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걸린 몇 조각의 치기 어린 구름은 태양을 붙들고 그 빛을 자신들의 안에 온전히 가두고자 하였으나, 자애로운 생의 화수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착실히 수행하고자 구름의 틈 사이로 생을 내비쳤다. 허공을 바라보며 시선과 상념을 한 아름 빼앗긴 후에야 도진은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고, 맹렬하게 굽이치며 앞으로 흘러가는 인파에서 한 발짝 물러난 채 그는 느린 호흡으로 걸었다. 평소라면 그 또한 인파의 일원이 되어 맹목적인 맹진에 동참했을 테지만, 호기(好機)인 양 그의 옷깃을 붙드는 볕뉘에 못 이긴 척 몸을 맡긴 도진은 길 위에서 잠시간의 여유를 누렸다.
근 몇 주간 도진은 여러모로 고착되어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일들도, 해야 할 일들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탓에 그는 긴장의 장력을 늦출 때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머릿속은 그야말로 과적상태였다. 물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무겁던 도진에게 오늘의 볕뉘는 그야말로 시의적절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이 때마침 지금이었을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겠으나, 이에 대해 구태여 확인할 이유도, 명분도 필요치 않았다. 자명한 하나의 사실은 도진의 마음에 어느 정도의 환기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보도블록 위 외딴섬에서의 느린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도진은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나서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 안에는 아직 완결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도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고 마감일까지는 아직 조금 여유가 있었지만, 요 며칠간 도진의 이야기는 생겨나고, 지워지고, 그 위치를 바꾸기를 반복하며 앞으로 좀체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마음 또한 착실하게 무거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제까지의 도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다소간의 환기를 이뤄낸 오늘의 도진은 한결 차분한 속도로 이야기와 대면할 수 있었다. 각 문단의 내용 자체는 크게 어색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잘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초초했던 과거의 도진이 이미 쓰여진 글을 어느 하나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덜어내야 할 부분은 확실하게 제외했어야 하지만, 진도가 나아가지 않음에서 오던 불안이 그의 눈을 가렸던 것이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덜어낸 이야기는 한결 정갈해졌고, 도진은 뒷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갈 수 있었다.