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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Jul 29. 2023

뭔가 쩌는 것

2023.7.29.

언제나 '뭔가 쩌는 거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적당히 좋은 거 말고, 쩌는 거. 기존의 관성을 깨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그들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미친 듯이 엄청난 거. 내가 만들고 싶은 그 뭔가는 기본적으로는 '기존에 존재하던 콘텐츠과 다른 것'으로만 정의되었기 때문에 늘 구체적인 상이 없는 '썸띵'이었다. 종종 그 썸띵에 부합하는 작업을 만날 때마다 '뭔가'가 '저런 거!'로 바뀌곤 했고... 


지금까지 쭉 '뭔가'와 '저런 거'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살아왔다.


지금 회사에 온 이후로도 한동안은 그 '뭔가'에 닿고 싶어서 정신없이 지내 왔다.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근육이 자라는 느낌이 들어서 신이 났고 갈 길이 멀어서 딴 데를 볼 여유가 없었다.


다만 요즘 조금 속도가 느려진 것 같고, 속도가 느려지니까 생각이 많아졌는데... 잘 생각해 보니까 결국 하고 싶은 건 변하지 않았다. 그냥 뭔가 쩌는 콘텐츠. 일이 조금 익숙해졌다고 고이지 말고 지금 수준에서 만들어볼 수 있는 더 미친 기획과 퀄리티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직업인으로서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여러 이유로 꾸준히 안타를 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야 홈런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거 자체는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에는 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목표는 안타 그 자체가 아니라 홈런인데. 




요즘 자주 떠올리는 웹툰 '정년이' 116화와 117화의 장면들.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아는 옥경이가 너무 멋있고 자유로워 보여서 자주 생각한다.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지 않기. 내가 뭘 원하는지, 나에게 뭐가 필요 없는지 정확하게 알기.


116화, 옥경과 혜랑의 대화.


"왜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어. 왜 여길 떠나겠다는 거야."

"국극이 재미없어."

"재미? 종로 깡패 새끼들. 다른 국극단엔 술상 내와라, 표 내놔라 난장판을 쳐도 매란에는 발끝도 못 걸쳤지. 아무리 많은 국극단이 생겨도 시공관은 우리 거였고, 아무도 네 아편쟁이 과거를 대서특필 못했어. 왜? 바로 나. 내 덕분이야. 고대일을 데려오고, 돈 빼돌려서 비자금 만들고, 네 뒤를 봐준 내 덕분에! 그런데 뭐? 재미?"

"네가 도앵이를 내쫓았어. 이제 국극에는 하고 싶은 배역도, 보고 싶은 이야기도 없어."

"너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무대에 서고 싶었어.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우리가 함께 있으면 난 연기를 못하고 넌 네 삶을 살 수 없어. 안녕."


117화, 옥경과 도앵의 대화.


"국극은 은퇴할 거야."

"안 돼. 지금은 안 돼. 네가 나가면 국극은 끝이야. 1년만 기다려줘. 아니, 6개월. 아편 소동이 가라앉을 때까지만이라도."

"넌 요새 뭐해? 2년이나 지났는데 아무 소식이 없네. 국극 그만 둔 거야?"

"다 사, 사정이 있어서..."

"난 네 왕자만 기다렸는데. 널 처음 본 이후로 지금까지 쭉."

"하루아침에 소리가 되는 줄 알아?"

"왜 소리를 해? 도앵이 너는 똑똑한데. 뭐든 잘 하면서. 보여줄 생각 없구나. 역시 국극은 그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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