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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Apr 30. 2024

[전시 감상문] 유토피아: 노웨어, 나우 히어

나의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길

지난 '24년 4월 27일에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유토피아: 노웨어, 나우 히어> 전시에 다녀왔다. 김초엽 작가의 나름 열렬한 내적 팬으로서 얼리버드로 티켓 구매도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와 사정으로 가지 못하다가 이제야 가볼 수 있었다.


전시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공생가설>이라는 작품을 모티프 삼아 7명의 아티스트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려낸 초현실주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토리의 단순한 시각화라기보다는 김초엽 작가가 일궈낸 작품 속 세상을 7명의 아티스트 각자의 시선으로 관찰한 나름의 해석에 가까웠던 것 같다. 전시의 개괄적 해설보다는 개인적 감상의 파편에 가까울 이야기들을 아래에 남긴다.

시작하기에 앞서.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아래와 같이 명시되어 있다.

1.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2. 문학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1515년에서 1516년 사이에 영국의 모어가 지은 공상 사회 소설. 공산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假想)의 이상국을 그린 작품으로, 유럽 사상사에서 독자적인 계보를 형성하였다.


전체적인 구성 관점에서

전시장에 입장한 관람객은 유토피아로 여정을 떠나는 여행자가 되어 7개의 각기 다른 유토피아를 차례대로 방문하게 된다. 전시이자 여정의 포문을 여는 것은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일종의 출국 수속 장소이다.

관람객들은 개념적으로는 익숙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다소 생경한 풍경의 공간에서 구형 CRT 모니터를 통해 유토피아로 향하는 티켓을 발권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이미지(색, 장소, 심리)를 선택하면 그 내용이 티켓에 출력된다. 이런 체험형 요소는 관람객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잘만 활용하면 전시의 몰입도를 올려주는 좋은 수단이다.


티켓을 손에 든 관람객은 위에서 말한 7개의 유토피아로 향하게 되고, 여정의 끝에는 유토피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일종의 입국장이 이들을 반긴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유토피아를 선택하게 되고, 입국장의 PC는 유토피아로 떠나기 전의 선택과 실제로 유토피아를 보고 나서 내린 선택을 비교하여 일치 여부를 관람객에게 제시한다. 이는 관람객에게 자신의 심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면서 자연스레 전시의 내용들을 상기시키며, 그러고 나서 PC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QR코드로 관람객에게 제공하며 기억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입국장의 전광판에는 비로소 이곳까지 도달한 우리 이 여정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는지 반문한다. 그렇게 전시장을 나오게 되면서 관람객은 온전히 현실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FINALLY NOW HERE. ARE YOU READY YO END THIS JOURNEY?

위와 같이 전시를 하나의 여정길 이야기로 구성하여 시계열 방향으로 전진하는 것처럼 구성한 것이 좋았다. 각기 다른 7개 주제의 공간들을 단순히 박물관처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을 여행자에 빗대어 순서대로 각 공간을 방문하듯 구성한 것이 몰입도를 올려주기도 했다.

각 유토피아 공간은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공간이 시작될 때 위 사진처럼 공간에 대한 설명을 보여준다. 그런데 공간의 이름 위를 보면 이전 공간의 이름이 함께 표기된다. (위 사진에 표기된 CLOUD NINE은 이전 공간의 이름이며, WITHOUT A TRACE가 현재 공간의 이름이다) 이런 표기가 소소하면서도 공간을 순차적으로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관람객에게 전해주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각 아티스트들이 풀어내고자 했던 세상과 작품들을 여정길이라는 스토리에 얹어 잘 구성해 냈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전시의 연관성

작품들 자체가 김초엽 작가의 소설 내용을 직접적으로 묘사했다기보다는 소설들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 현실 세상과 아주 약간 다른 이질감을 잘 잡아냈다. 공상과학을 소재로 인간에 대한 여러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작품들 속 세상은 마냥 허무맹랑하지 않으며 정말로 있을법한 세상에 그럴듯해 보이는 약간의 허구가 섞여있는데, 우리의 삶과 맞닿아있는 듯한 이 세상이 작품에 대한 독자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김초엽 작가와 아티스트들은 유토피아라는 장소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접근을 한 것은 아닐지 한다.


김초엽 작가는 몇몇 작품에서 냄새, 감정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물질화하여 등장시키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정육면체 결정들이 부유하는 아래의 작품을 보며 작가의 소설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유토피아

그 누구도 가본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유토피아라는 장소는 마냥 허황되고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것보다는 손에 닿을 듯하면서도 현실과 아주 약간의 이질감이 드는 편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더 와닿게 되는 것 같다. 마치 꿈결 같은, 몽환적이면서도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 말이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차마 도달할 수는 없지만 동경할 수 있는 이상향으로서 기능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 실제로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니 본 전시 자체가 각기 다른 개개인이 상상하고 동경할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다양한 레퍼런스북이 아니었을지 싶은 생각도 든다.


감상을 마무리하며

미술에 조예가 좀 더 깊었더라면 개별 작품들에 대해서도 보다 많은 감상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런 아쉬움의 손을 붙잡고라도 전시를 보는 시간은 즐겁다. 창작자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정성스레 구성해 놓은 공간을 거닐며 그들의 발자취를 좇는 것도,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나만의 생각으로 빠져들어 새로운 시야를 가져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전시를 찾아다녀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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