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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y 26. 2024

관계의 중첩

복수의 존재 사이에 얽히고설킨 존재의 복잡함에 대하여

관계(關係) :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두 존재 사이의 관계를 논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다. 오롯이 둘 사이에 발생한 사건들의 인과가 귀결되면 상대적으로 쉬이 해결될 상황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에 셋 이상의 존재가 관여하게 되는 순간 그 복잡도는 단순한 산술적 계산 이상의 복잡도를 가지게 된다. 특히 지성을 이룩한 복수의 존재간의 갈등은 단순한 산술적 가산 이상의 갈등을 개별 존재들에게 부여한다.


A는 B와 원만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A와 C는 서로의 존재와 관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무대에 놓인 B는 A와 C의 사이에 놓인 메트로놈이 되기도, 때로는 한쪽으로 치우쳐져 다른 한쪽의 관계의 실을 끊어내버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서로 간에 쉬이 이어질 수 없을 형국에 놓이게 되는 D는 본인의 가치관, 의사, 상황에 근거한 나름의 결론을 내리겠지만, 그 답변은 시작부터 완전할 수 없는 운명에 놓인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한쪽을 놓아버리는 것과 이어져있으며, 어느 하나도 선택하지 못한다면 D는 허공에서 그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못할 헛발질을 허공에 연신 반복할 뿐일 것이다.


이와 같은 선택의 연쇄는 그 고민에 소요되는 시간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보잘것없을 결론을 선택하기를 강요받는다. 차악과 최악, 기껏해야 차선을 포함한 진창에서 구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비관적이고 수동적인 상황은 비단 그 존재의 부족함에서 기인하지 않으며, 되레 억울하다고 말하더라도 어느 하나 쉽사리 부정할 수 없을 자명하게 부당한 형국에 그 존재의 손발을 묶는다. 그렇다고 하여 그 존재가 충분히 논리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그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더라도 이는 결과론적으로는 큰 성취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면 이는 시작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상황과 상황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하지 않다. 우리는 감정과 상황, 관계의 진창에 놓이고 그 진창에서 기어코 한 순간이나마 더 살아남을 수 없는 선택지를 고르는 치욕적인 선택의 장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문드러지는 것은 관계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구태여 관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잃을 것이 없다. 거기에 투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에 희망을 걸고 일종의 낙관론적 입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이는 성공할 때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잃을 때 더 크고 뼈아프게 많은 것을 잃는다. 아쉽게도 사람의 감정은 시장경제의 큰 줄기에서 크게 빗겨나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이나마 겪은 우리는 어떤 견지를 취하는 것이 올바를 것일까? 투자의 이면엔 상실이 맞닿아있고, 무관심의 이면엔 망각이 그 등을 맞대고 있다. 어느 하나 쉽거나 안전한 선택지는 없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있다. 관계에 투자하며 평온을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안일함에 가깝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걸어야만 하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걸고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보자면 지극히도 합리적인 선택이며, 손실을 줄이고자 투자를 꺼리는 것 또한 비단 미온적이라고 욕하기보다는 본인의 의지와 의도에 합당한 선택을 내렸다고 인지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우리의 기대보단 명쾌하지 못하다. 복수의 인물 사이의 관계, 관계와 관계 사이의 중첩은 끊임없이 그 차원을 높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해본 우리가 다른 이들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득이든 실이든 자신의 견지와 의지에 따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진창을 걸어가던, 유려한 곡선의 매끄러운 궤도를 따라가던 결국 그 시발점에 있는 것이 자신의 의도에 기인한 선택이라는 사실은 그 상황 이상으로 그 선택을 내린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결국 다각도, 다방면의 고민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생각보다는 단순하다. 본인이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있는지, 그 선택의 말로를 바라보며 붕괴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결국엔 사고와 갈등의 방점이자 다음 선택의 시금석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난방향으로 뻗어나가던 사고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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