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백수 라이프 기록
긴 기다림 끝에 이직을 했다. 장장 반년에 걸친 여정이었다. 경력으로 이직한다는 건 적합한 타이밍과 운과 능력이라는 3박자가 맞아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 날들이었다.
그리고 퇴사를 했다. 4년 3개월. 인턴기간까지 포함하면 4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낸 회사와 안녕을
고했다. 사직서를 내는 그 순간에도, 송별회를 하는 순간에도, 인수인계서를 만드는 순간에도, 각 부서를 돌며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던. 그런데 정말 마지막 순간. 짐을 챙겨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회사 문을 나서는 그 순간에는 왈칵 울음이 터졌다. 정말 잘 참았는데. 인사를 돌 때 얼른 울라는 농담에도 웃으며 가겠다며 당차게 말했었는데. 마지막까지 나를 보고 손 흔들어주는 동료들을 보니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배웅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어딜 가도 잘할 거야.
축하하고, 늘 응원한다.
햇살이 너무나 따뜻했고 선선한 바람마저 완벽했던 5월의 어느 날, 나는 그렇게 내 삶의 일부였던 첫 직장을 그만뒀다.
그러나 첫 퇴사의 어색함도 잠시. 어쩌다 보니 출근일이 미뤄졌고, 어쩌다 보니 3주라는 시간이 생겼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3 때 대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순간 이후 처음으로 갖게 된 (장기간의)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발리로 여행을 다녀왔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도 했으며, 친구들을 만나고, 제주에 훌쩍 다녀오기도 했다. 나름대로 알차게 보냈지만 돌이켜보니 이상적인 백수 라이프와 실제 라이프 사이의 간극은 꽤나 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너무나 행복했던 3주간의 기록.
처음의 목표는 그랬다
출근시간 맞춰 일어나 책/신문 읽기
최대한 낮잠 자지 않기
실무에 도움되는 강의 듣기
영어/중국어 꾸준히 공부하기
카페/갤러리 가기
부지런히 여행 다니기
실상은 이랬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햇살 만끽하며 침대 속에서 꾸물대기
동네 마트에서 장 보고 요리하기
책 읽겠다 선언하고 잠들기
1일 1 낮잠
다양한 종류의 드라마 꼬박꼬박 본방사수
피아노 치기(새로운 연주곡 완곡하기)
집순이 모드 발동
그리고 막연히 상상하던 퇴사 후 삶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새롭게 깨달은 사실들이 있다.
백수라고 해서 돈을 적게 쓰지 않는다. 오히려 쇼핑할 시간이 많아서 소비가 더 늘었다. (다음 달 카드값이 걱정된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이라는 명분의 지출은 꽤나 컸고 ^^ 끝이 없다.
집에서 숨만 쉬어도 배꼽시계는 꼬박꼬박 알람을 보낸다. 삼시 세 끼를 제 때 챙겨 먹는 일은 힘들다.
밥 먹고 치우고, 요리하고 밥 먹고 치우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자매품으로는 빨래가 있다.
5월의 마지막 날을 끝으로 뜻밖의 백수 라이프는 종료됐다. 새로운 일들이 시작될 6월의 첫날. 무작정 이불속에 머무르고 싶은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아직 글로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많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갈지 고민이 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고민하며 우물쭈물 대기보다는 일단 몸을 던져보는 게 훨씬 더 소득이 크다는 것.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엔 이루게 되어 있다는 것.
새 출발선 앞에 서니 기분 좋은 긴장감이 몰려온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이번에도 최선을 다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