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웹소설은 상업 소설이다. 그렇다고 순문학이 비상업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도 돈을 받고 팔리는 물질이다. 아무튼 글을 쓰다보면 두 갈래 길에 놓인다.
이걸 써도 될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내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할 가치가 있을까?
잘못되면?
아무도 몰라주면?
그럼.
의미 없는 거 아닐까?
투고에 실패하면, 공모전에 떨어지면,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사주지 않으면.
이런 마음들이 날 낭떠러지로 밀어낸다.
그 밑에는 두 개가 자리잡고 있다. 자기만족과 수익. 넌 어디로 뛰어내릴래? 이렇게 물어본다.
18. 자기만족과 수익. 둘 중 내마음은 뭘까?
쓰고 싶은 게 많을 때는 어떻게 할까. 이 제목으로 이미 글을 썼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요새 다시 내 화두에 올랐었다. 이번에는 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요새 책 아티스트 웨이를 따라 12주 과정을 거치고 있다. 현재 5주차인가 6주차로 한가지 바뀐 게 있다. 번역본이라 조금 어색한 용어지만 '동시성'을 믿어보고 있다. 이는 내가 무언가를 바랄 때 갑자기 나타난 기회같은 것이다.
내게 그 기회는 아는 지인이 현직 5년차 남성향 웹소설 작가라는 것이다. 여자인 내가 남성향 웹소설에 처음 발을 내밀 때 가장 먼저 도와준 사람이다. 로맨스가 성향에 안 맞아서 털고 나올 때도 그저 묵묵히 지켜봐줬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 아는 작가 지인은 없다.
그렇지만 무려 작가가 내 옆에 있는데도 그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요즘 깜박 있고 있었다. 그걸 발견하고 오늘 후다닥 그에게 물어봤다.
"글 소재가 너무 많은데 다 쓸 시간은 없어요. 이럴 때는 어쩌죠?"
"반응이 올 때까지 웹소설을 연재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럴 때는 어쩌죠?"
내가 하루키한테, 몽고메리한테, 그리고 또 누구더라 아무튼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이었다. 애써 더듬고 더듬어서 답을 찾아낸 것 같았는데 그 답은 이미 상해버렸다. 난 더 신선한 답을 원한다.
그건 그때의 나한테나 통했던 말이고. 난 무려 몇 달이나 더 발전된 (마치 계속 발전하는 AI처럼) 버전 2023년 8월의 나라고.
답을 찾아라. 나 자신.
그래서 쾌속으로 작가에게 물어봤더니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자기만족이 목적인가요, 수익이 목적인가요?"
그 말을 본 순간 비실비실 웃고 말았다. 너무 속마음을 들켰다. 자기만족과 수익. 자기만족이 되는데 수익도 따라오면 안 되는 걸까? 정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건가.
"수익이 목적이라면 시장에 조금씩 물건을 내밀고 통하는 걸 팔아야 할 것이고, 자기만족이라면 끝까지 쓰는 게 중요하겠죠.
글 소재가 너무 많으면 제일 좋은 거 3개 추려서 그거 한달씩 써서 올려봐요."
그의 말을 듣고 눈을 끔벅 감았다가 떴다. 되게 천재적이다.
그렇게 노트에 소재들을 정리했다. 정리하고 보니 2028년까지는 꼭 살아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았다. 누가 그랬는데 작가는 쓸 글이 떨어지면 그 생명이 다한 거라고 했다. 이제 내 글이 어디에 속하는지 좀 알겠다, 싶으면 그 작가는 그대로 끝이라고. 그냥 여기저기 바람에 굴러다니며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고 '젠장. 무슨 사람이 이렇게 변덕쟁이야.'라고 속으로 중얼중얼거리며 써야 그게 재능인 게 아닐까.
쓸 글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쓸 글이 5개 정도라면 이제 도전할 이유도 없다. 쓸 이야기가 없으니까. 물론 무엇이든 장단점이 존재하기에 5개의 글을 완결을 내서 수익을 낼 수도 있겠지.
꾸준히 쓰지 못한다는 건 끈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르게 볼 수도 있다.
