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 Feb 19. 2024

홍콩의 밀크티

씁쓸한 차에 익숙해져버림

왜 밀크티가 안 다냐, 라는 홍콩 밀크티를 처음 먹은 내 후기에 12년 (추정) 중국 TCK 친구가 어이 없다는 얼굴로 날 봤다.


언니 서양인이야?


이게 뭔 소리다냐 하면서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차가 왜 달아야 하냐며 그녀가 오히려 아우성을 쳤고. 난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쓴 밀크티라니. 다시는 안 시킬 거라고 다짐.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밀크티에 감겼다.


홍콩 유학 일기 (01. 새로운 아침밥 집)


돈 많이 벌면 이 언덕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할 거라는 B의 포효가 담긴 기숙사 앞 언덕. 이 언덕 때문에 항상 아침밥은 기숙사 자판기에서 해결을 했었다. 눈 뜨고 뭐 먹지 생각하다가 잠옷 위에 후드티를 입고 그냥 언덕을 내려왔다.


미식의 도시 홍콩이라지만 전혀 체감 못하겠는데. 근처에 미슐랭이 두 개가 있는 걸 보면 체감이 되긴 된다. Sun Hing 딤섬 (새벽딤섬)을 가려다가 못 찾고 로컬 홍콩 식당에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느끼고 후퇴했다. 그리고 또 맥도날드인가 절망하려던 차에 이 식당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아침부터 커피는 별로고 밀크티 먹어야지, 하며 시키고 나온 걸 딱 마신 순간. 본능적으로 같이 나온 설탕을 쳐다봤지만 넣지 않았다.


입맛이 바뀌었다. 입맛이 바뀌는 건 다른 것보다 더 확실한 것 같다. 내가 변했다는 증표. 이건 바꾸려고 해도 잘 바뀌지 않는 기본적인 설정인지라.


중국에 살며 비누맛 나는 고수를 안 먹다가 이제는 고수의 맛이 뭔지 알아버리기까지 5년.

홍콩 밀크티에 감겨버린 지난 1년.

윈동부하오를 외치다가 제 발로 언덕을 내려오기까지.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지만, 쓴 맛에도 맛이 존재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입맛에 맞을 건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내 입맛은 꾸준히 성숙해지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음. 나이와 경험에 따라 맛있는 거 스펙트럼은 계속 넓어지는 중).





매거진의 이전글 그거 중국에서 엄청 유명한 건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