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침공이 아름다웠던 이유
원 제목은 ‘Arrival' 인 출현을 뜻하는 말로 외계인의 지구 출현을 다룬 영화다. 외계 비행물체의 모습은 다른 외계인 우주선과 다른 모습이라 낯설다. 자주 영화에 등장했던 반원에 불빛을 가진 우주선이 아닌 삭막한 회색의 공예품 같은 모양새로 등장해 흥미를 유발한다
외계 생명체의 출현
거대 외계 비행물체가 세계 각지 12곳에 출현한다.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물체를 본 극 중 인간들은 소스라치며 놀라지만 정작 놀라게 한 외계인들은 멀뚱히 공중에 부유하기만 한다.
그 어떤 공격도 신호도 보내지 않는 그들에 지구에 등장한 의중이 궁금해진다.
세계 정부는 그들의 침공 목적을 알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는데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 그리고 물리학자 이안도 현장 연구에 참여한다.
자욱한 안개 위에 먹물을 뿌린 듯한 동그란 표의문자가 그려진다. 이 진귀한 모양은 외계 생명체가 뿜어낸 그들의 언어였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언어와 차원이 다른 언어인 만큼 대화에 이르기까지 연구하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루이스와 이안의 노력 끝에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며 소통에 성공한다.
그러다 외계인과 소통이라는 감동적인 행위 중에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외계 생명체라 말한 특정 단어 때문이었다. ‘무기' 또는 '도구'를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를 무기로 받아들인 인간은 즉시 전쟁태세에 돌입한다. 총공의 정비를 하는 중국은 다른 정부와 모든 소통을 차단한다. 그러나 모두가 죽을지도 모를 일촉즉발한 사태에 루이스는 주변에 만류에도 불가사이한 존재를 향해 뛰어간다. 외계인을 향한 중국의 공격에 그녀 또한 같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녀의 무모한 행동의 이유는 언어 너머의 감정. 서로 느낌으로 소통하며 보낸 시간에서 얻은 믿음과 애정에 있을지도.
'언어'라는 선물
그들 사이를 가로막던 유리벽을 넘어서 외계인에게 다가서는 루이스. 그들은 루이스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선물하는데, 외계인이 인간에게 언어를 선물한다는 설정이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고차원적인 언어 선물은 언어에 따라 사고체계가 달라진다는 연구를 모티브 했다고 한다.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체계가 다르고 또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고 하는데, 특정 감정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면 그 감정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국가마다 가진 언어 특성에 따라 국민의 감정 정서가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언어에 따라 특정 감정을 느끼는 데에 차이가 있다니! 언어가 이토록 인간의 정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외계 생명체의 언어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해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언어를 선물 받은 루이스도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이제는 완벽하게 그들과 소통하며 외계인의 침공 목적은 3000년 후 인간에게 도움받기 위해 온 것임을 알게 된다. 인간이 오해했던 그들의 말인 '무기'는 곧 언어의 도구, 즉 미래를 볼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였다.
미래를 아는 인간의 선택
진정한 소통으로 얻게 된 선물. 과거, 미래를 보는 언어를 가진 루이스는 중국 참모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을 막는다. "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과부와 고아만 있을 뿐"이라는 그의 죽기 직전 아내가 한 말을 전하며 중국 참모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이스는 외계 생명체와 접촉하는 내내 머릿속에 나타난 의문의 소녀의 정체도 누군지 알게 된다.
바로 그녀가 이완 사이에 낳게 될 딸 '한나'로 성인이 미처 되기 전에 희귀병으로 죽다는 사실도 예지 한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이안과 사랑을 시작하며 미래에 맞이하게 될 고통을 선택한다. 이제 딸아이는 태어날 것이고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며 이안은 모든 사실을 알고도 결혼한 그녀를 원망하며 떠날 것이다. 그녀를 향한 준비된 아픔은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불행은 정해져 있고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다면? 누구나 괴로운 미래는 선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가 고행길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불현듯 안개처럼 나타난 한나라는 소녀를 사랑한다는 감각. 모성애를 느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아픈 선택을 내렸지 않았을까 싶다.
성숙한 침공
경이로운 외계 생명체의 출현, 안개로 뒤덮인 영상화면, 침묵처럼 무겁게 추락하는 요한 요한손의 음악, 에이미 아담스(루이스)의 매혹적인 슬픈 눈동자. 이 모든 장치들로 영화는 묵직한 울림을 안겨주며 쓸쓸한 감상을 남긴다. 어두운 색채로 도배된 전시회를 다녀온 듯 눈 감으면 한 장면 한 장면이 예술작품처럼 떠오른다.
외계 생명체들이 인간에게 언어를 선물한다는 설정은 순수하고도 아름다웠다. 인간을 무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지능과 물리적 힘이 충분해 보임에도 소통을 통해 인간과 도움을 주고받고자 했다. 공포심에 소통부터 차단하고 익숙한 방식인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인간보다 수천 년 이상은 진화한 성숙한 존재들. 그들의 지구 침공은 기이하고도 아름다웠다.
박진감 넘치는 여타 외계인 침공 영화와 달리 무겁고 고요한 분위기가 특징이 된다. 느린 호흡으로 정교한 영상에 공들이는 드니 빌뇌브 감독 그리고 예민한 감각의 웅장한 음악을 만드는 요한 요한손 음악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마치 영원한 안개 같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시대에 언어, 소통, 화합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교훈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마음에서 깊은 울림이 꽃피웠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어떤 가치가 영화 안에 숨어 있으니 잘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