확실하지 않은 일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내 결단력일 수도 있다. 이건 책 불렛저널에서 나온건데, 요가 강사 이야기가 내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요가를 좋아하는 세 명의 여자가 있다. 한 명은 1년만에 리조트에서 요가 강사로 일하다가 돌아왔고 다른 한 명도 그러다가 돌아왔지만 어떤 한 명은 1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건 그녀가 간잽질을 했기 때문이다. 말이 좀 이상한데 그러니까 1년 동안 이것만 할 거야! 이런 게 아니라 이번 휴가에는 요가 수업을 한 번 맡아서 가르쳐볼까 하고 갔다 오고.
다음 휴가에는 리조트를 갔다올까 하고 갔다가.
"퉤. 이건 내 상상이랑 다르잖아. 이거 아냐."
하고 다시 돌아왔다가.
"그럼 이 방향으로 가볼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뭐였더라 요가 리트릿 센터에 들어가서 적성을 발견하고 자기의 리트릿 센터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하던 모든 10~15화의 연재들이 '끈기 약한 나'로 보이지 않고 '방향을 찾고 있는 나'로 보이기 시작했다.
방향은 중요하다. 난 작가가 되고 싶지만 글 쓰다가 슬럼프가 온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남들은 다 내 글을 보고 행복한데 난 스트레스로 너무 힘든 작가가 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떤지.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며 분석을 해보는 거다.
꾸준한 연재가 아닌 15화만 내놓고 사라져버리는 작가가 될지라도 뒤에서는 열심히 이번에 얻은 수확을 노트에 적는 성실한 모험가가 될 것이다.
아티스트웨이에서 알려주는 건데, 이 회고가 굉장히 강력하다.
1. 새로 알게 된 내 장단점
2. 잘 되고 있는 것. 잘 안 되고 있는 것
3. 더 잘할 수 있는 것
4. 인생에 더해진 가치
이번에 10화 정도까지 연재한 내 웹소설은 아픈 손가락이다. 반응도 좋고 더 쓰고 싶었는데 도저히 글이 안 나왔다. 이렇게 알게 된 내 장단점은 다음과 같다.
1. 장점: 난 생각보다 유쾌한 글을 잘 쓴다. 단점: 난 고증에 약하다
2. 잘 되고 있는 것: 계속 필력이 늘고 있다. 잘 안 되고 있는 것: 댓글 멘탈관리가 안된다.
3. 더 잘 할 수 있는 것: 주인공이 좀 더 호감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4. 인생에 더해진 가치: 난 계속 발전하고 있다. 내가 몰랐던 것일뿐, 이건 팩트다.
그래서 내 마음은 뭐냐고?
자기만족과 수익 중에서?
수익.
그런데 한 번 보시라.
회고하고 도전해보는 이 모든 것은 다 날 위해 하는 거다.
내가 쓰고 싶은 소재를 쓴다. 그 중에서 제일 대중적인 걸 걸러본다.
회고도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을 찾기 위해 한다.
그럼 결국 이건 자기만족이 아닐까?
난 돈을 벌고 싶지만 돈이 날 지배하면서까지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럴꺼면 (매번 생각하지만) 글을 왜 쓰냐. 알바하지.
모순적이지만 자기만족으로 썼는데 수익도 벌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순서를 뒤집어도 마음은 같다.
수익을 벌지만 자기만족이다.
이것만큼 깔끔하고 멋있는 게 어디있을까.
요약: 자기만족과 수익, 둘 중에 내 마음은 뭘까?
- 수익이라면 자꾸 찍먹한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고, 안전한 길을 두드리고 있는 자신을 응원해주자. 그리고 그 수많은 도전을 통해 찾아낸 '내게 제일 잘 맞는 것'을 토대로 서서히 변화해보자.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난 자기만족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다면 일단 지금 '다 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점검해보자. 그리고 노트에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글 소재를 먼저 적어보자. 한달에 하나씩 써보자. 써서 팔아보자. 순문학 공모전은 매달 있고 웹소설 연재칸은 언제나 올릴 수 있으며 투고도 항상 열려 있다.
기회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