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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y 17. 2024

끝내주는 여름방학

21년치 버킷리스트

*소설 형식의 수필입니다. 다짐인지, 기록인지 알 수 없지만 시작합니다.


바다는 숨을 들이켰다. 두 폐 안에 가득 차는 숨. 오랜만에 노래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한국에서 할 것들을 적어야지, 그 생각에서 시작된 터닝포인트였다. 


자연스럽게 무언가가 떠올랐다. 끝내주는 여름방학을 보내야겠다. 


그녀는 밀린 빨래 바구니를 들었다. 40분 동안 돌려지는 세탁기를 보며 다시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요즘은 옷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진다. 마녀 세탁소, 라는 소설도 생각해보았는데 써 볼 수 있을까? 6층에 도착해 그녀가 방문을 열었다. 밀린 다시 보기 동영상들 속에서 노래 영상을 다시 선택하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쌓인 부담감보다 훨씬 빨리 끝낸 설거지를 끝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룸메이트의 칸까지 침범한 반 수면상태의 이번 일주일의 흔적을 본다. 감탄과 한탄이 한데 섞여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손의 움직임이 뇌 속 뉴론의 움직임보다 더 빠르기 때문. 이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야. 슉슉.


생각하기 전에 행동해버리자. 하루 유통기한이 지난 삼겹살. 오늘 아침에 먹다 남은 요거트. 바나나 하나. 유통기한을 모르는 식빵. 꽤나 오래 방치된 양파 두 개. 햇반 두 개. 볶은 김치 2개. 콜라 한 개. 깐마오 병 하나. 참기름. 아주 조금 남은 쌀과 오래된 혼합 쌀.


한국을 언제 가더라? 5월 말에 가려면. 조금 생각하다가 13일이 남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 그 동안 아침으로 먹으려면. 계란도 있고. 아침마다 요거트와 식빵을 해먹어야겠군.


오늘 저녁은 콜라 수육이다. 생각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그녀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오후 3시쯤에 시작하는 저녁 준비라니. 말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빨리 먹는 편이 좋다. 


팬트리 식탁에 앉아 노트를 펼치고 한국에서 할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할 것이 많은 것도 특출나게 해야 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적을 게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적으면 형체화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해야 하는 걸 적기 시작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할 것이 많은 것도 특출나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책을 반납해야 하지. 학교를 다녀올까 생각이 든다. 해야 하는 게 총 몇 개가 있더라. 고심하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알림이 울린다. 건조기를 돌리기 위해 29층으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방에 들어오자 버리지 않은 쓰레기들이 보인다. 몇 주째 방치된 종이봉투에서 노트를 몇 개 골라낸다. 적는 걸 좋아하는 탓에 안 쓰고 모아둔 노트가 산처럼 쌓여있다. 작은 것부터 하자. 생각하며 그녀가 쪼그려 앉아 노트를 바닥에 쌓았다. 


조우싼. 아침은 아니지만 4층 로비에서 홍콩 현지 세큐리티가 인사를 건넸다. 문을 열며 그녀가 화답한다. 바로 옆에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위로 올라온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자는 마음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방치된 것들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조기가 끝나고 다시 내려온다. 이번 베트남 선교에 기부할 옷들을 추리고, 어제 산 새 옷들을 걸어놓는다. 무릎을 덮는 원피스를 사고 싶은데 말이지. 이미 있긴 하지만 새로운 걸로. 욕심인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생각에 덮일 마음은 없다. 곧, 오늘 입을 옷을 입고 화장을 간략하게 마친 뒤 부엌으로 들어온다. 


콜라 수육을 하며. 정확히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은 시간에 마음을 들여다본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만한 것도 많아서 숨이 차는 마음. 끝내주는 여름방학을 보내보자. 간단하게, 단순하게. 그녀는 노트에 여름방학에 되고 싶은 키워드를 적었다. 그 다음 페이지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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