔은 머리가 마음의 속도를 역전하기도 한다. 차분하고 냉철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나면, 괜찮은 줄 알았던 마음이 툭 터져버리는 그런 날도 있다. 누군가와 싸웠을 때,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았을 때, 누군가와 안녕을 말했을 때. 비교적 명확한 이유가 있는 그런 날.
이유 모르게 울고 싶은 날, 혹은 울고 싶은 이유가 있는 날. 슬픔은 우리 곁을 찾아온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각각의 눈물주머니를 갖고 산다. 그 주머니에 담긴 눈물을 모두 흘려보내야 비로소 감정이 해소되며, ‘다 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머니가 큰 사람은 그만큼 많이 울게 되고, 작은 주머니를 가진 사람은 조금만 울어도 금방 회복된다. 울다가 아무 말도 못 한 기억, 서러움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던 기억,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차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기억. 이런 기억이 많은 나는 필히 커다란 눈물주머니를 가졌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주머니에 담긴 눈물을 다 흘려보내야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나는 울고 싶은 만큼 울어야 그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여도 충분히 울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을 참지 않는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고장 난 수도꼭지 마냥 계속 울곤 한다. 그렇다. 나는 울보다. (파워 당당)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우리는 눈물을 금기시하는 세상 속에서 산다. 나약한 사람,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 감정적인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긍정의 아이콘인 캔디는 울면 '바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불필요한 감정은 없다. 눈물이 난다는 건 내 마음이 무언가 신호를 보낸다는 뜻이다. 슬픔과 우울에 잠식당하는 건 좋지 않지만, 반드시 기쁨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와 과학자들에 따르면 눈물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눈물을 흘릴수록 혈압과 심박수가 낮아지고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또 오랜 시간 눈물을 흘리면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까 눈물이 나는 어느 날에는 그냥 울어버릴 일이다. 그리고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
늘 재미있는 얘기만 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생에는 반드시 희로애락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슬프기도, 내일은 친구가 슬프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한 날, 그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면, 울지 말라는 말 대신 잔뜩 쌓인 휴지를 건네는 사람이고 싶다.
어쩐지 울고 싶은 날에는 마음껏 울어버리라고. 그렇게 툭툭 털고 일어나 버리라고. 힘이 나지 않을 때는 억지로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퉁퉁 부은 눈이 엉망이어도, 그냥 그 모습 그대로여도 된다고. 우울할 땐 우울해해도 된다고. 그냥. 한참을 그렇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을 만큼 울고 나면, 초콜릿 하나 건네주는 사람.
슬픈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괜찮다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껏 슬픔을 드러내도록 잘 들어주고, 충분히 슬퍼하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다.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