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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Apr 23. 2024

[애니 감상문]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선명하게 아름답고 확실하게 비극적인 사이버펑크

0. 들어가기에 앞서

스팀에서 <사이버펑크 2077>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하고 나서 넷플릭스에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이후 엣지러너)를 보게 되었다. 솔직히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애니와 게임 상호 간의 긍정적 시너지를 위한 홍보물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생각한 자신이 무안해질 만큼 작품은 수작이었다. 10화라는 꽤나 간결한 구성 안에서 밀도 있는 구성과 템포로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맺어냈다. 아래에 짧은 감상을 남긴다.


1. 세계관과 서사를 풀어나가는 과정

엣지러너의 세계관은 사이버펑크 그 자체였다. 고도화된 기술 문명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도시를 표면적으로 이끄는 초거대기업(아라사카, 밀리테크)과 그 이면에 암약(혹은 기생)하는 "사이버펑크(또는 엣지러너)"들을 만들어냈다.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주연은 "데이비드 마르티네즈"라는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년이며, 이후 우연히 마주친 "루시(루시나 쿠시나다)"에게 속아 넘어간 이후 "사이버펑크(혹은 엣지러너)"의 길로 접어들게 되며 본 작품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이버펑크라는 소재, 거대기업과 개인의 갈등, 의뢰인/해결사의 관계와 상호 간의 배신, 주인공과 서브 캐릭터 조합과 구성 등이 2022년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게까지 참신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좋았던 것은 특유의 간결하고 박자감 있는 전개 과정 덕분이었다. 10회라는 분량이 마냥 짧은 건 아니지만 세세한 세계관 설명과 서사, 갈등의 해결 과정을 모두 담아내기에 충분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1 쿨(약 11~12화)에 풀어내려다가 분량 조절에 실패한 사례들도 다수 존재하는데, 엣지러너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정말로 깔끔하게 기승전결을 구성해 냈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가 사이버펑크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와 과정부터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순간까지의 전개가 깔끔했다. 서사가 세밀하고 복선을 하나하나 심고 풀어나가기보다는 꼭 필요한 장면과 서사들이 빠르게 소모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폭발하듯 이야기들이 풀려나갔다. 서사에 필요한 과정이라면 작품 내 주요 인물들이 소모되고 사망하는 과정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작품의 종국을 장식하는 것은 10화 동안 쉼 없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던 데이비드의 장렬한 죽음과 피였다.


2. 결말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무조건적인 억지 해피엔딩보다는 합당한 배드엔딩을 선호하긴 하지만, 이런 선호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엣지러너의 결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 암울한 세상에서 고고히 빛나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주인공인줄 알았던 데이비드도 결국 세상의 큰 벽(이 상황의 물리적 현신이 "아담 스매셔"였다고 생각한다)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납득도 가고 개연성도 충분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루시의 꿈(그렇기에 데이비드의 꿈이기도 했던 달에 가는 것)이 끝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다. 작품의 후반부 무렵에 TV를 보던 데이비드와 루시는 달 여행에 대한 광고를 보게 되는데, 그들이 의뢰에서 받는 돈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들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닿을 수 있었던, 이루어질 수 있었던 꿈이었기에 이루어지지 못한 순간이 더 애틋했다. 작품의 마지막에 루시는 홀로 달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데이비드의 모습을 떠올린다. 정말 꿈의 코앞까지 왔지만 데이비드만 없는 이 장면이 길었던 이야기의 아름답고도 슬픈 피날레였다.


3.작화와 연출

속도감 있는 연출은 자칫 잘못하면 작품을 난잡하고 정신없게 하지만, 그런 난잡함까지도 작품의 매력으로 만들어내겠노라고 당당하게 제창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엣지러너의 작화와 연출은 적절했다. "트리거"의 작화는 정갈하고 세밀하기보다는 투박한 날것에 가까웠다. 물론 이는 미흡함이 아니라 의도에 맞는 러프함이었다. 이런 속도감과 분위기에 세밀하고 사실감 있는 작화가 더해졌다면 작품이 한층 더 진중해지고 템포를 잃었을 것 같다. 일종의 카툰 같은(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체와 색감이 작품의 무게를 한 층 더 가볍게 하여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데이비드와 루시의 색감 자체도 강렬했는데, 어두침침하고 암울한 세상 속에서 빛나는 네온사인 같은 색깔들은 자연스레 그들을 세상에서 빛나는 주인공처럼 보여주었고, 그렇기에 작품의 마지막 순간 감정의 낙차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사이버펑크 2077을 플레이한 입장에서 보자면, 통화/지도 UI, 해킹 장면, 아라사카의 차량 디자인, 애프터라이프 가게 등 게임의 UI나 요소들이 작품에 반영된 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아담 스매셔 정도를 제외하면 게임와 연결되는 캐릭터들은 아니지만 이런 요소들이 게임과 애니를 자연스레 동일한 세계관으로 연결해 주었다.


4. 마무리하며

큰 기대 없이 봤던 작품이었던 것 치고 여운이 꽤나 진하게 남았던 작품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엣지러너는 나이트 시티를 살아가던 데이비드와 루시의 이루어지지 못한 꿈에 대한 슬프고도 빛나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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