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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08. 2023

수영도 못하면서 물을 좋아한다

마치 슬리데린을 사랑하는 후뿌뿌뿌 느낌


수영은 못하지만 잠수는 좋아한다. 귀가 먹먹해지는 물 밑이 좋다. 온통 파란 수영장 밑의 속내도 좋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만 좋아하는데 온통 물로 가득 차있는 수중이 좋다. 작년 겨울 나의 고삼 시절에 처음 알게 된 나의 취향이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잠수하기.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기. 난 눈도 안 좋아서 맨눈으로 보는 수영장 속은 아름답기만 하다. 둥둥 떠다닐 더러운 것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은 라식을 해서 잘 보이겠지만.


코로나로 집 밖에 못 나가던 때에 미술시간에 그렸던 그림을 기억한다. 물 속에 잠긴 내 얼굴 위로 빨간 구피들이 돌아다니는 그림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물 속에서 조용히 평화를 누렸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었다. 다시 보니 힘들었구나 싶다.


잠수.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 그런 것과 비슷한 게 독서다.


어쩌면 작년에 발견한 내 취향은 그저 고유한 나의 특성이 아닐까. 추리 소설을 침대 위에서 딱 피고 누워서 볼 때면 저절로 귀가 막히는 기분이었다. 눈으로 검은 활자를 읽으면 서서히 세상이 사라진다. 그런 단절이 좋았다.


지금도 좋아한다. 손으로 잡히는 책을 펼치고 흰 종이를 보면 느낀다. 아, 이 시간만큼은 이 책이 차지하겠구나.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이 책의 화자로 살겠구나. 이런 마음이 물처럼 차오른다.


책을 읽는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쓰는 것도 좋아한다는 건 이상하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나의 마음을 한 곳에 묶어 써내려간다.


영화도 잠수와 같다. 그 2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어제는 밀수를 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잔인했다. 물비린내와 피비린내가 함께 날 것 같은 바다. 멈추지 않는 프로펠러와 그 사이에 끝도 없이 번지는 핏물이 언젠가 엄마에게 들었던 바다와도 같았다.


그 영화 속에 나오는 바다의 모습이 좋아서 수영장을 생각했다. 책을 읽다가 잠수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 같이 엮어서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을 써보았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것도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단절되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일까? 어렸을 때의 나는 더 솔직해서 10살 때 적은 장래희망을 보면 도망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마치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처럼 말이다.


귀가 먹먹하게 물로 차는 잠수처럼, 내 앞에 수영장을 공상으로 채울 수 있는 게 소설 집필이라면.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론과 실전은 많이 다른가보다.


조용한 시간. 햇살이 물에 꺾여 번지는 공간.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물 속.

난 또 다른 수영장을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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