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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Dec 23. 2018

새콤달콤이 아니라 달콤새콤

과일 스무디


엄마는 티비에서 오렌지 주스 광고를 보면 신 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고였다. 마치 본인이 신 오렌지를 먹은 듯 한쪽 눈까지 찌푸리며 침을 삼키고 그 광고를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꼭 나를 쳐다보며 "보기만 해도 시다"라고 말했다. 왠지 엄마가 느끼고 있는 걸 같이 경험해야 할 것만 같아 나도 신 걸 먹은 듯이 찌그러진 얼굴을 만들어 엄마한테 보여줬다.

 "아우 셔~."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은근 흐뭇해했다. "우리 딸, 엄마 닮아서 신 거 못 먹겠네." 나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하며 흐뭇해하는 게 좋았다. 뭔가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땐 빨리 커서 엄마 같은 여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엄마가 좋다는 건 다 좋아했고 싫다는 건 나도 멀리했다. 그렇게 어느새 나 자신을 엄마처럼 신 걸 잘 못 먹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 맛에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달콤새콤

대부분의 과일엔 신 맛이 난다. 나에겐 귤도 시고 딸기도 시고 사과도 시고 배도 시고 포도도 시다. 그래서 바나나나 홍시, 골드키위 같은 당도가 엄청 높은 과일만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평생 바나나랑 골드키위만 먹고 살 순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셔서 도전해볼 엄두가 안나는 과일들도 많지만 새빨갛게 익어 윤기가 도는 딸기를 보면 본능적으로 입 속에 집어넣고 싶게 한다. 과즙 터지는 오렌지 주스 광고는 셔서 괴로워할 걸 알지만 껍질을 깐 오렌지를 사과 베어 먹듯 한 입에 베어 먹고 싶게 만든다. 

내가 신 과일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신맛에 단맛을 더해주는 것이다. 시큼한 맛이 나는 토마토 위에 설탕을 뿌려주거나 귤을 얇게 썰어 말린 후 녹인 초콜릿에 찍어 먹곤 한다. 신맛이 찌릿찌릿하게 느껴지지만 단맛과 함께 섞이면서 달콤새콤(새콤달콤이 아니라 달콤새콤)해 진다.

그중 가장 자주 하는 방법은 신 과일과 단 과일로 스무디를 만드는 것. 바나나랑 딸기를 칼로 총총 잘라서 블랜더에 넣고 두유를 부어 뚜껑을 닫는다. 버튼을 누르면 블랜더는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도록 내용물들을 날카로운 칼날로 다 갈아 버린다. 노랗고 빨갛던 과일들이 힛뿌연 두유와 섞여 탁한 분홍색으로 변한다딸기의 신맛은 온데간데 없고 내 입속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스무디로 채워진다. 단맛은 신맛을 이기는 것일까.


자주 해 먹는 과일 스무디 조합

딸기 / 토마토 / 얼음

바나나 / 두유 

딸기 / 바나나 / 두유

토마토 / 설탕 / 얼음

배 / 바나나 / 딸기 / 얼음

오렌지 / 딸기 / 골드 키위 / 얼음

땅콩버터 / 바나나 / 두유


과일을 많이 먹는 식습관을 가지지 못한 탓에 먹는 과일의 범위기 넓지 않다. 재료를 조금 더 확장을 한다면 멜론, 수박, 참외, 포도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렇게 얘길 하면 과일을 싫어하는 사람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고 신맛에 민감해서 마치 다가가진 못하고 멀리서 짝사랑하는 상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더 가깝다. 과수원에서 포도나 귤을 박스로 사다 놓고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서 먹어치우는 판타지가 있지만 신맛 나는 과일을 박스채로 사는 건 내 인생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티비에서 임신한 여성들이 신맛 나는 과일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들을 종종 보았는데 과연 나중에 내가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신 과일이 당기는 날이 올까 싶다. 아마 초콜렛을 듬뿍 바른 달콤새콤한 딸기나 귤을 먹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입엔 침이 한가득 고여있다.












제가 그린 그림을 올려놓은 제 인스타그램에도 한번 놀러 오세요 :)

https://instagram.com/foodiecherry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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